소설가의 행복을 찾아서
얼마전에 어떤 책에서 과거가 현재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글귀를 읽었다. 자책과 후회가 많은 나에게 위로가 되는 글이었다. 하지만 뒤집어 놓고 생각하면 그럼 내 현재의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깊은 의문이 남는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후회가 많은 사람들이 실패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으려 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뒤만 돌아보다가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할거다. 중요한건 뒤도 앞도 아니고 지금인데.
나는 지금 뭐하고 있나. 나는 몇 년째 계속 같은 마음으로 살았다. 회사에 다닐때는 오퍼레이터 반 기자 반 일을 하며 대체 언제쯤 번듯한 기자가 될 수 있을까. 아니 지방대 출신인 내가 될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늘 두렵고 불안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소설교실에 왔을땐 사람들의 칭찬이 좋으면서도 두려웠다. 나를 믿지 못하니 칭찬을 들을 때도 저 칭찬 속엔 독이 숨어있을거라고 지레짐작하며 믿지 않았다. 소설가가 된 후에도 지방지라는 것이 싫었고 등단은 운으로 한것이라 생각하며 빨리 장편을 써서 좋은 출판사와 계약해서 내 능력이 진짜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다. 그렇게 늘 마음이 힘들고 불안했다. 그런데 요즘 생각해보면 나를 실패자로 만든건 결국 나라는 생각이다. 늘 나를 실패자라고 대우했다. 잘한것도 많은데 한번도 인정하지 못했다.
힘든 마음에 상담을 받는 중인데 상담사 선생님이 내게 소설에 너무 많은걸 걸지 말라고 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고 소설을 못 쓰면 당신 자신이 아닌것이냐고. 당신의 자녀가 공부를 못하면 당신의 자녀로 인정하지 않을것이냐고.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수능을 보러 가던 그 옛날. 차를 태워다주던 엄마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엄마, 시험 못봐도 나 엄마 딸이지? 엄마는 그때 조금 놀란 눈으로 뭘 그런걸 묻느냐고 했다. 그런데 난 늘 불안했던 것 같다. 뭐든 잘해내야 했다. 그게 알콜중독 아빠와 시골 목장에서 힘들게 소젖을 짜는 엄마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에게 바라는 이상은 이만큼이나 높은데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무기력하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요즘도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날이 많다. 한문장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운다. 무언가 쓰면 이 문장은 어딘가 누군가 썼을법한 문장이고 진부하고 멋지지 않다는 자기 검열이 올라온다.
늘 노트북 화면을 켜면 문장을 하나 쓴다. 내가 세계 대명작을 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거나 써라. 라고. 하지만 내 머릿속엔 누군가가 지나며 내게 던진 때로는 나를 생각하고, 때로는 조금의 악의가 담긴 말들이 계속 휙휙 지나간다. 작년엔 장편 썼어야지. 너무 두서없다. 혼란스러운 니 머릿속을 보는 것 같아. 너 지금 그럴때가 아냐. 더 집중해야지. 같은 말들. 그러면 나는 다시 흰창을 닫고 인터넷 세상으로 빠진다. 나를 괴롭게 하지 않을 도파민을 달라고. 풍광이 좋은 커피숍 의자에 무심코 놓인 에르메스백과 결이 고운 밍크. 손위로 무심히 놓인 다이아 반지 같은걸 한참을 보다가 쇼핑몰을 순례하다보면 시간은 간다. 그렇게 나는 두려움 때문에 도피하고 하루 더 실패의 시간을 연장한다. 그러다 밤이 되면 술을 마시며 두려움을 마비시킨다.
나는 실패를 뒤로하고 성공할 수 있을까? 포포처럼 다양한 실패의 경험이 결국 사다리가 되어줄까? 글쎄 모르겠다. 요즘은 내가 사는 동네에서 활동가로 일했던 경험을 소설로 쓰려고 노력중이다. 동네 활동가를 한다는게 처음엔 별로 내키지 않았다. 나는 훨씬 더 돈도 많이 주고 반짝반짝 빛나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구를 만나러 간 점심의 광화문에서 명찰 목걸이를 걸고 환하게 웃는 젊은 사람들 틈에 끼고 싶었다. 하지만 몇 년간 활동가로 일하며 이 일이 보람되구나 요즘 여실히 느낀다. 참 웃기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이제 활동가를 없애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야 소중함을 알다니 나도 참 바보같다. 하지만 내 글에 남겠지. 남을거야.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