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

소설가의 행복 찾기

by 임수정

독서모임에서 무진기행으로 토론을 했다. 무진기행은 주인공 남자가 부자 아내의 권유로 고향같은 공간 무진으로 잠시 쉬러가서 겪는 일을 담은 소설이다. 주인공은 그곳에서 옛친구도 만나고 자신을 서울로 데려가달라는 인숙이란 여자도 만난다. 내가 보기에 그 주인공은 무진에서 계속 자신의 지난 삶을 부끄러워한다. 친구들이 나선 전쟁에 폐병을 이유로 나가지 않은 것, 오래 사랑하던 여자를 떠나보내고 부자 과부와 결혼을 해 쉽게 성공을 쟁취한 것 등 그의 삶은 부끄러워할 것 투성이다. 주인공은 무진에 내려가 하루종일 방에서 뒹굴거리기도 하고 추억의 공간을 돌아보기도 한다. 무진은 그에게 그런 과거를 돌이켜보고 뜻이 있다면 다시 태어나게도 해줄 공간이다.


독서 모임을 이끄는 샘은 공동 질문으로 당신에게도 무진같은 공간이 있나요 라고 물었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나에게 무진같은 공간, 나를 맘껏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결론은 없다.


어릴적 엄마는 내가 중학교 2학년때까지 임신과 유산을 반복하며 아들을 낳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엄마는 내게 아들을 낳아야 부모가 죽어도 친정이 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개풀 뜯어먹는 소리다. 여튼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친정은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없어졌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엄마 말대로 남동생이 생겼고 남동생이 그 시골집에 사는거라면 내 친정은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건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나는 과거를 돌아보기 싫다. 어릴 때 나는 너무 불행했다. 돌아가고 싶은 과거 따위는 없다. 과거로 돌아가 내가 후회했던 어떤 판단이나 결정을 다시 돌린다고 해도 나는 지금과 똑같은 인간이므로 그 곳에서의 미래도 지금과 비슷하게 결정되었을 것이다.


나는 비슷한 느낌으로 어딘가 가고 싶은 공간이나 장소도 없었다. 여행 유튜브를 봐도 세계의 명소를 봐도 과연 저기가 좋을까 하는 생각만 든다. 여우가 저 포도는 실 거야 하는 것과도 다르다. 그냥 피곤한 것이다. 가족들과 어딘가를 갈 때는 좋을 때도 있지만 여행이란 오가는 길이 너무 길고 기쁨은 짧다. 내가 남편과 비슷한 부분은 둘 다 세계의 어느 명소 어디도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리, 로마, 스위스 모두 가고 싶지 않다. 막상 가보면 다르려나.


여행은 사람에게 절정 경험을 안겨준다고 한다. 절정경험은 신비한 경험이라고도 하는데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 중 최고의 단계를 절정 경험이라고 칭하며 되어야만 하는 무엇이 이뤄져 모든 것이 완벽히 제자리에 맞춰저 있는 초월적이고 찰나적인 경험을 의미한다.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봐도 느낄 수 있다는 경험은 사람들이 스스로 완전히 무언가의 일부라고 느끼며 자신과 세상에 대해 자각하는 순간이라고 하는데 이런 설명은 너무 어렵고 아, 나는 다시 태어났다 라고 느끼는 순간인 것 같다. 무진기행의 주인공은 무진에서 과거와 화해하고 다시 태어날뻔 했지만 인숙에게 쓴 편지를 찢어버림으로써 기회를 박탈당했다.


여행을 싫어하면서도 무진같은 공간도 갖지 못한 나는 다시 태어날 기회가 영영 없는 것일까. 꼭 몸이 떠나야 여행은 아닌 것 같다. 지난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을 보고 나는 아, 예술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라는 걸 느꼈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 폭풍을 기다리던 아이들이 폭풍이 지나고 맑게 개인 하늘을 보며 그대로라 다행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며 펑펑 울었다.


<외계인2>에서 '인드림스'가 흘러나올 때 눈물이 핑 돌았다. 겨울이 되면 나는 <윤희에게>라는 영화를 보고 또 본다. 고등학교 시절 서로를 사랑한 두 여고생은 주변의 상황으로 헤어진 지 몇십년이 지난후 오타루에서 다시 만난다.


윤희니, 하고 묻는 장면을 위해. 마지막 윤희가 그녀에게 보내는 답장의 마지막 문장인 추신, 나도 네 꿈을 꿔를 다시 듣기 위해 나는 몇 번이고 그 영화를 다시 보며 기꺼이 두시간을 희사한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그런 감정과 울림을 주면 좋겠다. 좋은 여행은 아마도 좋은 시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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