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행복찾기>
인간관계가 폭넓지 않다. 겉보기에 활달한 성격이지만 낯을 가리는 편이다. 사람과 친해지는 것도 오래걸린다. 기본적으로 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누군가 내게 호의를 베푼다면 저 사람은 내게 원하는 무언가가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 호의가 오래도록 지속되며 심지어 진심으로 느껴진다면 나는 저 사람이 나를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호의를 받을만한 사람이 아닌데. 음흉하고 비겁하며 못되기 짝이 없는 사람인데 저 사람은 왜? 라고 생각하며 더 경계의 마음을 품는다. 그러다 내가 쌓아놓은 벽이 어느샌가 무너졌음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아주 갑작스럽게 온다. 내가 그 사람의 연락을, 우리의 만남을 기다리게 되고 먼저 서슴없이 얘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람없이 속내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글이 안써져요, 애들이 속을 썪여요, 울화가 치밀어요, 살기 싫어요 등등.
나를 설명하는 단어로 내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아무래도 ‘주접’이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오늘도 너무 주접을 많이 떨었다’ 고 생각하며 자책한다. 내 MBTI는 수줍고 자신의 세계가 강하다고 알려진 infp다. MBTI를 신봉하는 편은 아니고 비교적 그 세계 진입이 늦었다. 사람들이 MBTI뭐야? 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혈액형별 성격을 믿는 것처럼 허황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안하기에 무엇이든 자신의 틀에 맞춰 재단하고 규정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심리를 캐치한 것이 아닌가?
MBTI에 무지하던 시절 식당에 걸린 예수의 고상 위에 적힌 inri를 보고 나는 진지하게 저것이 예수의 MBTI냐고 물었다. 내 앞에서 밥을 먹던 사람은 공교롭게도 가톨릭 신자였는데 나를 무슨 짐승 바라보듯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예수님의 MBTI는 아무래도 I는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늘 군중 속에 있었고 열두 제자나 거느렸으니, 예수님은 아무래도 지독한 E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보면서.
주접에 능하며 자신을 끔찍하게 싫어하고 사람을 믿지 않는 나는 관계가 어렵다. 어떤 관계가 시작되면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한다. 오늘 만남 후 저 사람은 나의 오늘 이런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나 자신은 다른 사람들을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아는 사람, 즉 내 마음에 들어온 사람이 늘어날수록 그 사람들은 어쩌면 내 머릿속의 하나의 심판자로 선다.
함께 책을 읽고 술도 한 잔 하는 친구들이 생겼을 때 나는 그들의 에너지에 감화되었다. 하지만 합평이 거듭될수록 미지의 독자가 아닌 눈 앞의 친구들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 글을 보며 너무 별로다, 이 사람은 끝났다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망상에 시달렸다.
나는 왜 이렇게 타인의 시선에 전전긍긍하는가. 결국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은 내가 나를 보는 방식의 투영이었다. 내 안의 뱀을 믿기에 타인의 마음속 뱀을 경계했고, 나를 미워하는 만큼 남도 미워했다. 나는 안과 밖을 철저히 분리하며 살고 있다고 믿었으나, 사실 내 에고가 만든 거대한 막 속에 갇혀 있었을 뿐이다.
결국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국 나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 그대로, 나는 세상을 대하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이걸 몰랐다. 나는 안과 밖이 철저히 분리된 사람이고 성공적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생 이렇게 사는게 가능한가? 가능의 문제에 앞서 나는 행복한가? 글을 쓰는 방식도 똑같았다. 내 얘기가 아닌데? 이건 남의 이야기야, 나는 철저히 숨기고 있어. 나는 나를 드러낼 수 없어. 나는 내 마음 속 구덩이를 들키지 않을거야 라는 에고의 순간이 겹쳐져 거대한 막을 이루었다.
작가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은 단 한줄도 쓸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고래 사냥꾼의 얘길 쓰지 못하리란 법은 없지. 나는 어쩌면 알면서도 외면했는지 모른다. 언젠가 드라마 선생님은 내가 용서하고 싶은 사람에 대해 써보라고 하셨다. 나는 반사적으로 싫다고 했다. 선생님은 이유를 물었고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하게 될까봐, 라고 대답해놓곤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놀랐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 안에서 나오는 글의 힘에 대해. 누군가를 이해하고 용서하게끔 하고. 결국은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하는 글.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내 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