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래 달리기

소설가의 행복을 찾아서

by 임수정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아니 나는 지금도 행복하지 않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지독히도 불행했다. 소설을 쓰고 부터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나는 지독히도 힘들었다. 그러다 어떤 사람의 블로그에서 아람누리 도서관의 소설교실 이야기를 읽었고 나는 어린 시절 꿈을 기억해냈다. 소설가.

나는 계속 무언가를 쓰는 사람이었다, 아니 무언가를 쓰며 칭찬받길 원하는 사람. 초등학교 3학년 때 과학 독후감 대회에 낸 3장 짜리 원고지가 시작이었을거다. 그때 내가 접한 과학도서들은 대부분 미래를 상상해낸 책들이었다. 책들이 그려낸 미래는 낙관과 비관이 공존했다. 로봇에게 귀찮은 일은 맡기고 나무 그늘에 누워 영원히 젊은 채로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한 삽화와 로봇에게 지배당해 누더기를 걸치고 괭이질을 하는 사람들. 하늘을 나는 에어카 때문에 교통 체증이 없어진 세상과 비행정을 타고 자원을 약탈하러 다니는 우주 해적들.


나는 죽음이 없어진 세상에 대한 책으로 독후감을 썼다. 죽음이 없어지면 엄마 아빠와 오래도록 살 수 있으니 참 좋겠다, 라고 끝을 맺은 세 장짜리 독후감은 짧다고 퇴짜를 맞았다. 나는 그 날 아침 신문에서 본 카피를 떠올리며 독후감을 늘렸다. ‘진시황 시절부터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꿈은 죽지 않는 것이다.’ 10살짜리가 구사하기엔 조숙한 문장이었을테지만 선생님은 흡족해했고 그 글은 군수상까지 받았다. 상장은 금색 액자에 담겨 집 안 제일 잘 보이는데 놓였고 엄마와 아빠는 집으로 오는 사람들 마다 상장을 꺼내 자랑을 했다. 나는 졸지에 글 잘 쓰는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글쓰기 오래 달리기는 진행중이다.


글이 좋았는지 칭찬이 좋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글쓰기가 내게 오롯이 기쁨이었던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기숙사 생활을 하다 일주일에 한번 집에 오는 금요일 저녁부터 새벽까지 나는 책상에 앉아 라디오를 들으며 어디선가 들어봤을 문장을 끼적였다. 할리퀸 로맨스, 라디오의 노래들, 만화 속 대사가 짬뽕이 되어 손으로 튀어나왔다. 그때는 밤에서 새벽으로, 새벽에서 아침이 되는게 싫고 영원히 이 시간 속에 갇혀있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글을 쓰는 시간.


소설교실에 와서 소설을 쓰며 나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행복보다는 불안이 찾아왔다. 다음 작품은 칭찬을 받지 못하면 어쩌지. 그렇게 소설이 숙제처럼 느껴졌다. 등단을 하고 몇 년째 나는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매일 내일 써야지를 반복하며 핸드폰 속으로 도피한다.


나의 상담사 선생님은 글에 너무 많은 것을 걸지 말라고 한다. 그렇기에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이라고. 나도 동의한다. 나는 늘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나에 대한 칭찬이 허명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증명. 나는 아직도 잘 쓰고 있으며 잘 쓰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증명.


나는 왜 그럴까. 내가 글을 쓰지 않으면 나는 가치가 없는 사람인가. 내가 좋은 글을 쓰지 못하면 나는 나를 증명하지 못하는걸까. 무엇보다도 나는 왜 나를 증명해야만 할까.


오늘 오래 달리기 그림책을 보며 달리기는 죽을 때 까지 끝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들이 마지막 장면에 쉬는건 결국 죽음 후가 아닐까 라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됐다. 누구나 뛰어가는데 나는 어디로 뛰어가는걸까. 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즐겁고 행복하게 소설을 사랑하던때처럼 소설이 좋아서 소설 쓰는 내가 좋아서 그렇게 쓸 수 있을까. 아니 행복한 달리기가 가능한걸까. 애초에. 행복하게 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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