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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슨생 Apr 04. 2024

보이지 않는 끈

아버지와 아들이란…

오늘 밤. 아들 앞에서 또 고함을 질렀다. 마음속 깊은 화남을 괴성으로 분출하며 내 분을 내가 삼키지 못하고 있음을 가족에게도 확인시켰고 나에게도 스스로 각인시켰다. 많이 슬프다.


 휴직 이후 아이들 유치원 등원과 하원을 내가 도맡아 하며 자질구레한 일을 하는 와중에 아이들로 인하여 웃기도 하고 짜증 나기도 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특별히 쌍둥이 남매 중, 아들이 내 심기를 건드렸다. 쌍둥이 남매인 딸보다 뭐든 자기가 먼저 하려는 경쟁심이 지나칠 때가 있는 아들이 쌍둥이 남매인 누나가 자기보다 먼저 신발을 신고 있는 걸 보자마자 발작하듯 떼를 쓰는 것이 아닌가? 가뜩이나 비가 많이 와서 쌍둥이들을 차에 태워 등원시켜야 하는 아침이라 더욱 분주한 상황이었다.

 “서준아 괜찮아. 서윤이가 먼저 신발 신을 수도 있지. 자, 어서 유치원 가야 하니 신발 신자.”

 나의 어설픈 달램 멘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의 생떼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참다못한 나는 딸의 신발을 신경질적으로 벗기며 소리를 질렀다.

 “자! 됐냐? 이제 속이 시원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러자 예상대로 아들은 울음을 터트리며 어눌한 발음으로 엄마를 찾았다.

 “엉엉, 엄마 보고 싶어. 흑흑.”

 난 더욱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지만 아이들을 일단 등원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의 끈을 잡고 아들을 안아주었다.

 “서준아. 미안해. 아빠가 또 소리를 질렀네. 그러기에 왜 신발을 꼭 먼저 신어야 한다고 우긴 거야.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자.”

 평소 말의 0.8배속으로 말하며 아들을 달래고 나서야 겨우 빗길 속의 등원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나 혼자만의 시간은 바람처럼 지나가고 아이들을 하원시켜야 하는 시각이 되었다. 아침부터 내린 비는 오후가 되어도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서준이가 하원할 때 차를 타려 하지 않던데. 또 떼를 쓰면 어쩌나.’

 약간의 불안감이 엄습하였지만 하는 수 없이 난 다시 차를 몰고 유치원으로 갔다. 예상대로 딸은 순순히 차에 올랐지만 아들은 빗속에서 발을 구르며 차를 타기 싫다고 떼를 쓰기 시작하였다. 대략 5분간 빗물에 아들과 나의 머리가 다 젖고 나서야 아들은 차에 올랐다. 하지만 차에 타자마자 아들은 울부짖으며.

 “아빠. 마트 갈래요. 엉엉. 마트 가서 초콜릿 과자 먹을래요. 흐엉.”

 빗속이라 차를 주차하고 다시 마트로 향하기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기에 난 또 최대한 달래며 설득하였다.

 “서준아. 오늘만 집에 가면 안 될까? 집에서 맛난 고기반찬이랑 밥 먹고 과자 줄게.”

 하지만 아들의 울음은 그치질 않았고 난 또 아들의 의지에 굴복하였다. 유치원 근처 마트에 주차하고 마트에 들어가 쌍둥이 둘 다 과자를 골랐다. 그런데 하필 지갑을 들고 오질 않은 날 들린 마트에서 카카오페이 지불이 되질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계좌이체를 하기 위해 마트 점원에게 계좌번호를 묻고 폰으로 송금을 하며 시간을 지체하고 있는데 아들이 시야에서 보이질 않았다. 쌍둥이들과 함께 마트에 가서 둘 중 한 명이 사라져 진땀 흐른 적 있었던 경험이 트라우마로 떠 올랐기에 난 계좌이체를 하다 말고 마트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들은 비가 자기 몸을 적시고 있음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발목까지 잠기는 빗물 웅덩이에서 신나게 첨벙거리고 있었다.

 ‘아. 또 저 신발 말리고 몸 씻기려면 얼마나 에너지를 쏟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아들의 행동을 재빨리 제지하였다. 마트 계산 후, 집에 가기 위해 쌍둥이들을 차에 태운 뒤에 아들에게 훈계하였다.

 “또, 그렇게 밖에서 너 마음대로 하면 다시는 마트 따위는 못 갈 줄 알아. 알겠어?”


 집에 도착하여 아이들 둘을 씻기고 겨우 저녁을 먹이고 좀 쉬다 보니 잠잘 시간이 다가왔다. 언제나 그랬듯 난

 “아빠랑 양치질할 사람?”

 이렇게 물었고 아이들은 언제나 그랬듯 아무도 한 번에 답하질 않았다. 오늘따라 피곤했기에 빨리 애들 양치시키고 자고 싶었다. 근처에 있던 아들부터 번쩍 들어 화장실로 데려갔다. 왼손으로는 아이의 양팔을 잡아 움직이지 않게 하고, 오른손으로는 치약이 묻은 칫솔을 아이 어금니에 넣어 이를 닦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왼팔의 조임이 느슨해진 틈을 타 아들은 입에 치약 거품을 머금은 채 도망가며 외쳐댔다.

 “아빠. 나 지금 양치하기 싫어.”

 아들을 다시 붙잡아 오면서 이성을 반쯤 잃은 나는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어서 빨리 입 헹궈. 어서! 어서!”

 그리고 아들의 입을 억지로 벌리고 컵 속의 물을 마구 밀어 넣었다. 아들은 또 울부짖기 시작하며 제 엄마에게 달려갔다.

 “엉엉. 아빠가, 아빠가 억지로. 엉엉. 아빠가... 엉엉.”

 하. 차마 아이를 떼를 순 없었다. 하지만 아들로 인해 오늘 하루 동안 쌓였던 감정이 내 인내심의 임계점에 도달하여 내 감정을 내가 주체할 수 없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나는 거실을 거쳐 내 책방으로 들어가 책방 벽에 물건들을 집어던지면서 고함을 질렀다.

 “으악! 악! 제길!”

 내 고함소릴 들은 아들은 그게 자기로 인한 아빠의 감정 표현임을 눈치챘다. 내게 와서는

 “엉엉. 아빠. 왜 그래요. 엉엉. 내 때문에 왜 그래요.”

 평소 같았으면 아들이 이렇게 말하는 타이밍에 난 아들을 안아주며 달래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 말이 나오질 않았다. 목 터져라 지르던 고함은 중단하였다. 하지만 아빠의 분노가 자기 때문임을 인지한 6살 아들의 울음을 외면한 채, 난 그냥 책방에 누워버렸다. 불을 끄고 한참을 누워 있으니 딸이 들어와서 날 달래주었다. 그리고 울음을 그친 아들은 제 엄마가 시키는 바람에 책방에 들어와서 제가 날 먼저 안아주었다.

 “아빠. 미안해요....”

 갑자기 봇물처럼 내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2년 전, 게슈탈트 심리 상담을 통해 알게 된 박사님은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하셨다.

‘인간이 생에 최초로 만나는 남성은 아버지이고 여성은 어머니이다. 아버지 및 어머니와의 관계 맺음 기억은 하나의 상징체계로 남아서 한 인간이 자신과 만나는 남성과 여성과의 관계 맺음을 결정지을 수 있다.’ 이는 비단 같은 친구나 동료 사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나은 자식과의 관계 형성에도 적용되는 말임을 실감한다.

 내 아버지는 아들인 내가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에 더 초점을 두며 항상 아버지란 무서운 존재임을 부각하며 어린 시절의 나를 양육하였다. 만약 내가 그 옛날 아버지 앞에서 오늘 아침 우리 아들 같이 신발 신는 것으로 떼를 썼거나 유치원 하원할 때 마트 가자고 조르고 빗속에서 물장난을 쳤다면 내 뺨은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한 번도 내 이를 닦아준 적은 없다. 그래도 행여 6살 시절의 내 이빨을 내 아버지가 닦여주고 있는데 그리 도망치고 약을 올렸다면 내 아버지는 나를 기절할 때까지 두들겨 팼을 것이다.

 10년 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했던 어느 날, 내 이런 폭력적 행동이 내 아버지가 나에게 한 행동의 재연임을 우연히 깨달았다. 그날 이후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체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고함도 거의 지를 일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기르며 이렇게 다시 한번 시험에 들 줄이야.

 아들에게 ‘온화함’이라는 중용의 미덕을 보이지 못하는 이유가 전적으로 내 아버지와 나의 관계형성에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잘되면 제 탓, 못나면 조상 탓하는 인간치고 진짜 못나지 않은 인간이 없지 않은가. 뇌 속에서 아드레날린 및 도파민 분비만 추구했던 근래의 내 행동 습관에도 큰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하루만 지나고 나서 다시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들 수 있는 아들의 일탈(?)을 이리도 견디지 못하게 되는 그 심성의 근원. 거기엔 내 아버지와 나와 맺어졌던 보이지 않는 끈이 있음도 사실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훗날 혹시나 내 아들이 자신의 성마름 근원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의 관계에 기인한 것임을 인지하고 한숨을 쉴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표출하고 있는 분노의 근원 추적 놀이에만 함몰되어 되는 대로 살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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