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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슨생 Apr 25. 2024

아버지와 정치 얘기 하기

낙담의 경험

2012년 12월 19일에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으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다. 설마 했는데 진짜로 이 사람이 당선되었다. 한 1주일을 밥도 제대로 먹지를 못하였다.


 2022년 3월 9일은 나의 생일이었다. 그리고 0.73% 포인트 차이로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아. 그로부터 2년이 지났지만 앞으로 그날만큼의 최악인 생일이 또 올까?


 2022년 대통령 선거 직후, 낙담한 마음은 잠시 접고 와이프 생일 기념으로 부모님 집에서 우리 쌍둥이 식구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아이가 커가니 집이 좀 더 넓어야 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우리 엄마는 대뜸 내게 물었다.

 “낙동강 건너서 주택단지 많은 동네로 이사 안 갈 거야?”

 “윤석열 당선되는 바람에 그쪽 집값들 싹 다 올라버렸어요. 못 갑니다.”

 아뿔싸. 애들 밥 먹이느라 정신없던 난 무심결에 아버지의 발작 버튼을 눌러 버렸다.

 “그게 왜 윤석열 탓이고? 니는 어찌 이재명 따위의 인간을 지지할 수 있는 기고?”

 아버지는 밥 숟가락을 세게 던지며 고성을 지르기 시작하였다.

 어린 시절 나와 엄마 앞에서 숱하게 보였던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의 기억이 내 의식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난 더 이상 그때처럼 어린애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윤석열이 어떤 인간인 줄 알고나 찍었습니까? 윤석열 와이프의 주가조작, 윤석열 장모의 통장잔고 위조 같은 것은 알고나 있습니까?”

 고성을 지른 아버지와 다르게 차분하면서도 또박또박한 말투로 따졌지만 내 눈에도 불이 일었다.

 “뭐 어디서 들은 걸로 헛소리 하고 있니? 너거 같은 젊은것들이 그런 헛소리 때문에 얼마나 나라 망치고 있는지는 알고 있나?”

 아버지는 거의 눈이 뒤집히기 직전이었다. 70이 넘은 나이의 주먹으로 방문을 쾅쾅 쳐대며 고함을 질러댔다. 아이들은 겁에 질려 울부짖기 시작했다.

 나 역시 더 이상은 차분한 말투를 유지하지 못하고 격분하였다.

 “아니, 아버지. 나이 그렇게 드셔서도 그렇게 본인 성질 못 죽이시면 어떡합니까? 아버지랑 다른 정치 의견 듣는 게 그렇게 못 견딜 일입니까?”

 이유 불문하고 ‘감히 아들이 아버지에게 대드는’ 상황을 참지 못하던 아버지는 마지막 말과 함께 안방의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꼴 보기 싫다. 너희 애 델꼬 가라! 니 놈은 내 아들도 아니다.”


 내가 있는 부산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계열의 야권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야도라고도 불렸다. 경상북도 출신의 아버지도 내 어린 시절에는 전두환 군사독재에 대항하는 김영삼을 열렬히 지지하였다. 1987년 6월에도 서면 거리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민들과 뜻을 함께 하였다. 그러나 1990년 김영삼이 군사정권 세력과 손을 잡는 3당 통합으로 탄생한 민자당은 아버지를 비롯한 대다수의 PK지역 유권자들의 표심을 흡수하였고 지금의 국힘당으로 이어지기까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게 되었다.

 18대 대통령으로 박근혜가 당선되는 과정에서 아버지 세대와 같은 나이 많은 사람들의 투표율은 매우 높고 그들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대한민국 유권자 다수는 지역주의를 극복하지 못하였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박근혜 탄핵정국 직후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 직후의 지방선거에서도 부산, 경남을 포함한 대다수의 지자체 장들이 민주당 후보들로 채워졌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지역주의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희망을 잠시 품게 되었다. 20대 대선 후보토론회를 보면서도 난 확신했다. 상식을 가진 유권자라면 어찌 손에 왕(王) 자를 쓴 채, 아무 정책 제시도 없이 네거티브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후보를 선택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대선 결과를 통해 여전히 지역주의는 극복되지 못하였음을 또다시 실감하였다. 보수 언론의 ‘이재명 악마화’는 다수의 유권자에게 잘 먹히는 전략이었다. 아버지와 대판 싸운 이후, 잊고 있던 낙담의 기억이 아프게 다가왔다.


 우리 아버지는 나랑 싸웠을 때뿐 아니라 평소에도 ‘젊은이들이 나라를 망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PK, TK지역 60, 70대 이상의 노년 중 대다수도 마찬가지다. 총선, 지선, 대선 때마다 그들의 투표율은 비이상적으로 높다. 그래서 우리나라 평균 국민들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젊은이들과 노인들 중 누가 더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 지수를 떨어뜨리는데 일조하였을까? 어르신이라 불리는 우리 사회 노인들이 젊은 시절 많은 고생을 했고 그 덕분에(박정희 덕분이 아니라) 기아시절을 면했으며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에라도 닿을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노인들 때문에 선진국 문턱에서 더 높이 오르지는 못했던 것도 맞다. 노인 세대가 군사독재 정권에서 침묵으로 일관했기에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1987년 이후까지 늦춰졌다. 노인들이 가족 우선주의 및 종족 생존을 우선시하는 사고방식에 함몰되었기에 더불어 함께 잘 사는 철학이 후손들에게 끼어들 틈이 없었다. 가짜 뉴스의 주요 타깃이자 주요 전파원이 노인 세대이기에 한국 사회에서 잘못된 언론들이 활개를 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가장 최악은 선거 때마다 후세대의 앞길을 막는 노인들의 선택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북유럽 복지국가와 같은 개혁이 요원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어떠한가?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자기주장을 말하거나 뭘 해볼 수 있는 기회조자 제대로 부여받은 적이 없다. 이른바 ‘나라를 망칠’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 이런 젊은 세대들에게 지난 몇 년간의 대한민국 사회 쇠퇴 원인을 전가하려는 행위는 잔인한 짓거리 아닌가.

이딴 얘기가 먹힌다니…그나저나 김진씨, 다시는 안보이길 바래요.

 2022년 와이프 생일 이후로 부모님 집을 방문할 때 아버지와 정치 얘기를 나눈 적은 없다.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를 할수록 더 큰 실망과 낙담만 남을 뿐임을 나와 아버지 모두 알고 있다.

 

 더 이상 아버지의 눈을 보며 할 이야기는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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