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경에 처한 경험
2021년 7월 어느 날이었다. 저녁 시간에 잠시 학교 근처 A시장골목에서 친한 학교 동료선생님과 밥을 먹기로 하였다. A시장 인근에 주차를 하고 동료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시장 입구 맞은편 이면도로를 걸어가다가 문득, 차에 뭔가를 놔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아. 놔. 그걸 또 깜빡하네.’
약간의 한숨을 내쉬며 걷던 길을 돌아가기 위해 뒤를 돌아보던 순간이었다.
“아이코!”
꼬부랑 허리를 하고 있는 백발 할머니가 쿵 하며 쓰러졌다. 내 뒤를 따라오던 할머니는 내가 뒤를 돌아보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를 못하였고, 나 역시 내 뒤에 누군가가 있음을 전혀 몰랐다. 자신을 향해 획 돌아서 다가온 젊은이의 왼쪽 어깨에 의한 충격으로 할머니는 오른쪽으로 크게 넘어졌고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그때 난 바로 119를 불러야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을 처음 겪었던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쓰러진 할머니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를 파악한 행인들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었다.
“아이고. 할머니 크게 다치신 것 같네.”
“누가 빨리 병원 모셔가야겠어.”
‘맞다. 병원.’
정신을 차리며 난 주변에 병원이 있는지를 두리번거렸고 다행히 내 시야에 정형외과 하나가 들어왔다. 난 쓰러진 충격으로 신음하는 할머니를 둘러업고 100m 앞의 정형외과병원 건물까지 갔다. 하필 엘리베이터까지 고장 난 바람에 4층까지 할머니를 업고 올라갔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 다급하면서도 지친 표정을 짓는 내 모습을 본 간호사는 앉을 곳을 안내해 주며 할머니에게 물었다.
“환자분. 인적사항 말해주세요.”
“그게 뭐꼬?”
숨을 돌리며 내가 할머니에게 다시 말하였다.
“할머니 이름과 생년월일 말씀 해달라는 말입니다.”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
이런 설상가상이 있나. 그러면 보호자를 부를 수 없다는 말 아닌가? 먼발치에서 난감해하는 나를 보던 정형외과 원장은 우리 근처로 와서는 한마디 하였다.
“이 할머니가 잘 다니시던 병원에 모시고 가 보세요. 할머니! 근래 진료받으신 병원은 기억 나시죠?”
“치료받은 병원은 알지.”
다행히 할머니는 그날 다녀온 병원이 어딘지는 기억하였다. 할머니를 내 차에 태우고 정형외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그 병원으로 가서 할머니의 집 주소를 알아내었다. 할머니의 나이가 91세라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되었다. 내 차로 할머니 집으로 향하면서 나는 할머니의 큰 아들에게 연락하였다.
아파트 주차장에서부터 할머니를 업은 채 할머니의 집으로 올라가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할머니의 큰아들과 손자가 도착하였다.
“아이고 진짜. 어무이. 나이 들었으면 그냥 집에 있지 뭐 하러 돌아다니다가 그리 다칩니까?”
머리가 희끗하니 60은 넘어 보이는 큰 아들은 할머니를 보자마자 짜증 섞인 면박을 퍼부었다.
“와 보자마자 머라 해 쌓노. 아이고 아프다.”
소파에 앉은 할머니는 연신 아프다는 말을 하며 꼼짝을 하지 못하였다.
할머니와 할머니 큰아들은 의미 없는 대거리만 해대었고 30대로 보이는 손자는 그 광경을 멀뚱히 지켜만 보았다.
보다 못한 내가 제안하였다.
“근처 병원에 응급실이 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제 차로 그 병원에 가시죠.”
A시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관절 치료로 유명한 2차 병원에서 할머니는 X레이와 CT검사를 하였다. 검사 결과는 오른쪽 고관절 골절이었다. 할머니는 이미 20년 전에 몸통과 다리를 연결하는 고관절이 골절하여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와 부딪힌 충격으로 넘어져 또다시 수술 부위의 고관절에 금이 간 것이다.
할머니를 담당한 응급실 당직 의사는 수술을 권고하였다.
“노인이시라 부담은 됩니다만 수술을 하지 않으시면 남은 여생 걷지 못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런 날벼락이 다 있나. 머리가 하얘졌다. 할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은 금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일부러 할머니를 넘어지게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단지 실수로 벌어진 일로 인해 내가 이 할머니를 책임져야 하나? 할머니 수술비를 온전히 감당해야 하나? 주기적으로 할머니 곁에서 할머니 수발을 들어야 하는 건가? 온갖 걱정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순간 자동차 접촉 사고 같은 송사가 발생할 때 자주 연락한 학교 행정실 형이 생각났다. 비록 차 사고와는 차원이 다른 곤경에 처했지만 그 형은 뭔가 문제 해결의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야. 그거 너 잘못 아니다. 그리고 네가 병원까지 모셔 드렸으니 할 만큼 다 한 거다.”
역시 전화하길 잘했다. 그래도 불안이 완전히 가시질 않았다.
“형. 나중에라도 저쪽에서 치료를 요구하거나 부상 책임을 지우려 신고하면 어쩌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는 질문에 형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다.
“괜찮다. 네가 일부로 때린 것도 아니잖아. 절대 쫄지 마.”
행정실 형과 대화를 나누니 좀 안심이 되었다.
용기를 내어 할머니가 있는 응급실 앞에 앉아 있던 큰아들에게 귀가 의사를 밝혔다.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할머니 큰아들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따지듯 물었다.
“아니 그러면, 그쪽이 아무런 귀책사유가 없다는 말인가요?”
“네. 제가 고의로 할머니를 넘어뜨리지는 않았으니까요.”
담담한 마지막 말과 함께 난 응급실 문을 나섰다.
예상대로 할머니 큰아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할머니 사고가 발생했던 지역 주변을 관할의 경찰서로 가서 폭행치사 혐의로 날 형사고발하였다. 하지만 경찰서 형사계 직원이 A시장 골목입구에 있던 CCTV를 확인한 결과 내가 고의로 폭행한 것은 아니었음이 판명되어 형사고발 건은 취소되었다. 그러자 할머니 큰 아들은 할머니 수술 치료비를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내게 밝혀왔다.
안심하라 했던 행정실 형의 말과 다르게 일이 진행되는 것 같아 불안하였다.
‘법 쪽으로 알만한 친구가 누가 있더라?’
한참을 고민해 보니 민법, 형법은 아니지만 상법은 잘 알법한 회계사 친구 한 명이 떠올랐다. 중학교 동창인 그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하며 내 고민을 얘기하였다. 회계사 친구는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친구. 너 또는 너희 와이프가 든 보험 약관들 한번 알아봐. 거기에 『가족일상생활책임』이라는 거 있으면 다 해결된다.”
사실 난 보험에 의존하는 사람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생명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자기 죽으면 모두 끝인데 지 목숨 값으로 다른 사람이 잘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데 와이프가 들어 놓은 보험이 아니었다면 난 지금까지 할머니 일로 곤욕을 치록 있을 뻔했다. 회계사 친구의 조언을 듣고 와이프가 든 보험 약관을 확인해 보니 ‘가족일상생활책임 보험’ 항목이 있던 것이 아닌가. 곧바로 보험사에 연락하였고 손해 사정사의 조사 이후 보험사가 계약한 법무법인 팀에서 모든 민사상의 소송을 대리해 주었다. 물론 나는 그 과정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평소 내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진즉에 알고 있었다면 그날 할머니가 넘어졌을 때 바로 구급차만 부르고 난 걱정없이 살아도 지장 없었던거다.
그 뒤로 와이프에 권유에 의해 매달 15만 원씩 빠져나가는 종신 보험에 가입하였다. 뭐 어쩌겠나.
마누라 말 잘 들어야 집안이 평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