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의 경험
2016년. 나와의 결혼을 약속했던.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와 결혼해 주리라 적어도 나는 확신했던 그 초등학교 여선생이 1주일 넘게 잠수를 탔다. 그녀의 집 앞에도 찾아갔고 그녀가 공부하던 대학원에도 찾아갔지만 끝내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2013년 3월. 담임을 맡은 우리 반 학생 중 유독 나의 학급 경영방침에 큰 불만을 표출하는 학생이 있었다. 학기 초 상담주간이기도 한 어떤 하루, 그 학생에게 마치고 나를 만나고 가라는 부탁을 하였다. 두 시간을 넘게 기다렸으나 끝내 그 학생은 오질 않았고 그다음 날 이후로도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2024년 4월. 육아휴직 중인 난 오늘도 유치원에서 우리 아이들의 하원을 동행하였고 놀이터에서 한 시간 넘게 놀아 주고 있다. 오늘따라 춥다. 집에 빨리 들어가서 애들 씻기고 나도 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얘들아. 춥다. 빨리 들어가자.”
짜증 난 티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였지만 애들은 들은 채 만 채 논다.
“얘들아. 얘들아!”
하는 수 없다.
“얘들아. 마트 가자. 맛난 것 사줄게.”
그제야 애들은 반색하며 날 따른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이들이 마트에 가면 필요 이상의 물건들을 사려고 떼를 쓰는 바람에 달래고 달래어서 집으로 가기 위한 에너지가 소비된다. 집에 와서도 씻으라는 내 말을 듣지 않고 세월아 내 월아 장난감만 만지작거리는 애들을 한정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2016년에도 2013년에도 난 거절을 당했고 2024년 지금도 매일 한 번 이상의 ‘거절당하기’ 경험을 겪는다. 샅샅이 기억하면 셀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거절 사례들이 있었고 거절당했을 때의 스트레스 정도 역시 동일하지는 않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거절당했을 때 내 상처의 깊이는 내가 상대에게 걸었던 기대에 비례했다는 사실이다.
‘거절하기’와 ‘거절당하기’는 나와 타자의 차이로 인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다. 내가 가학을 즐기는 사디스트가 아닌 이상, 상대에게 의도적으로 마음의 고통을 제공하기 위해 ‘거절하기’ 사건을 시전 하지는 않는다. 상대 역시 ‘거절하기’를 행할 땐 내가 마조히스트로 보여 의도적 고통을 제공하고자 하는 목적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을 당했을 때 때로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괴로운 이유는 무엇일까?
10년 전. 고3 담임이었던 동료 교사 A는 담임하는 반 학생들이 자신이 진학지도 하는 만큼 성적이 오르지 못해서 고민이라며 나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자신이 제시하는 학습법만 잘 따르면 모의고사 3등급 이상은 따놓은 상황인데 그걸 따르지 않는 몇몇 학생들이 너무 밉다고 하소연하였다. 그때 난 이성복 시인의 아포리즘 책 제목을 인용하며 웃으며 말해주었다.
“친구야.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결코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없는 나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들. 타인도 그 모든 것 중 하나이다. 학생이든, 연인이든, 부모든, 자식이든 친구든, 그들은 모두 타인이다. 내가 감히 타인을 내 의도대로 바꾸려 애쓰는 것은 시장 바닥에서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자기 원하는 물건 사달라며 떼를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읽고 있는 어떤 철학책을 좀 인용해서 말하자면 꿀벌이 꽃가루를 가져와서 자기만의 기술로 소화시켜 꿀을 만들 듯이 인간은 교육을 통해 자신이 배운 바를 변형시켜 자신만의 판단 체를 만들어야 한다. 자신을 개간하지 않으면 공상이라는 잡초로 가득한 벌판에서 평생 길을 잃고 헤매기만 할 것이다. 어떤 ‘거절당하기’ 경험을 겪고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시리다면 이는 자신의 경작 시기가 온 시점을 알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논점에서 이탈하는 새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마트에서 떼를 쓰는 아이로 하여금 ‘거절당하기’의 경험을 겪게 하여 타인을 자신의 의도대로 바꿀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것. 마트에서 그냥 가자고 말하는 내가 떼를 쓰는 나의 아이로 인해 ‘거절당하기’의 경험을 겪는 것.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나야말로 개간이 필요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