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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슨생 Jul 06. 2022

나의 폭력 일지

두 번째 이야기

 H고에서의 근무를 그만두고 D고로 직장을 옮긴 이후에도 다소 누그러진 감이 있긴 하였으나, 학생들을 향한 나의 폭력행위가 근절되진 못하였다. 정규직 채용을 위해 학교의 관리자들에게 확실한 어필을 했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을 몰아붙여 더 좋은 성적이 나오도록 애써야 한다 생각했다. 나의 허락 없이 야간 자율학습 및 보충 수업(지금 생각하면 하등 시킬 이유가 없는)에 빠지면 중대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인 양 학생들에게 숱한 죄책감 부여 멘트를 날렸다. 중간고사나 각 종 시험에서 큰 폭으로 성적이 하락한 학생들은 방과 후에 따로 상담이라는 명목으로 남겨서 내가 듣고 싶은 얘기가 나올 때까지 심문을 해 댔다. 모의고사 이후엔 동료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찬조(?)로 회식을 즐기는 일 역시 부끄럼 없이 지속하였다. 운이 좋았기에 다행이지 지금 같았으면 몇 번은 신문 사회면에 올랐을 것이리라.

무사할 사람 몇이나 있었을까?

 프로이트 말처럼 억압된 감정은 회귀된다. 나의 폭력 스토리들을 생각하면 가해 역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온 나라가 병영 집단 같았기에 학교는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폭력은 당연하게 자행되었다. 그 얘기들을 쓰기 시작하면 너무 슬퍼지니깐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교직을 처음 시작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젊은 계약직 교사에게 가해지는 학교의 기득권 집단들의 폭력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주당 수업시수부터 시작해서 수업하는 학년, 교무실에서의 업무 종류, 출퇴근 시간 등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계약직 교사에게는 없다. 뿐만 아니라 원하지 않는 동호회 활동,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원하지 않는 시간까지 이어지는 회식도 여전하다. 종교행사 및 동문회 행사가 잦았던 D고에서는 주말이나 휴일에 관계없이 그들만의 파티에 참석하여 온갖 잔심부름을 도맡았다. 회식 자리에는 전교조 교사가 오라 해도, 교총 교사가 오라 해도 군말 없이 끌려가서 코가 삐뚤어진 그들을 집까지 모셨고 그다음 날에는 그들의 수업도 대신 들어갔다. 혹시나 내가 선임들에게 충심을 다 하는 모습이 좀 부족하면 그들은 “야! 너 정규직 합격은 보장 못하지만 떨어뜨리는 것은 우리가 얼마든 할 수 있어. 잘 알지?”라는 협박으로 내 긴장의 끈을 잡아당겨주는 친절함(?)도 보여주었다. 그들은 2022년 지금도 건재하고 어느 사립학교를 가더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캐릭터이며 아직도 그 잘난 친절함을 과시하고 있다.

 사실 선진국일수록 정규직 근로자보다 계약직 근로자에게 제공되는 혜택이나 배려가 더 높은 문화가 우세하다. 계약직 사원은 지금 여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다른 곳으로 옮기면 그만이니깐. 하지만 우리나라는 IMF 이후 비정규직 신세는 파리 목숨과 같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였고 학교 사회도 거기에 예외일 수는 없었다. 많은 사립 고등학교에서 신규 정규교사 채용 과정에서 응시자들에게 합격의 조건으로 몇 천만 원에 달하는 돈을 삥 뜯을 수 있었던 것도 정규 교사 아니면 사람 취급 못 받는다는 학교 문화 덕분이리라.

최근들어서도 가끔 일어나는 일(2021년 사건)


 사실 아무리 과거에 내가 정규직 보장을 볼모로 많은 이들에게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당하여 내 영혼이 억압당했기에, 나보다 약한 이들을 찾아 앙갚음하는 심리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어린 학생들에게 자행되었던 숱한 폭력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인간은 자신이 상처를 입었던 기억만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 기억도 인지하며 아파할 수 있어야 비로소 성장이 시작된다. 이제야 그 성장의 초입에 들어서서 과거에 나로부터 육체와 정신의 스트레스를 제공받은 학생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만 용서받지는 못할 것이다. 더 이상 젊은 계약직 교사들이 기득권 교사들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애쓰는 것만이라도 똑바로 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어제 퇴근길에 애인과의 데이트를 미루고 교직원 체육대회에 억지로 참여하고 회식까지 따라가야 했던 어떤 계약직 선생님을 보았다. 어제도 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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