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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슨생 Aug 25. 2022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단상

두서없음 주의

 2018 여름 무렵 아내와 함께 아내의 외할머니를 찾아뵌 적이 있었다. 경북 영천의 외딴 시골집이었는데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더운 여름에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조차 없었고 방이나 부엌은 6,70년대 우리나라 시골과 흡사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놀란 것은 당신의 외손녀조차도 겨우 겨우 알아보는 치매 초기 환자인 80 후반의 노모가 집에 홀로 방치되어있다는 사실이었다. 근처에 계신 장모님만 아내의 외할머니를 간혹 찾아가 뵐뿐, 나머지 아들과 딸들은 거의 신경을 끄고 살고 있다는 얘기에 처음 뵙는 노모였지만 괜히 내가 죄송스러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아내의 외할머니는 내가 방문한 이후 치매 증세가 더 심해지셔서 결국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고 병세는 호전되지 못한 채 얼마 전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사시는 동안 고생하셨고 말년에는 철저히 외로우셨을 아내 외할머니였지만 그분의 빈소는 잘 나가는 아들, 딸, 사위들의 문상객들로 넘쳐났다.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역시 괴롭고 외로운 말년을 보내었다. 1889 1, 이탈리아 토리노의 거리를 걷던 니체는 마부의 채찍질에 고통받던 말을 끌어안고 울며 그대로 기절하였다.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의 니체의 삶은 거의 숨만 쉬고 있는 동물에 가까웠다. 말년의 니체는 온전한 정신으로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죽어가길 원하였지만 그의 여동생 엘리자베스는 니체를 철저히 상품화하였다. 그의 숱한 저작들은 여동생과 주변인들에 의해 위조되어 히틀러의 나치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하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자신의 삶이  이상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없음을 인식했을  철학자 들뢰즈(1925~ 1995)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선택하였다. 하지만 니체는 자살을   있을 정도의 온전한 정신조차 없었기에 숨을 멈추는 순간까지 비극적인 10여 년을 살아야 했다. 

니체의 여동생은 바이마르에 니체 아카이브를 세우고 하얀 사제복을 입힌 니체를 전시했다. 많은 관광객이 그를 구경하고 돈을 지불했다.

장성한 아들, 딸들에게 외면받았던 아내의 외할머니 역시 생의 마지막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기 어려웠으리라.

 사람은 생후 몇 년간, 그리고 말년이 되어 온전한 몸과 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제대로 살기 어렵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순간에도 주변인들의 관심에 따라 개인의 삶의 질은 오르락내리락한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고등학교에서 나의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었지만 퇴근 시간은 탄력적이었다. 단, 출근 이후 12시간은 지났다는 가정하에! 종교행사가 있던 그 학교에서 종교의식 시간에 자리를 채우는 사람은 언제나 계약직 교사들이었다. 일요일에도 그들의 종교의식 또는 그 학교 출신들이 즐기는 그들만의 놀이 뒷정리를 하며 성실히 쓰레기를 치워야 했다. 내키지 않았던 그 숱한 일들을 했던 건 그렇게 해야 정규직 교사가 될 수 있다는 주변 교사들의 조언(?!) 및 학교 분위기 때문이었다.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비정규직 교사들이 학교에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게 해 주는 주변 교사들은 별로 없다. 대신 당신도 열심히 공부해서 그 서러운 비정규직 때려치우고 당당히 합격하여 어엿한 정규직이 되어라 조언하는 교사들은 많다. 삶은 불확실성의 연속일진대 정규직  교사가 된다는 것도 운에 달려있는 것 아닌가?(그것이 돈이든 시험에 붙는 일이든.) 따지고 보면 우리 통제 밖의 문제이다. 정규직 되길 바란다는 조언은 결국 “네가 정규직 되기 전에는 제대로 선생 취급 못 받는 것은 당연하다. 고로 나는 너보다 우월한 인간인 거고.”이 말이 하고 싶은 것은 아닐는지. 그런 조언 말고 차라리 비정규직 선생님들 대신 야간자습 감독 또는 수업이나 한번 대신 들어가는 것이 그들에겐 더 큰 힘이 될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도 가져지는 것이 측은지심이다. 가족이나 직장동료인데 조금만 마음을 내면 상호 존중을 통한 인간성 존엄이 지켜지지 않을까? 참고로 난 계약직 교사에게 조언 따위도 하지 않고 별 도움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내 생각이 옳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보면 다정한 사람들이 많은 집단이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았던 것은 확실하다.

일독을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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