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학교에서 수학능력 시험을 앞둔 3학년들에게 수능에서 선전을 기원하는 응원 행사를 열었다. 코로나 이전 시절처럼 북 치고 꽹과리까지 울리는 이벤트를 열지는 않았다. 하지만 벽보 붙이기, 응원 영상 만들기, 간식거리 포장하기를 하느라 가뜩이나 수고 많았던 고3 담임 선생님들의 인력이 추가로 동원되었다. 3학년 수험생들의 수능 이전 마지막 하굣길에는 1, 2학년 모든 학생들이 수업까지 생략하고 동원되어 박수를 보내주는 이벤트가 열렸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이 손뼉 치는 이벤트를 ‘수능 출정식’이라 명명하며 매년 개최하고 우리나라의 많은 고등학교들 역시 매년마다 수능 출정식을 각 학교에서 치른다.
출정식은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 나가는 축구 선수들을 대상으로도 열렸다. 국가대표 축구 친선 경기 이후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대한 축구 협회는 다양한 쇼와 함께 선수들의 선전을 기대하는 이벤트를 열어 주었다.
출정(出征)이라는 낱말은 사전적으로 ‘군에 입대하여 싸움터에 나감.’ 또는 ‘군사를 보내어 징벌함’을 의미한다. 전쟁이 잦았던 중세 이전의 문화에선 출정식이라는 것은 자칫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자국의 젊은 청년들에게 나라의 명운을 맡기기 전에 치르는 실로 장엄한 의식이었으리라. 그런데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은 단 하루의 시험을 치르는 경험을 하는 것이지 결코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수험생들을 위해 치르는 응원 행사의 명칭을 수험생들 듣기에 덜 부담스러운 용어로 바꾸기만 하면 아무 문제없는 것일까?
대학 수학능력 시험을 응시하는 수험생에게 선전을 기원하는 응원 문화가 자연스러운 이유는 우리나라 중등 교육의 지향점이 대학 입학에만 몰려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대한민국 교육의 기본 이념은 ‘홍익인간 정신’의 실현이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 비단 대학 입학에만 국한되어 있을 수 있는가? 세상의 이치와 인간의 본성을 알고 깨달으며, 나를 더 알아가고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탐구해 가는 그 과정 자체에 교육의 목표는 매 순간 실현되어야 한다.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하는 세태가 아무리 만연하다 하더라도 적어도 학교 교육 현장만큼은 그 세태에 때 묻지 않은 청정구역이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조금은 더 행복해질 확률이 높아진다.
수능 응원한 것 정도로 사안을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느냐는 생각이 들 수 있을게다. 좋다. 몇 번 양보해서 대입을 지상과제로만 생각하는 학교 경영자들의 생각 입장에서 따져보자. 출정식을 성대하게 치른다 하여 수험생들의 성적이 그에 비례해서 상승한다는 보장이 있는가? 국가 주도의 큰 시험을 최초로 응시하는 고등학생들은 가뜩이나 긴장하고 떨려서 시험장에서 자신의 실력을 다 펼칠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거기다 대고 필요 이상의 기대를 보이는 어른들의 멘트들은 결코 수험생에게 도움 되지 않음을 나 역시 너무 많이 경험했다. 교사들과 학생이 수험생 응원 물품 제작하느라 쓸데없는 에너지를 투자할 시간에 수험생 개인마다 취약과목 보강 및 멘털 관리를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까?
나는 1986년 이후, 월드컵 출정식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대형 이벤트가 매번의 월드컵 직전마다 개최되어 방송을 본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월드컵 대표팀의 숱한 월드컵 도전 역사에서 조별 예선에 통과하여 토너먼트까지 올라간 사례는 2002년과 2010년 단 두 번밖에 없다. 1986년 이후에 대한 축구협회가 국내 축구 시장을 넓히는 노력과 함께 우리나라 축구 선수들이 어린 시절부터 학연, 지연에 얽매이지 않은 채 축구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문화만 형성하게 하였더라도 어떻게 되었을까? 보여주기 식 이벤트에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 없이 말이다.
수능 출정식에 혈안 된 학교 경영자들과 대한민국 축구 협회 관계자들 둘 다 사안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지만 내가 지적한 그 이벤트가 매번 반복되는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이에 대해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함이리라.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는 느낌이랄까. 학교에서 배움의 과정에 참여하는 학생은 시험에 관계없이, 필드에서 축구를 즐기는 어린 축구선수는 시합의 결과에 관계없이 그 자체를 즐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당장의 대입 결과에서 다른 학생보다 좋은 결과를 얻는 것, 당장의 시합에서 다른 팀을 누르는 것. 거기에만 혈안 되면 우리나라 교육과 우리나라 축구는 결국 우물 안의 개구리 수준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교육이든 축구든 변화를 위해선 우리 같은 평범한 당사자들이 문제 인식을 느끼고 뭔가 액션을 취하는 한 발걸음이 필요하다.
근데 국제대회에서의 축구경기 결과를 우리나라 교육에 접목시켜 생각한 건 좀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다. 월드컵 분위기에 너무 젖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