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줄게

by 성심


초록색 넥타이에 갈색 코트.

키가 너무나도 커서 고개를 한참 들어 보아야 했고,

시선의 끝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깨끗한 백발을 한 노인이 있었다.

노인의 걸음은 느리지만 컸고

노인의 육성은 조용하지만 진중했다.

나도 모르게 경외심이 들어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노인은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내 귀에 바람을 불었다.

'산입니다.'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 신앙을 찾는 사람.

이 두 사람은 자연을 보며 큰 경외심을 느꼈다.

이 두 사람이 산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과학자는 이렇게 물을 것 같다.

이 멋진 산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신앙인은 이렇게 물을 것 같다.

이 멋진 산은 누가 만들었을까?

어떻게 보면 자연은 과학이라는 아들과 신앙이라는 딸의 어머니일지도 모른다.

같은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어찌 이리도 반대로 닮았을까.


요즘 나의 관심사는 우주이다.

만일 신이 나에게 한 가지 소원을 허락한다면

‘우주가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주세요.‘라고 답할 만큼

요즘의 나는 우주에 한참 빠져있다.


과연 우주는 어떻게 탄생하였을까.

과학자는 빅뱅으로 탄생했다는 것이 정설이다라고 답할 것이고, 신앙인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고 답할 것이다. 성당에 다니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우주는 어떻게 탄생하였어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하여야 할까? 오랜 시간 성당에 다니녔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창조하셨어요.’라고 답하자니 현대적 양심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반문하며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과학은 우선 대중적인 관찰을 통해 현상을 목격하고

이 현상을 반복적이며, 재현이 가능할 때 과학의 영역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신앙은 이와 반대로 개인 일부분에게 경험되고, 반복이 가능하지 않으며 재현조차 쉽지 않다.

우주의 영역이 신앙이 아니라 과학의 영역으로 속하는 것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보이고, 우주 원리 속에 일정한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주에 빠지면 빠질수록 신앙과는 멀어지는 걸까?


먼 옛날부터 인류는 자연에서 비롯된 경외심으로 알기 위한, 설명하기 위한 노력을 무수히 해왔다. 아직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이 노력으로 앎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신앙의 영역은 점차 좁아진다. 먼 훗날 우주의 비밀을 모두 깨달았을 때 누군가 말할 것이다.

<신은 없었다.>

그렇다고 허무하다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알기 위해 해 왔던 노력들, 그 자체가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쏟은 노고는 신이 자신의 존재 유무를 담보 삼아 남겨준 선물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과 닮게 창조하신 분.

과학이 신의 모습을 감춰버릴지라도

우리가 노력한 그 마음속에는 사랑의 불씨로 영원히 남아있을 것 같다.


나에게 우주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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