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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생활에 커피 한스쿱

by 온세

커피를 떠올리면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17년도, 그러니까 노량진에서 한참 취업시험을 준비하던 때였다. 수험생활을 막 시작한 나는 나름 살찜을 방지하기 위해 처음으로 아메리카노를 시도했다.


왜 드라마에는 어른들이 꼭 이 씁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손에 들고 출근하는지 그때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미디어의 덕분이었을까, 비록 취준생이었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아웃 하는 나 자신을 나는 멋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에 노량진 4번 출구에서 나오면 왼쪽에 카페 하나가 있었다. 항상 창가를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를 시키고 공부를 했었는데 왼쪽에 커피 볶는 기계가 있어 그 카페에는 항상 꿉꿉한 탄 원두 냄새가 풍겼다. 나는 그 향을 좋아했던 것 같다.


돌아보면 그 카페가 내가 커피를 좋아하게 된 시작점이었다. 커피 볶는 향, 목재 디자인의 편안한 분위기, 고소하고 시원한 커피 한 잔의 조합은 ‘더 맛있는 커피’에 대한 욕심을 키웠다.


그러다 어느날 생각했다.

‘집에서 커피를 내려볼까?’


코로나 때문에 홈메이드 커피가 한참 유행했다. 드리퍼, 그라인더, 원두 등 선택해야 하는 것이 생각보다 다양했고 기구마다 알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초보에게는 역시 단순한 게 최고라며 칼리타 드리퍼부터 자동 원두 그라인더를 구입했다. 수동은 분명 하다가 지치고 원두가 고르게 갈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대단한 실력이나 기구가 준비되어 있던 건 아니지만 그렇게 홈메이드 핸드드립 커피에 입문하게 됐고 그 문화?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커피를 더 잘 내리고 싶은 마음, 커피를 더 맛있게 먹고싶은 마음으로 작년에 바리스타 학원에서 핸드드립 수업을 수강했다.


그때 배운 몇 가지 스킬을 집에서 커피 내릴 때마다 써먹고 있는데


1. 물 온도는 93도가 적정하다
2. 드리퍼에 종이 거름망을 끼울 때 끼우고 나서
물로 고르게 후루룩 적셔준다
3. 원두 수평 유지를 위해 드리퍼를 때려준다
4. 물을 부을 때 최대한 고르게 내린다


그 수업에서 배운 것은 커피는 모든 것이 변수라는 것. 그렇기에 그날 그날 같은 원두라도 커피 맛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원두의 세계도 다양하다. 원래는 탄맛 나는 커피를 좋아했다. 그 쓴맛이 아메리카노를 대표하는 맛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맛이 바뀌었기 때문일까 언제부턴가 산미 있는 커피를 원하게 됐다.


또 바리스타 학원을 다닌 이후에는 원두의 생산지가 컾피의 맛을 좌우하기보다 원두의 가공 과정이나 생산 고도?도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걸 표기하는 원두노트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 요즘은 핸드드립 카페에 가면 산미나 향에 대한 표기를 천천히 보고 고르는 편이다. 잘 모르겠으면 사장님께 직접 여쭤보기도 한다. “지난번에 이 커피를 마셨는데 산미가 너무 강하고 발효된 맛이 나서요, 혹시 다른 커피를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그리고 확실한 취향이 생기면 그때 원두를 구입해 집에 들인다. 나의 주말 행복을 책임져줄 원두를.


누군가에게 집에서 영화를 보는 시간, 누워서 핸드폰 하는 시간이 소중하듯 내게 커피를 내리고 마시는 시간은 한없이 소중하다. 주말에 가만히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면, 이 순간이 행복의 정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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