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생의 힐링타임
무인도에 떨어지면 어떻게든 살 방법을 궁리하듯 물리적으로 혼자 있는 상황에 놓이면 ‘홀로힐링’ 타임을 보낼 방법을 고민한다.
야근을 안 하는 날은 시간이 여유롭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거나 영화관을 가기도 하고 저녁만 먹고 바로 운동을 가기도 한다. 그럴 땐 어떻게든 잘 보내고 싶다!! 라기보다는 힐링도 스케줄이지 생각하며 보내게 된다.
어제는 집에 오니 10시가 넘어있었다. 야근을 하고 돌아오는 날에는 보상심리가 발동한다. 불과 몇 시간 남지 않은 이 하루를 잘 마무리고 하고 싶은 생각 때문이다.
과자함을 뒤져보니 먹다 남은 벌집피자가 있었다. 자취의 좋은 점은 과자를 눈치보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 내가 원하는 과자를 원하는 만큼 사놓을 수 있다는 것. 남기면 얼마든지 내가 먹으면 되니까.
여기에 혼술은 덤이다. 서울에서는 혼자도 술을 마시러 다녔는데 지금 사는 지역은 혼자 술 마시는 건 가능하더라도 술 먹고 집에 돌아올 방법이 없어서 나가서 술을 안 마시게 되었다.
그래서 스트레스 받는 날은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오기도 하고 토닉워터를 사오기도 한다. 하이볼은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게 가장 가성비가 있다. 내게 필요한 건 한번 사놓으면 1년을 먹는 조그마한 양주와 죄책감을 덜어줄 제로 토닉워터 그리고 약간의 성실함을 동반하는 얼음틀이다.
나홀로파티를 시작하기 전에는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 약간의 의식 같은 것이다. 재밌는 시청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그건 앞에 차려진 술상에 대한 모독이다.
OTT가 이 세계에 등장해서 얼마나 행복한지. 그리고 이 시대에 자취를 할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자취생에게는 한줄기 빛이다. 나는 딱 하나만 구독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OTT마다 성격이나 개성이 조금씩 다른데 내가 쓰는 건 독립영화나 옛날 영화가 많아서 혼영갬성을 챙기기 딱 좋다.
한때는 취미도, 여가시간도 강박처럼 느껴졌던 때가 있었는데 모든 자취생의 힐링 타임이 특별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저 그 시간으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하루를 잘 마무리하면 그것만으로도 잘 보낸 거니까. 벌집피자와 하이볼 그리고 영화가 오늘만큼은 나를 제일 행복하게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