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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센티 Jan 09. 2022

매일의 동화 14

종이책 1

 그 아이에게선 이상한 냄새가 났다.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냄새였다. 친구들은 이상한 냄새라며 수군댔지만 이상하게 난 그 냄새가 싫지 않았다.

 그 아이, 코라는 전학 온 첫날부터 특이했다.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을 보며 웃기도 했고 하늘을 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또 스크린이 아닌 바닥에 글자를 적는 흉내를 냈고 선생님에게 엉뚱한 질문을 했다. 아이들은 점점 코라를 피했다. 코라는 외톨이가 되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외톨이에게서 나오는 어둠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코라와 대화를 처음 나눈 건 탐정 대회 때문이었다. 

 “머드가 없는 곳을 조사해 오는 것이다. 컴퓨터가 전혀 연결되지 않은 곳을 찾아야 해. 이건 아주 중요한 대회야!”

 선생님은 ‘중요한’을 강조했다. 내 전자노트 위로 선생님의 말이 자동으로 정리되어 입력됐다. 

 이 대회는 매년 모든 학교에서 공통으로 열린다. 2인 1조로 이루어지는데 대회에서 우승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머드가 없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머드는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의 대통령이다. 컴퓨터 속 프로그램이지만 인공지능을 가진 대통령, 각 나라마다 그 모습은 다르게 표현되었지만 머드는 최고의 권력자였다.

 이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학교와 마을에서 영웅이 된다. 재작년에 우리 학교에서 우승자가 나왔는데 뉴스에서도 나올 정도로 크게 화제가 되었다. 그 팀은 100년이 넘은 나무들 사이에서 비밀 공간을 찾아냈다. 머드는 그 팀의 등급을 상승시켜 주었다.

 우리가 학교에 다니는 유일한 목적, 바로 등급 상승이다. 등급 상승이 될수록 우리는 고급 정보를 사용할 수 있다. 높은 등급이 사용할 수 있는 비밀정보는 우리뿐 아니라 부모님, 우리 가족을 부자로 만들어 주는 지름길이었다. 우리 가족은 11단계 중 겨우 5단계에 불과했다.

 “너, 나랑 같은 팀이 된 건 알고 있지?”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코라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관심 없다는 듯 바라보는 코라의 표정에 심통이 났다.

 “뭐가 그래서야. 우리도 빨리 계획을 세워야지!”

 “글쎄, 난 별로 대회에 참가하고 싶지 않은데.”

  코라는 벤치에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털더니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그 냄새가 났다. 시큼하면서 쾌쾌한 냄새, 냄새를 맡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거 무슨 냄새야?”

 코라가 고개를 획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왜?”

 코라의 표정이 날카로웠다. 냄새를 말하다니, 큰 실수를 저질렀단 생각에 귀까지 빨개졌다. 

 “그냥, 궁금해서……. 전부터 궁금했거든.”

 “궁금해?” 

 코라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궁금하면 우리 집에 올래?”

 “너희 집에?”

 “왜, 싫어?”

 처음 대화를 나눈 친구 집에 바로 초대되었다. 그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던 이상한 아이에게서. 하지만 딱히 거절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차피 대회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눠야 했으니까. 나는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코라의 집은 동네를 조금 지나 외각에 있었다. 외각은 동네 안쪽과 다르게 길옆으로 커다란 모니터들이 줄지어 붙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곳곳에는 감시용 CCTV 가 설치돼 있었다.

 코라네 집은 평범한 주택처럼 보였다. 현관에서 CCTV가 움직이더니 코라의 얼굴을 알아보고 자동으로 문을 열어 주었다.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부모님은 집에 없어. 움직이는 직업을 가지고 있거든.”

 나나 대부분 친구들의 부모님은 집에서 일을 한다. 컴퓨터가 회사랑 바로 연결되어 있어서 특별한 날이 아니면 굳이 회사에 가지 않는다.

 코라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거실 메인 컴퓨터에 조그만 칩을 연결했다. 그러자 컴퓨터 모니터엔 우리의 모습과 다른 화면이 촬영되었다.

 “아! 이제 자유다!”

 코라는 두 손을 하늘 위로 올리며 기지개를 켰다.

 내가 주변을 살피며 소파에 앉자 코라는 피식 웃으며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를 가지고 왔다.

 “메이드 봇은 없는 거야?”

 “메이드 봇이 뭣 하러 필요하냐?”

 “있으면 좋지, 명령만 하면 다 해주잖아.”

 “글쎄, 난 별로.”

 코라는 볼수록 특이했다. 하지만 오렌지 주스는 아주 맛이 있었다.

 “그래서 대회에 대해 생각해봤어?”

 사실은 냄새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차마 먼저 꺼낼 수는 없었다.

 “그건 됐고 나랑 같이 갈 데가 있어.”  

 코라가 내손을 잡아끌었다. 코라가 데려간 곳은 욕실이었다.

 ‘욕실?’

 “여기가 비밀통로 입구로 딱이거든. 머드의 관심도 닿지 않고.”

 코라는 촘촘하게 박혀있는 욕실 벽타일을 지그재그 순서로 눌렀다. 그러자 놀랍게도 벽면 가득 붙어있는 커다란 거울이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와!”

 “쉿!”

 문이 다 열리자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 조심해.”

 코라를 따라 천천히 지하로 내려가자 그 냄새,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퀴퀴하면서도 시큼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냄새. 코라는 지하실에 도착하자마자 벽에 붙어있는 버튼을 눌렀다. 지하실은 순식간에 환해졌다. 그러자 벽면 가득 있는 이상한 것들이 보였다. 나무로 된 틀 안에 빼곡히 꽂혀 있는 것들…….

 “책이야. 종이책!”

 코라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종이책?”

 그 단어를 말하자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마음속 깊이 숨어있는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책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만져 봐도 돼?”

 “물론!”

 나는 떨리는 손으로 여러 가지 종이책 중에서 제일 가운데에 꽂혀 있는 책을 꺼내었다. 묵직한 게 손에 잘 잡혔다.

 “와! 네가 이 책을 고르다니!”

 책에는 ‘어린 왕자’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있었다. 곱슬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넓은 바지를 입고 있는 어린아이의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어린 왕자 책’을 끌어당겨 코끝에 대었다.

 “이 세상에 딱 한권만 남은 책이야. 조심히 다뤄야 해!”

 코라는 책꽂이에서 다른 책을 꺼내며 당부했다. 

 첫 장을 넘겼다.

 “사락!”

 오래된 종이의 촉감이 손끝에 느껴졌다. 얇지만 부드럽고 단단하면서도 따뜻했다. 종이에 적혀있는 글자를 천천히 따라 읽었다.

 ‘여섯 살 때 나는 자연의 실제 이야기라는 원시림에 관한 책에서 신기한 그림을 본 적이 있다.’

 문장 밑에는 동물을 돌돌 말고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보아 뱀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빙그레 웃고 있는 코라와 눈이 마주쳤다.

 “네가 좋아할 줄 알았어.”

 첫 문장을 읽자 다음 문장부터는 술술 읽혔다. 눈으로 글자를 읽고 손으론 책장을 넘겼다.  재미있었다. 읽으면서도 계속 다음 내용이 궁금해 손에서 책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주인공이 되어 어린 왕자와 함께 별을 여행했다.

 한참 읽고 있는데 코라가 나를 불렀다.

 “이제 나가야 해. 부모님 오실 시간이야. 서재에 널 데리고 온 걸 알면 난리가 날 거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코라를 따라 서재에서 나왔다. 

 “종이책에 대해선 절대 비밀이야. 알았지? 약속을 지킨다면 다시 초대할게.”

 코라의 집을 나서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꿈을 꾼 것 같았다.

 ‘대회에 대해서 한마디도 못했네.’

 하지만 괜찮았다. 머드가 없는 유일한 곳을 알아냈으니까. 


 정확히 오후 7시, 둥근 식탁에 둘러앉아 메이드 봇이 차려준 저녁을 먹고 있었다. 5대 영양소가 골고루 균형 잡인 음식들이었다. 하지만 좀처럼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라온아, 왜 이렇게 못 먹어?”

 엄마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나는 밥을 먹던 수저를 내려놓았다.

 “엄마도 책을 본 적 있어요?”

 “책?”

 “종이책이요.”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더니 주방에서 후식을 준비하는 메이드 봇의 눈치를 살폈다.

 “쉿! 더 이상 말하지 말거라.”

 아빠의 눈빛이 무서웠다.

 ‘아빠가 왜 그러지?’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코라네 지하 서재에서 읽었던 ‘어린 왕자’가 계속 생각났다. 

 ‘어린 왕자가 어떻게 됐을까? 고향별로 돌아갔을까?’

 침대 옆 스크린 화면 검색창에 ‘어린 왕자’를 입력했다.

「어린 왕자-왕의 어린 아들을 어린 왕자라 함.」

 설명과 함께 왕관을 쓴 왕자의 사진들이 나왔다. 그게 전부였다. 곱슬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어린 왕자의 책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내가 5등급이라 보이지 않나?’

 검색어를 ‘책’으로 바꾸었다. 그러자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사이버 책에 대한 역사와 여러 개의 사이버 책들이 종류별로 화면에 나타났다.

 ‘사이버 책들도 많구나.’

 사이버 책을 찾아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선생님이나 어른들은 굳이 책을 읽으라고 하지 않았다. 검색어를 누르거나 말하기만 하면 정보가 나오는데 책을 읽고 머릿속 지식을 일부러 키울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이버 책들은 재미가 없었다. 

 오히려 어른들은 게임을 권장했다. 많은 게임을 해보고 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나는 망설이다 검색어에 ‘종이책’ 입력했다. 그러자 투명한 창에 빨간색 x표시와 함께 경고문이 떴다.

 ‘금지된 검색어입니다.’

 경고문을 받다니! 나는 재빨리 스크린을 껐다. 

 ‘어린 왕자가 고향별로 돌아갔겠지?’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매일 학교가 끝나면 코라네 집으로 놀러 갔다. 정확히 말하면 코라네 지하 서재로 책을 읽으러 갔다.

 어린 왕자 책은 그다음 날 바로 다 읽었다. 재미있었지만 결말이 슬퍼 여운이 남았다.

 그러자 코라는 ‘톰 소여의 모험’을 추천해 주었다.

 “남자애들의 이야기인데 아주 재미있어.”

 코라의 말이 맞았다. 톰 소여의 모험은 정말 재미있었다. 

 ‘어떻게 이런 말썽쟁이들이 있지?’

 미시시피 강에서 거북이 알을 파먹었다는 내용에선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너무나 긍정적인 개구쟁이 톰과 마음속까지 자유로운 허클베리 핀은 금방 내 친구가 되어버렸다.

 책을 다 읽고 나자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의 원래 꿈은 세계 여러 나라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여행가였다고 했다. 나는 아빠의 꿈이 이상했다. 검색어에 나라 이름만 입력하면 진짜 같은 가상체험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는데 굳이 여행을 해야 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건 진짜 여행이 아니지. 두 발로 직접 걸으며 주변을 느끼고 체험하는 게 진짜 여행이란다.”

 그렇게 말하는 아빠의 표정이 무척 씁쓸해 보였었다.


 “아빠,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까요?”

 나는 저녁 식탁에서 ‘톰 소여의 모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빠는 처음엔 아주 재미있게 들었다. 

 “거참 흥미로운 이야기구나.”

 웃음이 터져 나오는걸 꾹 참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가장 하고 싶었던 거북이 알 이야기를 했을 때 아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라온, 그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니?”

 “들은 게 아니에요. 읽은…….”

 “뭐?”

 아빠의 눈빛이 지난번처럼 날카로워졌다. 엄마가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라온아 대회 준비는 잘 되고 있니?”

 그제야 대회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네, 잘 되고 있어요.”

 “정말이니?”

 “정말이에요. 기대해도 좋아요!”

 기대라는 말을 주변을 기분 좋게 만든다. 험악했던 아빠의 표정이 누그러졌고 엄마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라온이 덕에 등급이 올라가겠는걸! 호호호.”

 가슴이 뜨끔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난 코라네 지하 서재를 대회 날 발표할 생각이다. 종이책이 남아있는 유일 한 곳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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