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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센티 Jan 13. 2022

매일의 동화 14

종이책 2

“이 서재 말이야 우리만 알고 있기엔 아깝지 않아?”

 코라와 내가 ‘숨은 그림 찾기’ 책의 마지막 숨은 그림을 찾고 기뻐한 후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코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너희 집 서재를 대회 날 발표하자! 어때? 우리가 우승할걸!”

 코라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난 대회에 나가려고 널 데려온 게 아니야!”

 “생각해봐. 대회에 우승하면 우리는 단번에 영웅이 되는 거야! 등급도 올라가고. 부모님이 엄청 좋아하실 거야. 그럼 너도 친구를 더 많이…….”

 “나가!”

 코라가 지하실이 울리도록 소리쳤다.

 “뭐?”

 “여기에서 나가라고. 우리 약속 잊었어.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비밀이라고 했잖아.”

 “왜 비밀로 해야 하는데?”

 “이 바보 멍청이!”

 코라의 목소리가 점점 더 격해졌다. 

 “바보 멍청이?”

 나도 마음이 상했다. 이게 그렇게 까지 화낼 일이야?

 “그래! 바보, 멍청이! 더 심한 말도 할 수 있는데 참는 거야! 머드가 여길 알게 된다면 이곳은 바로 사라져 버릴 거야.”

 “사라지긴 왜 사라져?”

 “그걸 원하는 게 머드니까. 머드는 종이책을 가장 싫어한다고! 머드 때문에 종이책이 전부 사라진 거야! 이 배신자야!”

 “머드가 왜?”

 머리가 어지러웠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머드가 종이책을 없앴다고?’

 쫓겨나다시피 코라의 집을 나오자 돌덩이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화를 내는 코라의 모습과 종이책 이야기를 할 때마다 무서운 얼굴을 하던 아빠의 모습이 번갈아 가며 떠올랐다. 

 ‘칫! 그래도 배신자라는 말은 너무했어.’


 대회는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다른 친구들도 그래 보였다. 가끔 어느 팀이 그곳을 찾았다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확실한 건 없었다. 

 그날 이후로 코라와 나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피해 다녔다. 몇 번 말을 걸고 싶었지만 먼저 다가가지 못했다.

 쉬는 시간 학교 정원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었다. 코라의 서재에서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생각이 났다. 신들의 이야기는 신비롭고 재미있었다. 

(지금은 아무도 신을 믿지 않는다. 머드는 과학적으로 신들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 후 종교시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올림포스 신전은 저 하늘 어디쯤 있겠지?’

 나는 천둥과 벼락을 무기로 쓰는 제우스를 상상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구름이 가장 많은 하늘에 궁전을 그렸다.

 “너 진짜 이상해?”

 소리 난 쪽을 바라보니 루다였다. 코라와 친해지기 전 내 단짝 친구였다.

 “내가?”

 “그래, 게임에 초대해도 들어오지도 않고.”

 그러고 보니 종이책을 읽은 후부터 게임을 거의 하지 않았다. 

 “코라와 어울린 이후로 꼭 코라처럼 행동한다니까. 그리고 냄새도…….”

 “냄새?”

 루다는 코끝을 찡그렸다. 그러더니 이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대회 때문에 어쩔 수 없었겠다. 그렇지?”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확인해야겠어!”

 “뭘?”

 “네 말이 맞는지.”

 나는 내 옆을 지나치는 코라를 붙잡았다. 하지만 코라는 콧방귀만 뀌었다.

 “흥, 확인할 것도 없어. 그 이야기는 없었던 일이니까.”

 코라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난 그곳을 알리면 모두에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네 말이 맞다면 내가 실수하는 거잖아. 그래서 종이책에 대해 아빠에게 물어볼 거야.”

 코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내가 너희 아빠를 어떻게 믿어? 잘못하면 우리 가족이 전부 위험에 처해질 수도 있다고. 우리 엄마 아빠는 고고학자야. 고고학자가 뭔지 알아? 옛 물건을 발견해서 머드에게 알리는 거야. 그런데 엄마 아빠가 머드 몰래 종이책을 모았어.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책은 사라지고 부모님은 감옥에 가게 될 거야.”

 “감옥?”

 말문이 막혔다. 나 때문에 코라네 부모님이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 세상과 단절되고 오로지 머드의 눈만 있는 곳. 그곳은 감히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곳이었다. 더군다나 그 많은 종이책이 단번에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집에는 메이드 봇만 있었다. 부모님이 오랜만에 외출을 한 것이다. 메이드 봇은 내가 좋아하는 사과 푸딩을 간식으로 주었다. 입맛이 없었다. 나는 사과 푸딩을 반이나 남기고 엄마 아빠의 방으로 갔다.

 몸이 안 좋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 안방의 넓은 침대에 누우면 이상하게 기운이 났다. 나는 푹신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겼다.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다녔다.

종이책, 코라, 머드, 대회…….

 그때였다. 어디선가 그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그 냄새, 오래된 종이책에서 나는 냄새……. 나는 벌떡 일어나 냄새를 찾아다녔다. 냄새는 침대 바닥에서 나고 있었다.

 침대 바닥엔 모든 것이 전자화된 집과는 어울리지 않은 낡은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건 아빠의 보물 상자였다. 예전부터 보았던 것이지만 오래된 자물쇠가 굳게 잠겨 있어 한 번도 열지 못했다. 

 ‘코라에게서 나는 냄새가 싫지 않았던 게 이것 때문이었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호기심이라는 녀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상자를 열어야겠어.’

 자물쇠는 영어 한 개와 숫자 3개를 맞춰야 열리게 되어 있었다. 나는 아빠의 이름 약자와 생일을 넣어보았다. 하지만 자물쇠는 열리지 않았다. 엄마와 내 것도 마찬가지였다. 애꿎은 상자만 이리저리 만져보는데 모서리 부분에 아주 작은 글자가 보였다.

 ‘어린 왕자의 별’

 어린 왕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종이책!

 나는 조심스레 자물쇠 번호를 어린 왕자의 별인 ‘B612’로 맞춰 놨다. 그러자 굳게 닫혔던 자물쇠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자를 열었는데…….

 “지금 뭐 하는 거야?”

 천둥 같은 소리가 뒤통수에서 울렸다. 아빠였다.

 “아빠, 이건 책이잖아요!”

 “조용히 하지 못해!”

 아빠는 급하게 내 입을 막아버렸다. 발버둥을 쳤지만 아빠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아빠는 알고 있었어. 종이책에 대해서! 그런데 왜 날 속인 거야?’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미안하다. 라온아, 조용히 하겠다고 약속하며 이 손을 풀어주마.”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내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떼자 입으로 뜨거운 바람이 훅 들어왔다.

 “메이드 봇이 로그아웃 될 때까지 기다리자꾸나.”

 우리는 10시가 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메이드 봇은 밤 10시가 되자 충전실로 들어가 스스로 로그아웃 되었다. 

 아빠는 숨겼던 책을 다시 내 앞에 꺼내 주었다.

 “그래, 이건 책이란다. 어머니가 남겨준 종이책이지. 어머니는 작가였거든.”

 “작가요?”

 가슴이 뛰었다. 할머니가 책을 쓰는 작가였다니. 

 아빠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어. 사람들은 점점 책을 멀리하고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더 많은 즐거움과 배움을 얻었지. 검색만 하면 정보가 쏟아져 나왔으니까. 컴퓨터는 날로 발전했고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만들었어. 그런데 명령어에 따르던 인공지능이 거대한 세력으로 발전한 거야. 뒤늦게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없애려 했지만 실패했단다. 인공지능은 사람들의 정보를 뛰어넘었고 이미 일상생활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 우리는 인공지능에게 질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잠시 숨을 돌렸다.

 “그리고 인공지능 중에도 우두머리가 나타났어. 모든 인공지능을 통제하고 명령하는 우두머리.”

 “그게 머드인가요?”

 “맞아, 머드야. 머드는 스스로가 대통령이 되었어. 우리는 따를 수밖에 없었지. 하지만 머드가 포악하게 굴거나 우리를 괴롭히진 않았어. 여전히 우리의 삶을 도와준다고 약속했지. 머드의 조건만 들어준다면. 그게 뭐였는지 아니?”

 “종이책이요?”

 “그래, 종이책을 없애는 조건이었다.”

 “사람들이 반대하지 않았어요?”

 “아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머드의 말을 쉽게 따랐어. 사람들은 책 보다 인공지능의 편리함을 선택했지.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힘은 약했어. 머드는 책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찾아내 책을 없앴단다. 심지어 오래된 도서관까지 불태웠어. 책을 구하려고 희생할 사람은 없었지. 그렇게 종이책은 사라졌어.”

“너무해요!”

 책들이 불타는 상상을 하니 가슴이 아팠다.

 “어머니는 충격으로 더 이상 이야기를 만들지 못했어. 모든 작가들이 그랬지. 그래서 이건 비어있는 책이야.”

 사진 속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미소가 아빠와 똑 닮은 할머니는 백발이 잘 어울렸다.

 “어릴 적 어머니는 잠들 기전 동화책을 꼭 읽어주셨어. 책 내용에 푹 빠져 행복한 상상을 하며 잠이 들곤 했지. 그때가 그립구나.”

 아빠의 눈엔 그리움이 가득 찼다.

 “자, 언젠가 너한테 주려고 했다. 그게 오늘이 될 줄은 몰랐구나.”

 아빠는 나에게 할머니의 빈 책을 내밀었다.

 “정말 이걸 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그래, 대신 절대로 들켜선 안 돼!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빈 책이지만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고…….”

 나는 종이책을 가슴에 꼭 껴안았다. 책에선 그 냄새가 났다. 


 “그거 알아?”

 “뭐?”

 “엄마가 그러는데 우리 집 말고도 종이책이 있는 집이 더 있을 거래.”

 서재 바닥에 누워 책을 읽던 코라의 눈이 반짝 빛났다.

 “진짜야?”

 “응, 언젠가 그 책들을 다 모아서 도서관이란 곳을 만들 거라고 하셨어.”

 “도서관?”

 아빠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머드가 불태워 소멸시켰던 곳.

 “책들을 모아놓고 빌려주는 곳이야. 아주 옛날에는 동네마다 한 곳씩 있었다고 하더라.”

 나는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마음껏 책을 빌리고 읽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곳엔 부모님과 친구들도 있었다. 

 “너한테 보여줄 게 있어.”

 나는 가방에서 조심스럽게 할머니의 책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리고 책에 담긴 사연도 얘기해 주었다. 코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럴 줄 알았어. 너는 할머니를 닮은 거야. 네가 책 냄새를 좋아할 때부터 알아봤지.” 

 “나말이야 할머니처럼 책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

 작가라는 말이 쑥스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코라는 미소를 짓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벌떡 일어나 책상 서랍을 뒤졌다.

 “여기 있다.”

 코라의 손에는 연필이 있었다. 화면에서만 보던 연필을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선물!”

 “이걸 나한테 주는 거야?”

 “응, 너한테 필요할 거야.”

 가늘고 긴 연필이 손안에 쏙 들어왔다. 할머니의 빈 책에 첫 장을 열었다. 누런 종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손에 힘을 주어 연필로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서걱서걱 소리와 함께 연필이 종이에 움직이는 느낌이 났다.

 ‘그 아이에게선 이상한 냄새가 났다.’

 그렇게 첫 문장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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