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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센티 Jan 17. 2022

매일의 동화 15

얼룩이 이야기

안녕, 난 얼룩이라고 해. 왜 얼룩이냐고? 그냥 다들 그렇게 부르더라.

 사람들은 내 모습을 보면 얼굴을 한껏 찌푸리며 이런 말을 하곤 해.

 “에고, 이게 웬 얼룩이야!”

 그래도 난 이 이름이 마음에 들어. 

 비밀하나 알려줄까, 난 사실 감이었어. 그래, 먹는감. 그것도 아주 빨간 홍시였지. 아이스크림보다 부드럽고 앵두보다 더 빨간 게 아주 탐스러웠어. 얼마나 탐스러웠냐면 재준이가 날 보자마자 한입에 먹으려고 했다니까. 하지만 난 재준이의 뱃속에 다 들어가긴 싫었어. 

 다행이 재준이의 입은 크지 않았지. 그래서 난 재준이의 옷에 떨어졌고 이렇게 얼룩이 된 거야. 재준이가 늘 입는 새싹어린이집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는 노란색 옷이었어. 얼룩덜룩 천지라 노란색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난 점점 갈색 빛으로 변해갔어.


 재준이는 6살짜리남자아이야. 내 얼룩옷의 주인이기도 하지. 늘 조용하고 말이 없는 아이야. 재준이의 비밀도 알려줄까? 재준이는 정말 멋진 친구야. 공룡노래도 잘 부르고 블록도 멋지게 쌓아. 특히 성을 잘 쌓는데 재준이가 만든 성을 보았다면 다들 박수를 칠걸!

 “정말 멋진 성이야!”

 그리고 웃는 모습도 정말 귀여워. 동그란 눈이 초승달 모양이 되는데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돼. 하지만 정말 아쉬워, 웃는 모습을 아주 가끔 보거든. 그리고 아무도 이런 모습을 몰라. 나밖에.

 난 내가 최고의 얼룩이라 생각하지만 가끔 아주 무서운 얼룩을 만나기도 해. 그건 재준이의 몸에서 만날 수 있어.

 재준이의 아빠는 화를 잘 못 참아. 왜 그런지 화가 나면 물건을 막 부수어 버리지. 그러다 온몸에서 화산이 폭발해. 그 불똥들은 여기저기 튀다 재준이 에게 와버려. 재준인 그 불똥을 절대 피하지 않아. 피하다간 더 큰 불덩이를 만날지 모르니까.

 불똥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얼룩들이 남아. 그 얼룩들은 처음엔 붉은색이었다 파란색으로 변하고 점점 주황색으로 변해가지. 마치 변신괴물 같아. 괴물들은 밤새 재준이의 몸과 마음을 괴롭혀. 재준인 얼룩이 생기는 날에는 끙끙거리며 소리 없는 울음을 내. 그건 나만 들을 수 있어. 난 절대로 재준일 아프게 하는 일이 없는데 말이야. 참 못된 얼룩이야! 


 날씨가 참 좋은 날이야.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라는 얼룩이 뭉게뭉게 떠있어.

 오늘은 재준이 아빠가 오랜만에 맨 정신으로 재준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어. 어린이집 입구에선 엄마 손을 잡은 해맑은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안으로 들어갔어. 재준이에게선 잘 볼 수 없는 표정들. 똑같이 맑은 하늘아래 있는데 재준이와 아이들의 표정은 참 다르더라.

 “재준이 왔니?”

 원장님이 재준이를 반겼어. 더도 말고 덜도 않는 딱 그만큼의 목소리야. 차라리 만화에 나오는 로봇 목소리가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재준이는 푹 숙인 얼굴로 교실로 들어갔어.

 처음 보는 선생님이 계셨어. 재준이가 며칠 쉬는 사이 담임선생님이 새로 바뀌었나봐. 둥근 얼굴에 뒤로 묵은 머리, 다정한 얼굴이었어. 전에 선생님은 늘 송곳처럼 날카로웠거든. 

 아이들이 크게 떠드는 소리에도, 정리를 안 해도, 먹기 싫은 밥을 남겨도, 또 싸우고 울어도 그 선생님은 참 뾰족했어.

 아이들은 원래 그런데, 그래서 아이들인데 그 선생님은 잘 이해를 못하는 것 같더군. 

 그나마 다행인건 하루 종일 재준이 에게 거의 말을 걸지 않았던 거야. 어쩌다 어린이집에 나와도 그 선생님은 왜 안 나왔었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았지. 무언가를 시키려다 한숨 섞인 목소리로 가끔 이런 말을 내뱉었어.

 “그래, 넌 원래 그러니까…….”


 하지만 새로 온 선생님은 왠지 달랐어. 재준이 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지. 입에서 관심이라는 비눗방울이 계속 뿜어져 나왔어. 

 “재준아! 그동안 왜 안 나왔니?”

 “재준인 무얼 좋아해?”

 “재준이 하고 싶은 놀이 있어?”

 재준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어도 아랑곳 하지 않더군. 그렇게 끈질긴 사람은 내가 생겨나고 처음이야. 조잘조잘 참 수다스러운 선생님 같아.

 그리고 아주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넘겨주면서 이런 말도 해주었어.

 “재준인 이마가 보이는 게 더 예쁜 것 같아.”

 남자아이에게 예쁘다니, 그런 말은 실례잖아. 하지만 재준이는 처음으로 선생님께 어색한 미소를 보였어. 그래, 사실 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어. 오랜만에 심심하지 않았거든. 

 나한테도 한마디 했지.

 “에고, 이게 웬 얼룩이야!”


 재준이 아빠는 꽤나 젊은 편이야. 아마 엄마도 젊었겠지. 재준이 엄마를 본적은 없지만 예뻤을 것 같아. 재준이의 동그란 눈은 아빠 눈이 아니거든. 재준인 아빠 앞에서 동그란 눈을 크게 뜨지 못해. 그렇게 눈을 뜨면 아빠는 꼭 이런 소리를 하거든.

 “동그랗게 뜨지 마! 자꾸 생각나서 열 받네.”

 재준이 아빠는 재준이 엄마를 정말 미워하는 것 같았어.

 그날도 재준인 눈을 동그랗게 떴었나봐. 아니면 아빠가 미리 화가 났었는지 모르지. 며칠 잘 다니던 일이 끝나고 게임도 잘 안 풀렸으니까.

 또 재준이의 몸에 괴물얼룩이 생겨버렸어. 그것도 지난번보다 더 많이! 그 얼룩들은 전보다 더 재준이의 몸과 마음을 심하게 괴롭혔어. 

 재준인 그 다음날부터 어린이집에 가지 못했어. 재준이가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아빠가 던져준 빵 몇 덩이와 식은 컵라면뿐이었지. 


  3일째 되던 날, 아빠에게 일이 생겼다는 연락이 왔어. 재준이는 다시 오랜만에 어린이집으로 갔지. 

 몸에 얼룩이 남아있는 날이면 재준인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 누군가 자신의 얼룩을 알아차리면 안 되니까. 그러면 그나마 있는 아빠마저도 떠난다는 걸 아빠는 누누이 이야기 했거든. 

 바보 같은 녀석! 재준이는 아직도 몰라.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는 걸……. 재준인 아빠가 떠나는 게 싫은가봐. 

 담임선생님이 재준이를 반겼어. 재준이의 옷은 나보다 더 진한 얼룩들로 뒤덮여 있었지. 며칠째 빨지도 못했으니까.

 “재준아! 옷이 이게 뭐야. 아이고, 선생님이 다른 걸로 갈아입혀줄게.”

 선생님은 내가 있는 옷을 벗겼어. 그리고 움찔했지. 선생님의 작은 눈이 커지면서 눈 안쪽에는 눈물이 고였어. 아마도 보았을 거야. 아직도 꿈틀되며 재준이 몸을 덮고 있는 그 괴물얼룩들을 말이야. 

 “재준아 너…….”

 말을 잊지 못했지. 선생님은 원장님을 불렀어. 심각하게 무언가를 한참 이야기 했지. 원장님의 대답이 돌아왔어.

 “선생님, 확신할 수 있어요?”

 재준이의 동그란 눈은 울상이 되었어. 중요한 비밀을 들킨 것 마냥 불안해했지. 

 “선생님, 전 괜찮아요. 그냥 넘어진 거예요.”

 재준이의 목소리는 곧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어.

 “그것 봐요, 아이도 괜찮다 하잖아요.”

 원장님은 차갑게 돌아섰어.

 선생님은 내가 있는 옷을 물이 가득 담은 세숫대야에 담갔어. 세제가 가득 풀어진 따뜻한 물이었지. 난 오랜만에 물속으로 들어갔어. 물을 머금은 옷을 힘차게 주물거리는 손이 느껴졌어. 선생님은 계속 반복해서 이런 말을 했어.

 “재준아, 선생님이 어떻게든 해볼게. 걱정하지 마!”

 사람의 온기가 이렇게 뜨거운 거였구나!


 원래 난 수다스럽지 않아. 오히려 조용한 편이라고. 그런데 나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었어.

 내가 사라지는 것을 아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아. 그렇다고 내가 많이 슬플 거라 생각하지는 마. 

 너희들도 얼룩이 있니? 옷 말고 어딘가에 분명히 얼룩이 있을 거야. 너희가 매는 가방이나 즐겨 읽는 책 또는 너희들 마음속이라도. 그리고 주변 친구들에게도…….

그러면 그 얼룩들에게 아주 잠시라도 관심을 가져줄래. 

 “이게 웬 얼룩이야?”

 이런 말이라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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