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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센티 Jan 22. 2022

매일의 동화 16

용이된 아이

 내가 입에서 불을 내 뿜는 순간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나를 향했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비명을 지르며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럴 줄 알았어.”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용이다. 입에선 불을 내뿜고 머리엔 단단한 뿔이 있으며 초록색 비늘이 온몸에 덮여있는, 등에는 커다란 날개가 달려있는 용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용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책에 나온 용의 특징을 읽고 나서 내가 용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 용의 특징 첫 번째 화를 잘 낸다.

 -용은 다혈질의 성격으로 화를 아주 잘 낸다. 또 화가 나면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기도 한다.


“또 화났어?”

“당연하지! 엄마가 게임을 못하게 하잖아!”

내가 큰소리로 이야기 하자 엄마는 더 큰소리로 말했다.

“게임이 좋은 거였으면 얼마든지 하라고 하지! 게임은…….”

“알았다고!”

나는 엄마 말을 다 듣지도 않고 현관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엘리베이터에서 하필 윗집 하은이를 만났다. 하은이는 영어 학원 가방을 메고 있었다.

“어휴, 네가 문을 박차는 소리가 우리 집까지 들려.”

얄미운 계집애, 툭하면 내 학교생활 일을 엄마에게 이른다.

“한번만 또 그 입을 놀려봐. 그냥 콱!”

“콱 어떻게 할 건데. 성질만 더러워서!”

“아휴.”

나는 엘리베이터를 나왔다. 차라리 계단으로 내려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계단을 쿵쿵 거리며 내려가면 스트레스도 금방 풀릴 테니까. 나는 커다란 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왔다.

1층에서 뽀글머리 아줌마가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계단 무너지는 줄 알았네. 뭔 발소리가 그렇게 크니. 꼭 코끼리 발소리 같다.”


* 용의 특징 두 번째 발소리가 크다.

 -용은 발이 아주 큰데 덩치까지 커서 움직일 때마다 커다란 소리가 난다. 이건 자신을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 전략이다.


“쿵 쿵 쿵 쿵”

“임지호, 천천히 다니라고 했지요?”

 담임선생님 나를 나무라며 말했다. 발소리가 원래 큰 걸 가지고 항상 저렇게 뭐라 하신다.

나는 바닥이 무너져라 소리를 내며 걷는 게 좋다. 엄마는 내 발소리만 들어도 내 기분을 안다고 했지만 난 원래 발소리를 크게 내는 것을 좋아한다. 왜 그러면 안 되는지 굳이 모르겠다.

만약 내가 진작 용 인줄 알았다면 큰 발소리를 내는 대신 하늘을 날았을 것이다.

나는 입을 쀼루퉁 하게 내밀고 자리에 앉았다. 짝꿍인 채원이가 필통에서 캐릭터라 그려진 지우개를 꺼냈다. 샤프처럼 누르면 나오는 지우개에는 내가 좋아하는 만화의 주인공이 그려져 있었다. 갑자기 내 필통 구석에 굴러다니는 지우개가 눈에 들어왔다. 연필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지우개가 볼품없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채원이의 지우개로 손이 갔다.

“잠깐, 한번만 써보자.”

“싫어, 어제 새로 산 지우개거든.”

채원이의 눈이 여우 눈으로 바뀌었다. 그 모습에 더욱 더 그 지우개가 갖고 싶었다.

“한번만 써보자니까. 넌 왜 그렇게 정이 없냐?”

“그러면 너도 사!”

채원이와 나의 언성이 높아지자 선생님이 우리 둘의 이름을 불렀다. 하는 수 없이 채원이의  캐릭터 지우개를 돌려줘야만 했다.

“흥, 욕심만 많아가지고.”

채원이는 지우개를 필통 속에 꼭꼭 넣어두며 중얼거렸다.


* 용의 특징 세 번째 욕심이 많다.

-용은 예로부터 여러 가지 신화나 전설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존재였다. 머리엔 뿔이 있는데 그 뿔은 욕심의 원천이다. 그 뿔때문에 가지고 싶은건 다 가져야 했다.


“엄마 나 저거 사줘!”

“뭘 또 사?”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게임 시계를 진서가 자랑 하던 게 생각났다. 진서의 팔에 매달린 게임시계를 보고 싶어 아이들이 수시로 진서 곁으로 갔었다.

“흥 그까지 것 나도 아빠한테 사달라고 하지 뭐.”

나는 친구들이 진서 주의에 있는 게 싫다. 진서는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심지어 최신 유행하는 모든 것들을 다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진서 말이라면 꼼짝을 못한다. 

“진서 녀석이 저 시계를 가지고 계속 잘난 척을 했단 말이야.”

“엄마는 진서 착하고 괜찮던데 넌 왜 그렇게 진서를 싫어하니?”

엄마가 진서를 칭찬하자 기분이 확 상했다.

“진서자식이 뭐가 괜찮아?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나는 들고 있던 리모컨을 바닥에 던졌다. 엄마가 눈을 치켜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임지호!”

“몰라, 나도 저 시계 사줘. 응? 제발 저 시계 갖고 싶단 말이야.”

“절대 안 돼! 너 얼마 전에 레고 산 것도 얼마 안가지고 놀았잖아.”

엄마는 단호했다.

“나 저거 사줄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숙제도 안하고 학원도 안가고!”

엄마는 말없이 탁자만 닦았다. 그러다 소파위의 내 발을 보았다.

“어휴, 뭐 살 생각 하지 말고 씻기부터 해! 아까 분명히 씻으라고 했는데 아직도 안 씻은 거야?”

엄마가 또 잔소리를 퍼부어 댔다.

“흥! 시계도 안 사줄 거면서. 안 씻어!”

“넌 왜 그렇게 씻는 걸 싫어하니?”


*용의 특징 네 번째 씻는 걸 싫어한다.

-용의 몸은 비닐로 덮여 있다. 이 비닐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용은 씻는 걸 싫어하는데 많이 씻으면 비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야, 너 머리카락에 뭐 붙어있다.”

뒷자리의 인후가 내 머리카락에 붙어있는 무언가를 잡아당겼다.

“아야! 뭐하는 거야?”

난 너무 아파서 화가 났다.

“아니, 뭐가 붙어있어서 떼 준건데. 왜 화를 내냐?”

인후의 손에는 끈적이는 무언가가 잡혀있었다. 약간 붉은 빛이 돌았다.

“어제 샌드위치 먹을 때 묻은 잼인가?”

“뭐? 어휴 더러워. 머리 안 감았어?”

인후는 머리카락에 엉겨 붙은 잼 덩어리를 바닥으로 던졌다.

“엊그제 감았으면 됐지. 매일 감냐? 옛날 사람들은 오히려 자주 씻으면 병난다고 했었단다.”

“큭큭큭 더러운 자식. 너도 참 씻는 거 싫어해. 난 안 씻으면 야단맞는데.”

인후는 웃으면서도 손을 책상에 박박 문질렀다.

“머리에 물만 뭍이고 감았다고 하면 돼. 그러면 엄마도 잘 모르더라.”

나는 나만의 노하우를 인후에게 알려주었다. 

“오, 나중에 귀찮을 때 써먹어야겠다.”

인후의 눈이 반짝였다. 인후는 나한테 배우는 게 많다. 우리의 대화에 채원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휴 더러워. 그런 얘기 그만하고 책이나 좀 읽어. 지금 책보는 시간인거 몰라?”


*용의 특징 다섯 번째 책보는 것을 싫어한다.

 -용의 눈은 멀리 있는 것은 잘 보이지만 가까운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작은 글씨나 눈앞에 있는 작은 것들을 못 볼 때가 많다. 혹여나 글자 같은 것을 오래보면 머리가 아픈 특징이 있다.


“텔레비전 그만보고 책 좀 읽으면 안 되겠니?”

아빠가 텔레비전을 보며 웃고 있는 나에게 잔소리를 했다. 아빠는 소파에 누워서 스마트폰만 보면서 말이다. 

“학교에서 봤어.”

나는 텔레비전에 눈을 떼지 않고 대답을 했다. 

“어휴, 애나 어른이나. 당신이나 그만 봐. 안 그래도 목 디스크 생겨서 병원 다니면서…….”

엄마가 거실로 나와 잔소리를 했다. 아빠는 슬그머니 스마트폰을 내려놓더니 눈을 감았다.

“임지호, 진짜 책 좀 읽어! 저 책꽂이에 읽을게 한가득 인데 넌 왜 한글자도 안보니? 엄마는 어릴 때 책이 보고 싶어도 없어서 못 봤는데. 아휴.”

엄마는 한숨을 쏟아냈다.

책꽂이에 일렬로 쭉 늘어진 책만 봐도 하품이 나온다. 과학, 역사, 수학, 영어, 전래동화 등등 부분별로 색깔별로 나란히 꽂혀 있는 책이 도대체 왜 재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텔레비전에는 수많은 만화 채널이 있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만 켜도 재미있는 게임이 넘치는데 말이다.

나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아무색깔의 책을 한권 꺼내서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책의 제목을 읽어보았다.

‘용은 우리주변에 있다!’

제목이 꽤 흥미로웠다. 방금 본 만화가 용이 나오는 만화였기 때문이다.

첫 장을 넘기니 용의 모습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었다. 커다란 몸집에 푸른 비닐, 등에는 큰 날개가 있고 머리엔 단단한 뿔이 나 있었다. 눈은 엄청 크고 매서웠으며 입에서는 불을 내뿜고 있는 용의 그림이었다.

‘용은 아주 옛날부터 우리의 전설이나 신화에 자주 등장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데 문명이 발전하면서 사라졌다는 설이 있고 존재를 숨기고 인간처럼 살고 있다는 설이 있다. 용은 몇 가지의 큰 특징이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떨렸다. 마지막 특징까지 읽고 나니 내가 용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자 그동안의 행동들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 내가 용이라면 엄마 아빠도 용일까? 아니야, 예전에 지나가는 말로 나를 힘들게 가졌다는 말을 했었어. 어디서 나를 데려왔을지도 몰라.’

‘사람들이 아니 친구들이 내가 용이라는 것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를 겁내면서 싫어할까? 아니면 멋지다고 좋아할까?’

‘선생님한테 말하면 어떨까? 아니다 개구리를 보고도 소리 지르는데 나를 분명이 무서워 할 거야.’

‘내가 용으로 갑자기 변하면 채원이는 경찰에 신고할지도 몰라. 인후녀석은 분명히 사진을 찍고 나를 인터넷 방송에 올리겠지. 소문이 나면 난 국립과학 연구원에 잡혀가서 실험대상이 될 거야!’

 수만 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래서 엄마가 나한테 잔소리를 했나보다. 내가 용인 걸 들키면 안 되니까!


“지호야! 어디 아파?”

엄마는 조용히 앉아서 밥을 먹는 나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긴, 난 이미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반찬으로 나온 버섯과 브로콜리를 아무 소리 없이 먹고 있었다.

“아니, 안 아파요.”

엄마는 눈을 더 크게 떴다. 그리고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너 왜 존댓말을 하는 거야? 우리 지호 맞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 나 다 알아요. 내가 용이라는 걸.’

“아니에요. 학교 다녀올게요.”

나는 재빨리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하은이를 만났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서있었다. 하은이가 힐끔 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독서 시간 ‘한국을 빛낸 위인들’의 책을 읽고 있었다. 오늘 학교에서 난 최대한 조용히 있었다. 용이란 걸 들키면 위험할 테니까.

“너 책보는 거야? 만화책이 아니고?”

인후가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나는 묵묵히 책을 보았다.

“얘 왜 이러냐? 진짜 책 보는 거야?”

인후가 채원이 에게 물었다. 채원이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것 같은데…….”

“야, 왜 그래? 너 진짜 이상하다. 이거 박진서가 읽었던 책이구나?”

인후는 내가 읽던 책을 잡아당기려고 했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만해!”

“뭐?”

“그만하라고!”

안 그래도 꾹꾹 참고 있었는데, 용인 걸 들키지 않으려고 꾹꾹 참고 있었는데…….

용이 특징 첫 번째 화를 잘 낸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인후를 향해 화를 냈다. 그러나 갑자기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더니 온몸에 푸른색 비닐이 돋기 시작했다. 머리위로 뿔이 났고 날개가 펼쳐졌다. 몸이 점점 커지면서 금세 교실을 꽉 채웠다. 나는, 나는 용이 되었다!

“크아앙!”

아이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문밖으로 빠져나갔다. 

“으악!”

“임지호가 용이 되었어!”


“지호야, 지호야!”

엄마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눈을 뜨니 엄마가 내 침대 머리맡에 있었다. 얼굴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엄마?”

“지금이 몇 신데 아직도 자고 있어? 너 어제 늦게까지 게임했지?”

“아니, 난 책을 보다가…….”

“무슨 책? 이거?”

엄마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책을 들어올렸다.

‘한국을 빛낸 위인들’

“이거 아닌데…….용은 우리주변에 있다! 그거였어.”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슨 소리야. 엄마는 그런 책 본 적이 없는데.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빨리 나와서 밥이나 먹어. 지각하겠다.”

엄마는 재빨리 방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이상했다. 분명히 용 그림이 그려져 있는 책이었는데, 그 모든 게 꿈이었다니. 

한편으로는 너무 다행이었다. 

‘그래, 내가 용일 리가 없지.’

책꽂이에 책을 넣으려는데 어제 책을 빼낸 그 자리에 다른 책이 있었다.

‘마녀는 우리 주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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