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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센티 Jun 22. 2022

매일의 동화 21

그 애가 나를 불러줄 때

난 먼지다. 그것도 아주 작아서 청소기조차 관심이 없다.

그런 내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편하기까지 했다.

그 애가 나를 불러주기 전까지. 그 애는 나를 보자마자 아는 체를 했다.

"이건 뭐지? 점이네."

그때부터 난 점이 되었다.  그 애의 볼에 붙기도 하고 대충 그린 낙서에 숨기도 했다.  바닥  틈 사이에 있을 때 그 애가 또 아는 체를 했다.

"앗, 개미잖아!"

그때부터 난 개미가 되었다. 땅속으로 들어가 굴을 파기도 하고 그 애가 떨어트린 젤리를 물어 옮기기도 하였다. 작은 화분에 붙어있는 진딧물을 잡고 있는데 그 애가 또 아는 체를 했다.

"신기한 열매가 열렸네!"

그때부터 난 열매가 되었다. 예쁜 바구니에 담겨 주방으로 옮겨졌다. 샐러드 사이에 숨어 있다 하마터면 믹서기에 갈릴 뻔했다. 겨우 탈출하여 식탁에 앉아 있는데 그 애가 또 아는 체했다.

"웬 얼룩이지?"

그때부터 난 얼룩이 되었다. 그 애의 손가방에 묻은 얼룩이 되고 음료수가 흘린 바닥의 얼룩도 되었다. 넘어져서 울고 있는 눈물 얼룩이 되었을 때 그 애가 또 아는 체를 했다.

"예쁜 꽃무늬네."

그때부터 난 꽃무늬가 되었다. 그 애의 예쁜 치마에 무늬가 되고 비 오는 날 비를 막아주는 우산의 무늬가 되었다.

달력 위에 무늬가 되었을 때 그 애가 또 아는 체를 했다.

"와! 정말 멋진 그림이야!"

그때부터 난 그림이 되었다. 여기저기 전시회에 다니기도 하고 예쁜 시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애 방에 걸린 액자가 되었을 때 그 애가 또 아는 체를 했다.

"넌 정말 좋은 친구야! 우리 같이 놀러 나갈까?"

그때부터 난 그 애의 단짝이 되었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기를, 아니면 내가 먼저 알아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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