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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센티 Jun 30. 2022

한 뼘 동화 1

부들부들 말랑말랑

매일 껴안고 자던 인형이 망가졌다. 우리 집 강아지 초코 때문이다. 그 녀석이 내 인형을 호시탐탐 노리더니 결국 이 사달이 났다. 아빠는 차라리 잘됐다고 했다.

"다 큰 녀석이 아직도 인형을 껴안고 잔다 했어. 이참에 혼자 자는 습관을 길러봐."

낡고 해졌지만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가장 친한 친구였는데...


내가 목놓아 울자 아빠가 똑같이 생긴 새로운 인형을 사줬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이 안 갔다. 전처럼 포근하지도 않고 이상한 석유 냄새가 났다. 그리고, 엄마가 느껴지지 않았다.

인형이 낯설었다.


인형은 방 한구석에 방치되었다. 인형이 없어도 잠이 잘 오기 시작했다. 침대가 넓어진 것 같았다.


비가 오는 깜깜한 저녁이었다. 일을 나간 아빠가 여즉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하영아, 아빠가 급하게 일이 생겨서 늦을 것 같아. 잘 있을 수 있지?"

"응. 걱정 마!"

씩씩하게 대답은 했지만 사실 엄청 무서웠다. 초코를 꽉 껴안았지만 녀석은 답답했는지 내 품을 피해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갔다.

티브이를 크게 틀어도 무서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방구석에 있는 인형이 생각났다.

인형에게 가까이 갔다. 코 끝을 찡그리게 만들었던 석유 냄새가 사라졌다. 인형 얼굴에 내 얼굴을 비볐다. 빳빳한 느낌이 사라지고 부드러워졌다. 인형을 꽉 껴안았다. 딱딱했던 인형이 말랑말랑 해졌다.

인형은 포근하고 아빠의 느낌이 났다.



-낯선 상황에 잘 적응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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