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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센티 Jul 13. 2022

한 뼘 동화 9

그림자

숨바꼭질을 하는데 제일 먼저 들켜버렸다.

이게 다 그림자 때문이다. 눈치 없이 바닥에 길게 늘어서서 어찌나 나를 따라오던지.

나는 그림자에게 소리쳤다.

"그만 좀 따라와! 너 같은 거 없어졌으면 좋겠어."

그림자가 시무룩해 보였지만 모른 척했다. 내가 이렇게 해도 그림자는 언제나 나를 따라올 테니까.


그런데 그림자가 진짜로 사라져 버렸다. 기척도 없이 조용히...

"흥, 너 없어도 난 아무렇지 않아!"

나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았다.


친구들이랑 운동장에서 노는데 친구들의 그림자 사이에 내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한 친구가 물었다.

"넌 왜 그림자가 없어?"

그러자 나머지 친구들도 말했다.

"진짜 이상하다. 어떻게 그림자가 없어?"

"그림자가 없으면 귀신 이랬는데, 너 귀신이야?"

귀신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발끈했다.

"아니야! 자기가 갑자기 사라진 거야!"

내가 소리치자 친구들이 수군거렸다.

나는 빠르게 운동장을 달려 나왔다. 달리면서도 허전했다.

'어디로 간 거야?'

내가 달릴 때마다 함께 달려주던 그림자가 생각났다.

무슨 행동을 하던지 항상 곁에 있어줬는데...

 

장마가 시작됐다. 구름이 햇빛을 가려서  나 말고도 모든 사람들이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그림자가 없는 거리는 어둡고 우울했다.

나는 계속 그림자를 생각했다.

"내가 잘못했어. 이제 돌아와."


긴 장마가 끝나고 다시 햇빛이 쨍하게 떴다. 거리는 사람들과 그림자로 가득했다. 나는 차마 바닥을 볼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등을 쳤다. 같은 반 준이었다.

"어, 그림자 다시 생겼네."

아래를 돌아보니 나의 그림자가 떡하니 바닥을 지키고 있었다. 마치 없었던 적이 없는 것처럼.

나는 준이에게 말했다

"운동장까지 누가 빨리 가나 시합할까?"

나랑 준이는 거리를 신나게 달렸다. 그림자도 같이 달렸다. 마음이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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