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인연
추월산은 전남 담양군과 전북특별자치도인 순창군에 걸쳐 있는 높이 731m로 아담한 산이다.
가을에는 산봉우리에 보름달이 닿을 듯 말 듯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역사의 정기와 문인들에 정서가 진득하게 묻은
볼거리, 먹거리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담양은 세 번 정도 방문한 기억이 있다.
죽녹원, 메타세쿼이어 가로수 길과 떡갈비를
먹으러 갔던 행복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논에는 모내기를 마친 모들이 잘 훈련된 군인이 열병식을 하는 것 같다.
3시간 30분을 달린 버스가 들머리인 대법원 가인연수관에 우리를 쏟아낸다.
산행거리 8.4km, 6시간이 주어졌다.
최고 기온은 26도, 현재는 18도다.
산길은 수초가 덮여 있어 희미하다.
허접한 로프와 나무를 잡으며 올라가야 하는
급경사가 이어졌다.
사진을 찍느라 길잡이 산악대장을 놓쳤다.
혼자 길을 가야만 했다. 정상 3.1km라고 적힌 낡은 표지판 방향으로 걸었다. 등산객들의 표적이 되는 나무에 달아 놓은 리본도 보이지 않았다.
임도가 나타났다.
순간, '길을 잘못 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13시 07분이었다. 산행을 한 지 2시간 30분,
정상 가까이에 있어야 할 시간이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산악대장에게 전화를 했다.
안내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단다.
홀로 최적의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불안했다.
임도를 따라 산을 내려가는 선택을 했다.
정상을 포기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안전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서울 출발까지는 3시간 20분 정도 남았다.
속도를 높여 걸었다. 배가 고팠다. 바쁜 마음에 아직까지 점심도 해결하지 못했다.
멀리 작은 저수지가 보인다.
마을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도로에 SUV 차량이 한 대 서 있다.
그 옆에는 연세가 지긋한 남자 한 분이 열심히 무슨 일을 하고 있다. 기쁜 마음에 다가서며 말을 걸자 등산복 차림에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어르신 여기가 어디죠?"
"순창군 복흥이랑께"
"추월산 관광단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뭐랑께 어디라 했소?"
"아이코! 큰일 나 부렁네. 오십 리는 가야 해 뿐데~"
뭐라 뭐라 하시는데 심한 전라도 사투리에 영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정리해 보니 3~4km 거리에 면소재지가 있으며 거기서 버스, 택시를 이용하라는 내용이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잰걸음으로 달아났다.
얼마 후, 차량 엔진소리가 나를 향해 쫓아왔다.
조금 전 그분이었다. 차문을 내리고 얼른 타라고 손짓한다. 뒷좌석에 올랐다. 산에 관련된 공공일을 하시는데 팀장이 담양으로 오라고 해서 급히
간다는 것 이었다. 가는 길목에 나를 태워 줄 심산에 급히 차를 몰고 쫓아오셨다.
순간, 울컥했다.
오래전에 산에서 때아닌 폭설로 고생하셨던 일,
간벌 일을 하다가 다쳤던 일, 물가가 올라 힘들다며 푸념하신다.
노익장이 대단하시다는 말씀에 "그랑께~"라며
씩 웃으시는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
러닝셔츠에 주황색 조끼를 입으신 팔뚝이 굵고
단단하신 것이 75세 연세답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점심이라도 대접하겠다고 말씀드리니 괜찮다며 손을 저으신다.
차 안을 주섬주섬 살피더니 명함을 주시고는 손을
흔들며 떠나신다.
'가마골 야생화' '나 ㅇㅇ'
덕분에 제일 먼저 날머리에 도착하였다.
목적지 근처에 있는 담양호 둘레길인 용마루길을 걸었다. 식당에서 어탕국수를 시켰다.
사진을 정리하고 산행 후기 밑그림까지 마쳤다.
추월산은 송강 정철이 떠오르는 곳이다.
송강의 작품중 하나인 '사미인곡', '속미인곡'은 조정에서 물러나 있을 때 송강정에서 지었다.
'사미인곡'이라는 노래가 있다.
2001년 여성로커 서문탁이 불렀다.
송강 정철이 지금까지 생전해 있었다면 열광팬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만백성에게 고(告)하노니 사랑하며 살지어다.
대체 무슨 이를 하관데 사랑하지 않고 살아가오.
쉬었다 간들 어떨쏘냐 난 사랑하며 사는도다.
인생이 이리 짧은 진대 어찌 사랑 맘껏 안 하리오.
사람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거늘 이렇게 된 세상
어이할꼬. 꼭 그리 하오리다.
사랑하며 살고 그 안에서 행복을 이룰지니
난 사랑을 하니니 정녕 있는 힘껏 사랑하며
그렇게 살으리오다.
그대들에게 이르노니 사랑 속에 살리로다.
어찌 혼자 살아가리오. 이제 함께 가자스라."
순창에서 담양까지 태워주신 소중한 인연의 진한 사투리와 따뜻한 마음이 떠오른다. "그랑께~"라며
씩 웃으시던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었던 날, 나는 뜻밖에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따뜻한 분으로 남을 것이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한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그 길에서 만날 수 있기를
소원하고 노력하면서~~
-2024년 5월 29일 추월산 산행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