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정의 세월

황악산을 넘다

by 홍삼이

•역정의 세월

최 경 선


괴나리봇짐을 챙겨

이레만에 우두령에 들어서니

학이 군무하며

과거길을 위로하네


한양 도성까지 남은 길

아직도 오백 리 남짓인데

초가 앞에서 손 흔들던

노모, 처자식이 아른거린다


차용한 노자와 식솔 걱정은

바람재 바람에 실어 보내고

봉우리 넘는 구름에게

시름을 잠시 맡긴다


땀 밴 모시적삼 허름한 몰골,

주모의 눈길이 심상치 않다

허기진 배 움켜쥐니

영락없는 외상술 선비가 아닌가


괘방령 급제방에

이름 석 자를 걸터이니

큰소리쳐본 들

무슨 소용이라


추풍령 길은 낙방이라

돌아 돌아 문경새재 넘고자 하나

과연 합격할 수 있을까

한양길 멀어짐이 깊은 한숨만 나온다.


-2024년 5월 23일 황악산을 넘으며-


괘방령은 '과거길','상로(商路)' 였단다.


황악산 산행기


우두령에 도착한 순간. 나는 마치 그 옛날 한양길에 오르던 선비가 된 듯했다.

거대한 돌로 빚어진 황소상이 우리를 맞이했다.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과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을 알리는 표지판이 우두령이 두 개의 도(道) 경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황악산과 민주지산으로 향하는 갈림길이라는 안내판도 보였다.

우두령 황소상과 두개의 道의 표지판

산 위에 옅은 구름과 짙푸른 숲이 눈앞에 펼쳐졌다.

삼성봉과 여정봉을 지나 바람재를 향하던 길에서 듬직한 50대 회원이 내게 다가왔다. 잠시 쉬어 가자며 배낭에서 바나나 하나를 꺼내 내민다.

그 인연으로 목적지인 괘방령 주차장까지 동반자가 되었다. 거래처로부터 오는 연락이 잦은걸 보니 사업을 하는 친구인 듯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대학교 후배였다.

세대 차이는 있었지만 공통점이 많아 대화가

수월하고 즐거웠다.


삼성봉과 여정봉


형제의 모습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형제봉을

지나 마침내 해발 1,111m 황악산 정상에 올랐다.

한반도의 중심에 우뚝 선 이 산은 정상에 서면 하는

일마다 잘 풀린다는 길상지지(吉祥之地)라 불린다.


과거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황악산.

삼천포, 진주, 산청, 함양을 지나 이 산을 넘어야 비로소 과거길에 닿을 수 있었다.

선유봉(1,045m)에 서니 저 멀리 김천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여우가 자주 출몰한다'는 여시골을 지나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여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황악산 정상, 선유봉, 여시굴을 지나다


마침내 괘방령에 도착했다.

'장원급제길', '上之上'(과거시험의 최고성적),

'영동군 매곡면'이라는 표지판이 우뚝 서 있다.

조선시대, 급제한 선비들이 이곳에서 합격을

기념하며 방을 내걸었다고 한다.


장원급제길, 상지상(上之上) 표지판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길로 많이 택한 문경새재.

죽령은 대나무처럼 미끄러워 낙방할까 두려웠고,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질까 기피했다.

오직 문경새재만이 새처럼 비상한다는 뜻에서 선비들의 발길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식당에 들어가 칼국수와 막걸리 한 병을 시켰다.

한양 천 리 길의 절반쯤을 지나 선비들은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추었을 것이다.

막걸리 한 잔에 희망과 불안을 삼켰던 그들처럼,

나도 산행을 마치고 한 잔을 기울이며 지난 시간을 되새겨 본다. 고달팠던 과거길의 선비가 되었던

하루였다.


산행정보

*산행코스:

우두령(牛頭嶺)~삼성산~바람재~형제봉~

황악산정상~선유봉~백운봉~여시골산~

괘방령

*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13km, 약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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