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골의 여름 나기

가리왕산의 인연들

by 홍삼이


가리왕산 산행


오랜만에 100대 명산 중 하나인 가리왕산을 찾았다.

휴가철이라 차량은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산악회원 중 한 분이 배가 아프다며 간이휴게소에서 정차하는 바람에 20분이 연착되었다.

당초 계획과 달리 1시간 이상 늦어진 것이다.


가리왕산은 1,561m로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산이다. 강원도 정선군과 평창군 사이에 있으며 '갈왕산'이라 불렸으나 일제강점기 때 '가리왕산'으로 불려진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들머리인 장구목이는 쾌청한 날씨로 적당한 바람이 불었다. 습도가 높아 땀이 쉽게 식지 않았다.

숲길을 오르다 보니 공기가 점점 싸늘해졌다.

냉골 바람이 스쳐오자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초록색 이끼는 양탄자를 깔아 놓은 것 같다.

영화 주연상을 받는 여배우가 그린 카펫 위를 당당히 걷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그칠 줄 모른다.

바위틈 사이에서 만들어진 크고 작은 폭포가 청랑한 물소리를 내며 계곡을 타고 울리는 소리였다.


이끼에서 나는 묘한 향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고, 아기 피부의 촉감처럼 보드라웠다.

발끝에 닿는 계곡물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이끼 낀 계곡의 낙수

정상을 1~2km 남겨둔 급격한 경사지를 제외하면

여름 산행 치고는 나름대로 수월한 산행이었다.

산줄기는 공룡의 등줄기처럼 이어졌고, 바람이

너무나 시원하다.


잊힌 인연과의 재회


장목구이, 어은골 임도(林道)를 걷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

'채ㅇ'이다. 10년간 인연을 맺었던 우리였다.

갑자기 소식이 끊겼고 15년가량 연락이 두절

되었다.


그러던 2년 전 어느 날, 생소한 전화번호가 휴대폰에 몇 번인가 떴다.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잊어져 가던 얼굴의 목소리, '채ㅇ'이었다.

슈퍼를 하고 있단다. 전철로 30분도 안 되는 지척이다.

얼마나 반기는지, 나와 헤어진 후 자기 자신을 추스르기도 바빴다며 고생담을 얘기한다.

이제는 그나마 숨을 쉴 정도로 형편이 나아졌단다.


어은골 임도를 따라

한 장의 추억


'채ㅇ'이와는 가리왕산에 대한 깊은 추억이 있다.

아득한 5월의 어느 토요일, 그의 고향인 평창에

1박 2일로 놀러 간 적이 있다.


토박이 친구, 2명을 소개받았다. 우리를 태운

차량은 알 수 없는 짐을 잔뜩 싣고 어디론가 달렸다.

커다란 자물쇠가 잠긴 철제로 된 문 앞에 섰다.

자물통을 열고 꼬불꼬불한 임도를 한참을 달렸다. 차량이 멈췄다. 어깨에 배낭을 둘러 맨 친구들을 따라 좁은 산길을 얼마를 갔을까?


깊은 산중에 작은 움막이 나타났다. 움막에는 산관리할 때 필요한 장비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어딘가와 연결된 호스를 통해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커다란 함지박에 넘치고 있다.


높고 깊은 산중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의외였다.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곰취 나물을 뜯어 삼겹살에 소주를 했던 그때가 너무나 좋았다.


가리왕산 산행중 찍은 하늘

현실과 친구와의 약속


며칠 전 '채ㅇ'에게서 전화가 왔다.

쩌렁쩌렁하던 그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달리 힘이 없었다. 병원으로 달려갔고 몇 가지 검사를 했다.

담당 의사가 '확장성 심근병증'이라는 생소한 병명을 얘기한다. 친구는 힘겹게 웃는다.


2년만 더 하고 그만둔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장전리 이끼 계곡에 피어나는 초록의 이끼처럼,

돌무덤 사이에 흐르는 물처럼, 푸르고 오래도록

우리의 우정을 나누자면 건강해야 한다.


낙엽이 물드는 계절이 되면 가리왕산의 추억을

찾기로 약속했다. 가리왕산의 좋은 이미지를

알려준 그때의 친구들과도 해후를 하기로 했다.


이끼 계곡의 몸을 담갔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쏟아진다. 그날의 추억과 재회의 날이 오버랩된다. 행복의 웃음이 계곡을 타고 흘러간다.


-2024년 8월 10일 가리왕산 산행 후 적다-

가리왕산 중턱에서 바라본 전경



● 제 목 : 냉골의 여름 나기

최 경 선


초록 양탄자 위로

여우(女優)가 나타나자

계곡이 우레처럼 탄성을 지른다


아기 같은 피부 감촉이

말초신경을 오싹거리고

냉골바람맞은 나뭇이파리

시리도록 파랗다


이끼 계곡 웅덩이에

속살을 감추니

소름 돋은 피부가

벌벌 떨며 웃더라




산행정보


*산행코스:

장목구이 입구~장전리 이끼계곡~ 장목구이임도

~정상삼거리~정상~마항치삼거리~어은골임도

~심마니교~가리왕산 휴양림 입구 버스정류장

*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11km, 약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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