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섬과 연애하다

보길도, 청산도가 미쳤다

by 홍삼이

● 두 섬을 여행하다


•꽃물결치는 대한민국


나라가 온통 봄꽃으로 물결친다.

흰색, 노랑, 분홍, 보라, 빨강...

배꽃, 벚꽃, 목련, 싸리꽃, 개나리, 유채꽃, 진달래,

동백 등 종류도 셀 수 없이 많다.


나만의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기차와 버스, 여객선을 갈아타며 남도의 봄기운을 온몸으로 느껴보고자 작은 배낭 하나를 걸쳤다.

새벽공기가 마음만큼 싱그럽다.


꽃물결만큼이나 여행객들에 옷차림도 다채롭다.

빨강, 노랑, 초록, 검정...

각자의 색깔로 멋을 낸 이들이

둘이서, 삼삼오오, 혹은 나처럼 홀로

여행길에 나섰다.

미지의 세상을 향해 떠나는 얼굴마다

환한 웃음이 번진다.

동백등 꽃이 만발한 남도의 일부분


• 여행 1일 차: 땅끝마을, 노화도, 보길도


광주 송정역에 도착한 열차에서 내려 예약된 관광버스에 올랐다. 50대 후반의 가이드 겸

운전기사가 우리를 반긴다.


나주에 들어서자 차창밖으로 하얀

배꽃이 핀 과수원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그 순간, 스무 살 무렵의 추억이 떠올랐다.


집 뒤편이 온통 배꽃밭이었던 여자친구.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그녀는 어느날,

'엘리제를 위하여 '를 잔잔하고

구슬프게 연주했다.

우리는 그 연주에 감탄했고,

그 시절엔 피아노조차 낯설던 때라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었다.


배꽃밭과 달빛이 어우러지던 시골길,

하얗게 웃던 우리의 모습이 아련하게 그립다.

피아노 음률이 배꽃밭의 구릉을 따라

흘러간다.

지금 그녀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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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얗디 하얀 밤

최 경 선


그날,

새하얀 밤, 보름달조차도

하얗디 하얗다

피아노 음률조차도

구릉 따라 하얗게 울었다


그녀의 하얀 웃음마저도

하얀 밤을 더 하얗게 만들었다


잊을 수 없는 하얀 밤,

하얀 길이 하얗디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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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는 버스 안에서 영암 출신의 하춘화, 강진

가수 이야기를 들려주고 월출산의 유명세도

소개한다.

점심으로 남도 한정식, 음식만큼이나 정감 넘친다.


'한국의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진도바다와

직접 취사가 가능한 '송호 해수욕장'을 지나

버스는 '한반도 최남단' 땅끝마을에 도착한다.


비릿한 바다내음, 살랑이는 파도,

텔레비전 애국가 배경에 등장했던 바위와

땅끝 비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긴다.

땅끝 비석과 괴이한 암석

여객선을 타고 보길도로 향했다.

40여 분 뒤 노화도에 닿는다.


노화도는 본래 '노아도(奴兒島)'라 불렀는데

윤선도가 어린 종을 데리고 이곳에 와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 이미지가 좋지 않아 지명을 고쳤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갈대 '노(蘆)'와 꽃 '화(花)'를 따서 지금은 노화도라 부르지 않았을까.

염등리 앞 갯벌에 갈대꽃이 피면 장관이란다.


노화도엔 상점마다 번호가 붙어있다.

그 옛날, 아낙네들이 글을 잘 모르던 시절

숫자는 알았던 그들만의 대화와 거래를 위해

가게에 번호를 붙였다고 한다.


이곳은 과거 2만 명이 살던 '부자섬'이었으나

현재는 약 4천 명 남짓.

"자녀가 전교 10등 안에 들길 원하면 이사 오라" 가이드의 농담에 웃음이 난다.

그 농담 속에서 이 섬의 전성기가 지나갔음을 느낀다.


보길도에 들어서며 가이드는 우측 노란 지붕 집을

가리킨다. 보길도 이장 집이란다.

지친 여정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예송리 해변, 자갈밭과 천연기념물 상록수가 인상 깊다. 윤선도가 제주도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이 섬에 닿아 남은 생애 35년을 머물렀다니,

그만큼 풍광이 뛰어났던 모양이다.

세연정(洗然亭)과 주변 정원을 돌아보며,

한 사람의 풍류를 위해 많은 이들의 손길이

닿았음을 느낀다.

은근한 부러움과 함께 "임금보다 나았을지도

모를 삶"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얄밉기도 하다.

예송 해수욕장, 세연정, 여객선 후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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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설움

최 경 선


붉기는 왜 이리 붉은가

나무의 붙임도 모자라서

땅에까지 피 토한다


추운 겨울 시련조차

아쉬운 듯 한송이 한송이

다시 피어난다


떨어지는 외로움에

작은 동박새만 징징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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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핀 동백꽃이 나무에 붙어있는 동백꽃보다

많다. 누군가 떨어진 꽃으로 하트를 만들어 두었다.

사랑의 꽃말을 대신하는 걸까?


동백은 꽃송이째 뚝 떨어지는 특이한 꽃이다.

그래서 '한 번은 나무에서, 한 번은 땅에서 핀다'는

말도 있다. 땅이 동백꽃이 핀 것 같이 붉게 물들었다.


분홍 동백이 자태를 뽐내며 다른 색의 꽃들처럼

자신도 보아 달라고 몸을 흔든다.

동백이 땅에 떨어진 모습과 분홍색 동백의 자태

황칠나무, 윤선도의 애첩이 머물던 암자, 아들이

살던 집등 섬 곳곳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버스기사의 목소리가 점점 약해진다.

오늘 여정의 끝이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윤슬이 반짝이는 땅끝마을.

살랑이는 파도 위에 비친 햇빛이 아쉬움을 더한다.

하루가 저물고 있다.

땅끝마을 윤슬과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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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2일 차: 청산도, 눈이 호강한 날


아침, 남도 한정식이 또 한 번 반긴다.

식당 밖으로 장보고 동상의 뒷모습이 보인다.

며칠 전, 여행객 중 한 할머니가

"왜? 장보고 동상이 '최수종'을 닮지 않았냐"며

농담 섞인 항의를 했단다.

"뒷모습만 보세요" 가이드의 재치에 웃음이 터진다.

오늘 하루가 유쾌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여객선을 타고 청산도에 도착했다.

공기부터 다르다.

사람도 많고 분위기도 북적인다.

벚꽃, 유채꽃, 청보리...

그 화려한 풍경이 내 혼을 쏙 빼놓았다.

말을 잃고, 셔터만 누른다.

장보고 동상 뒷모습과 청산도의 유채꽃,벚꽃의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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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가 미쳤다

최 경 선


진도 아리랑 가락 따라

굽이굽이 고갯길이

구슬프다


푸르름이 다했는지

구들장논이 샛노랗게

타고 있다


표현할 한계가

있음에 감사한다

청산도가 완전히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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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편제의 진도 아리랑처럼 굽이굽이 고갯길을

따라 구성진 노래가 울려 퍼진다.

봄쑥 향기 가득한 전과 완도항 막걸리 한잔으로

나도 어느새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


익숙한 탤런트의 얼굴도 눈에 띈다.

웃음꽃이 여기저기 피어난다.

2025년 4월 11일 청산도의 봄은 나에게

평생 남을 선물이었다.


유채꽃, 청보리, 넘실대는 푸른 바다,

쑥향 가득한 전...

느림의 미학을 가르쳐 준 청산도.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청산도 유채꽃 핀 전경과 구들장논 詩,주막의 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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