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을 걷다
● 영월의 뒤안길
최 경 선
뱃길 따라 이포나루
뭉게구름 그늘 짓고,
솔치골 솔내음 속
어음정 샘물로 목 축이니
긴 한숨만 새어 나온다
칠백 리 유배길
열흘 걸음, 아직 여기인가
단장가, 관음송 슬픈 사연
숨어있다
서강의 물수제비
뜨는 아이들
영어의 몸 노산을 무시하듯
영월호장 충절 서린
조촐한 능이 적막하다
수억 년 물방울이 자라나
거대한 석주 되니
서늘함 속에서 발걸음이 빨라진다
김삿갓 머문 곳 어디인가
구름은 무희처럼 춤추고,
떠도는 몸 감아본들
하룻밤 지새기 어렵구나
머물지 못하는 길손의 마음처럼
-2024년 5월 11일, 12일 처갓집 식구들과
청령포, 장릉, 고씨동굴, 김삿갓면을 여행 후 적다.
●영월을 거닐다.
•여행 첫날을 보내다.
1박 2일, 장모님과 함께 한 영월 여행.
청령포의 아카시아 향기 속에서 우리는 조용히
단종을 떠올렸다.
600여 년 전 단종이 걸었을 칠백 리 유배길을
상상해 보았다.
창덕궁을 떠나 광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이포나루에 도착했다.
수많은 고개 중 솔치재의 솔내음과 어음정에서
한 모금의 물을 마시며, 긴 한숨 속에 현실에 대한 원망과 체념이 뒤섞였으리라.
서강의 푸른 물줄기를 뛰어넘어 청령포에
도착했을 때 심정은 또한 어떠했을까.
쓸쓸히 서 있는 어가를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숙연해졌다. 소나무 틈에 서 있는 관음송이 단종의
외로움을 대신 전달한다.
노산대에 올라, 지는 석양을 지켜보며 한양을
바라보다, 푸른 숲과 푸른 강으로 둘러싸인
고립감에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생각하며 통곡하였으리라.
금표비 앞에서 영어의 몸이 되어버린 자신을
한숨으로 한탄했으리라.
서강의 물가에서 물수제비를 뜨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이들이 얼마나 부러웠을까.
단종이 영면하는 장릉을 찾았다.
새소리, 꽃내음이 진동하는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자그마한 능이 우리 곁에 다가왔다.
흐린 날씨만큼이나 찐한 마음이 들었다.
조촐한 능이지만 망주석과 문석인, 석마가 갖춰져
있어 왕릉으로서의 예를 다한 듯했다.
영월호장 엄흥도의 용기 있는 충절이 고마웠다.
고씨동굴 안, 수억 년의 시간이 물방울을 석주로 키워냈다. 서늘한 기운 속에 자연의 신비가
고요히 자라고 있다.
영월에 사시는 처가의 친척이 한걸음에 달려와
맛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칡국수와 감자전, 도토리 무침을 맛있게 먹었다.
이렇게 하루의 일정이 소화되었다.
•여행 둘째 날이 밝다
아침 일찍, 숙소인 리조트 주변 산책로를 걸었다.
밤사이 내린 비로 계곡에는 제법 물이 불어 있었다.
산중에는 하얀 구름이 걸려있다.
바람 따라 몰려온 구름이 내 몸을 감싸는 듯하다가도 이내 멀리 흩어진다.
오늘은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각자의 차량으로 먼 길을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는 어제 맛집을 소개해준 친척분과 차
한잔을 나누기로 약속했다.
동강의 푸른 물이 보이는 카페에서 둘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김삿갓면을 지났다.
구름을 따라 떠돈 김삿갓. 머물지 못하는 길손의
마음을 그에게서 보았다. 오늘 내 마음도 그랬다.
세월을 유람 삼아 떠돌았던 김삿갓이 오늘따라
부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