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깨우는 인왕산

인왕산 둘레길을 걷다

by 홍삼이

● 인왕산의 새벽

최 경 선


여명이 도시를 깨운다

짙은 구름, 미세먼지도

움찔대는 새벽의 숨결을

막지 못했다


분단의 아픔은 바위와

나무에 생채기로 남고

옥계석 올리며 쪼고 쌓던

땀방울, 성벽을 매끄럽게 한다


찢긴 소나무,

앙상한 까치집의

봄맞이는 쓸쓸하고

까만 밤 벗은 성곽마을엔

커피 향이 조잘댄다


어우러진 삶과 혼,

그림과 글로 밥 짓는 사람들

산허리 띠처럼 이어진 자하문

새벽닭 울음 멈춘 산길 위에

산객이 선다


-2025년 3월 1일 인왕산 둘레길을 걷다.

인왕산 정상 표지판과 산중에 있는 암반

산행정보


*산행코스:

독립문역 ~국사당~범바위~인왕산정상~

윤동주 문학관~창의문(자하문)~청와대 전망대

~만세동방 약수터~백운대~숙정문~삼청공원

~경복궁~안국역


*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약 15km, 4시간 30분



●인왕산 새벽을 열다


3월 1일, 오전 5시 30분경 집을 나섰다.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하고, 미세먼지도 나쁨 수준이다.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종로3가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탔다.

독립문역에 내리니, 거리는 조용했다.

휴일이라 그런지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 적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유일까.


아파트 단지를 끼고 오르니, 국사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선시대엔 남산을 신격화한

목덕대왕에게 제를 올리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무속 신앙의 굿당으로 변모했다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역사와 민속이 겹쳐지는 장소다.


국사당 푯말과 정면 부분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니 화강암을 깎아 만든

성벽이 나타난다. 그 옆으로 이채로운 도성길이

이어지고, 뒤돌아보니 남산이 미세먼지 속에

뿌옇게 떠 있다.


짙은 구름과 먼지를 뚫고 붉은 해가 벌겋게

도시를 깨운다.

비록 선명하진 않아도, 도시를 밝히기에 충분하다. 106년 전, 대한독립을 외치던 그날의 새벽도

이토록 희미하고도 뜨거웠을까.


인왕산에서 본 서울시내와 성벽길

성벽 위에 '옥계석'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빗물이 성 안으로 흘러드는 걸 막고, 유사시에는

돌을 밀어 적을 떨어뜨리던 장치였다.

역사의 무게가 얹힌 듯, 돌 하나도 가볍지 않다.


성곽마을은 고요하고 여유롭다.

까만 밤을 벗은 골목에 커피 향이 스민다.

앙상한 가지 위에 까치집은 봄맞이조차 황망한

듯하다. 정상석 앞에서 기지개를 켜자 서울의

기운이 몸속으로 스며드는 듯하다.


성곽마을과 앙상한 가지 위에 까치집

'한양도성 부부 소나무'.

서로 다른 뿌리에서 자라, 가지를 이어 한 나무처럼

엉킨 연리지(連理枝).

한쪽이 죽으면 다른 쪽이 영양을 나눠 살아가게

돕는다 한다.

그러나 도성 밖 현실은 연리지와는 정반대다.

서로를 힐난하고, 세(勢)를 과시하며, 심지어는

저주까지 서슴지 않는 작태가 벌어진다.


3.1절의 정신은 사라졌고, 연리지 소나무 같은

기대조차 아득하다.

'국민'이라는 말만 반복하는 정치의 공허함이

서글프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를 비롯한 31명의

북한 무장공비가 청와대 습격 사건이 있었다.

곳곳에 그때의 아픔도 묻어있다.


'한양도성 부부 소나무'와 '최규식 종로서장' 동상

창의문을 지나며 '청운 문학 도서관'과

'윤동주 문학관'을 스친다.

'한옥과 골목길, 문화예술이 만나는 세종마을'

이라는 문구가 정겹다.

창의문은 자하문(紫霞門)이라 불리며, 자줏빛

노을이 아름다워 붙은 이름이란다.

문 추녀에는 나무로 깎은 닭, '목계(木鷄)'가

매달려 있다. 지네 같은 지형을 누르기 위해

닭 형상을 단 풍수의 흔적이다.


'윤동주 문학관'과 창의문

●서울, 분열의 함성이 난무하다.


청와대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백악정과 전망대에

오른다. 푸른 기와가 돋보이는 청와대와

세종대로가 눈에 들어온다.

만세동방 약수터엔 얼음이 얼어 있다.

아직 봄은 멀리 있다.

'청와대'와 '만세동방 약수터'의 모습

백운대, 숙정문, 삼청공원을 지나 도심으로

내려오니 분위기가 달라진다.

스파커의 마이크 소리, 함성, 깃발.

경복궁과 안국역을 사이에 갈라진 정치구도.

시내는 시끄럽고, 사람들의 얼굴엔 피로가 겹쳐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하다.

세상이 이토록 소란스러운데, 경기가 좋을 리 없다.

정치 지도자들의 말은 공허하고, 가슴은 답답하다.

수유역 근처에서 종권과의 점심 약속이 있어

무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삼청공윈' 돌탑과 어느 음식점앞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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