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산, 다시 걷는 길

25년 전을 걷다

by 홍삼이


• 하루에 두산


춘천의 삼악산과 홍천의 팔봉산을 하루 만에

오르기로 일정을 잡았다.


삼악산은 3년 전에 다녀왔던 곳이다.

능선 아래로 펼쳐진 북한강의 맑고 푸른 물줄기,

그리고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붕어섬의 자태는

여전히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삼악산 중턱에서 바라본 붕어섬

•흐린 날, 선명해지는 기억


팔봉산은 약 25년 전, 회사 재직 시절 팀원들과

함께 올랐던 산이다. 예보에 따르면 삼악산은

흐리고 오후 2시 이후에 약 5mm 정도 비가

내릴 예정이다.

팔봉산은 하루 종일 흐릴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를 벗어나 하남시를 지날 무렵부터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삼악산 들머리인

의암댐 매표소에 도착하니 다행히 비가 그쳤다.

하지만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고 있어 언제

다시 비가 올지 알 수 없는 날씨다.

산악대장은 미끄러운 길에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들머리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변성된 암석들이 발길이 닿을 때마다 부서져

흘러내린다. 그러나 힘겨운 걸음도 북한강의

푸른 물줄기와 붕어섬의 모습이 달래준다.

절벽에 핀 분홍빛 진달래와 기암괴석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마침내 용화봉 정상에 올랐다.

조그만 정상석이 휑하게 놓여 있어 다소

초라해 보인다.


하산은 흥국사, 등선폭포를 거치는 길로 정했다.

비교적 수월한 코스였다.

흥국사 앞에 핀 목련꽃이 인상적이다.

넓적한 꽃잎이 절정을 지나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흥국사 앞 목련꽃과 등선폭포

•감자전과 김밥


허기가 몰려왔다. 버스가 휴게소를 그냥 지나친

탓에 아침을 거른 위장은 더욱 허기를 호소했다.

등선 폭포 근처에서 식당을 찾아 감자전을

주문했다. 가져온 김밥과 함께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니 어느새 11시 30분이다.


• 기억 속의 팔봉산, 그리고 팀장의 무게


25여 년 전, 영업부서 장으로 발령을 받고

긴장감 속에 팀원들과 함께 찾은 팔봉산.


그날은 산행이라기보다는 책임이라는 무게와

걱정이 동반된 여정이었다. 다들 무사히 내려온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기적 같기도 하다


50여 명의 팀원 중 남자 직원은 10여 명뿐,

대부분이 여직원이었다.

1봉을 오르기도 전부터 엄청난 스트레스가 시작되었다. 가파른 바위와 협곡을 곡예하듯

건너는 팀원들을 보며 불안감이 엄습했다.

게다가 등산화가 아닌 일반화를 신고 있는

직윈들도 있었다.


'[산행 전날, 춘천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50여 명의 직원들과 함께 했다.

당연히 선임 사원들이 잘 통제한다는 전제였다.

하지만 신입사원인 '한ㅇㅇ주임'이 술에 취해

무희들이 춤추는 무대에 뛰어들었다.

난리가 났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잘 마무리했다.

정신이 없었다.]'


'[산행 당일, 이ㅇㅇ대리의 보고에 아연실색했다.

호텔의 호실 냉장고 내 양주가 사라져 객실비가

수십만 원이 늘어났다.]'


산행 전 날 사고와 사건으로 스트레스 속에서

진행된 산행은 정말 길고도 긴 하루였다.

목적지에 어떻게 도착했는지, 정신없이 지나갔다. 팔봉산의 수려한 풍광을 감상할 여유조차 없었다.


강원도가 고향인 '홍ㅇㅇ대리'가 사전 답사 후

추천한 산이었기에 안심했던 것이 불찰이었다.


•다시 찾은 팔봉산, 전혀 다른 느낌


지금 다시 찾은 팔봉산은 그때와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발아래 홍천강이 도도히 흐르고,

기암절벽이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산새들의 짝짓는 소리마저 정겹게 들린다.

1봉에서 8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은 각기 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 암릉이 많아 조심해야 하지만, 이제는 그 길조차도 감탄하며 오를 수 있다.


•그날의 동료들, 다시 만난 자리


오는 4월 26일, 그때 함께 고생했던 팀원들과

저녁을 할 예정이다.


•임원이 되어 여전히 회사에 근무 중인 한ㅇㅇ

•물류회사에서 부장으로 재직 중인 장ㅇㅇ

•용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신ㅇㅇ

•식품대리점을 경영하는 이ㅇㅇ

•중소기업 부사장이 된 홍ㅇㅇ


"홍대리! 팔봉산이 산행하기 쉽다며~?"


중소업체 부사장이 된 '홍ㅇㅇ'에게 그때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추궁해 볼 생각이다.


'한ㅇㅇ주임', 지금은 대기업 임원이지만,

신입사원 때 근태 문제를 소환해 봐야겠다.


'장ㅇㅇ주임', 그가 운전하던 차에 탔다가

겨울 빙판길에 미끄러져 트럭과 충돌했던

일로 골병이 들었다며, 떼를 써봐야겠다.


키가 큰 '신ㅇㅇ대리', 매출이 큰 거래처를

담당하며 늘 바빴다.


'이ㅇㅇ대리', 예산과 인력 관리를 맡아 팀을

든든하게 보좌했다.


과거를 회상하며 수다를 떨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된다.


-2024년 4월 11일 삼악산, 팔봉산을 다녀온 후.


산행정보


•삼악산 산행코스:

의암댐 매표소 ~상원사~정상~흥국사~

등선폭포 ~등선폭포 매표소

•삼악산 소요시간 및 산행거리:

약 5.3km, 3시간 30분


•팔봉산 산행코스:

매표소 입구~1봉에서 8봉~홍천강변 ~

팔봉교~팔봉산 관광주차장

•팔봉산 소요시간 및 산행거리:

약 4km, 3시간 30분

팔봉산의 1봉~8봉

•뜻밖의 반전


하지만 4월 26일, 동료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뜻밖의 반전이 있었다. 우리가 30년 전 올랐다고

믿어왔던 산이 팔봉산이 아니라 '춘천 오봉산'

이었다는 것. 이름이 비슷해 혼동했지만,

그 착각마저도 웃음꽃이 피는 계기가 되었다.

기억은 흐릴 수 있지만, 함께 한 사람들과의

추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추억을 더듬기 위해 오봉산도 가봐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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