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의 비련
강원도 정선군, 평창군에 위치한
백운산(882.4m) 여행을 위해 새벽을 깨웠다.
쌀쌀하지만 쾌청한 하늘을 보니 마음까지 맑아진다.
오후 2시경 눈 또는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다.
기온은 10도 내외로 산행하기에 적합한 날씨다.
산악대장이 처음 방문하는 회원을 체크한다.
나를 포함해 7명이다. 1년에 한 번은 꼭 찾아야
하는 곳이라며, 요즘이 그 시기라고 한다.
위험 표지판이 32군데나 있으니 주의를 부탁한다.
시퍼런 계곡물이 흐르는 동강의 좁은 도로를 한참
달린 버스는 들머리인 문희마을 주차장에 도착했다.
출발부터 가파르다. 뒤를 돌아보면 아찔할 정도다.
참나무 가지 사이로 푸른 물줄기가 번뜩인다.
그 물빛은 마치 세월을 거슬러 온 듯 깊고도 맑다.
1시간 30여 분 만에 힘겹게 오른 정상, 그곳에서 맞이한 바람은 고생 끝에 얻은 선물이었다.
동강의 푸른 물결, 그 물길로 생계를 이어온
뗏목꾼들이 떠올랐다. 정선에서 한양까지 목숨 걸고 나르던 이들이었다.
'떼돈'이라는 말은 바로 이 뗏목꾼들이 큰돈을 벌고 돌아오면 큰 황소 한 마리를 샀다는 데서 생겨났다.
보름이면 도착해야 하는 천리길, 물살이 잔잔하면
힘이 들고, 거세면 생명이 위태롭던 그들의
고단함을 생각해 봤다.
내리막이 오르막보다 더 위험했다.
뾰족한 암릉을 곡예하듯 걷고, 90도 가까운
비탈을 내려올 때 등골이 오싹했다.
등산 전 산악대장이 한 말이 생각났다.
몸이 뒤틀리고 비비 꼬인 참나무의 기괴함과
노랗게 핀 생강나무 꽃, 마른 참나무 가지에 핀
초록의 겨우살이는 잠시나마 위험을 잊게 했다.
가파른 절벽 바위 사이에 피어난 '동강 할미꽃'을 마주했을 때는 환희의 순간이었다.
할미꽃의 사연을 떠올리며, 산등성에서 바라본
하늘이 유난히 맑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학수고대하는 할머니의 간절함이 하늘을 향해
꽃으로 피어났을 정도였으니~
'동강할미꽃'에 대한 애절한 사연을 뒤로하고
수십 길 낭떠러지 능선길을 걸어간다.
'옻칠한 개발자국 고개'라는 칠족령에 도착했다.
'뼝대'는 강원도 사투리로 고개를 의미한다.
옛날 옻칠 장인의 기구한 삶이 묻어있는 '뼝대' 길,
잠시 산행하면서도 힘들어하는 내가 허구한 날
다니던 그를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칠족령 전망대에서 동강이 감싼 제장마을과 연포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恨)과 비련, 슬픔까지도 물살에 감추는 동강의 도도함이 절로 존경스럽다.
동강의 푸른 물결을 보며 '정선 아리랑'의
슬픈 구절이 스쳐간다.
"황새여울 된 꼬까리에 떼를 띄어 놓았네."
"전산옥(全山玉)이야! 술상 차려 놓게나"
"바람은 손발이 없어도 나뭇가지를 흔드는데"
"그대 당신은 양손이 있어도 가는 님을 왜
잡지를 못하나"
문희마을 주차장에 다다를 즈음, 갑작스레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동강 위에 안개눈이 강한 바람에 구름처럼 흘러왔다 멀어져 가는 모습이 얼마나 신비로운지,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동강에
감탄하며 발걸음을 멈췄다. 채 가시지 않은
'뗏목꾼의 여정', '동강할미꽃의 잔상',
'정선아리랑의 슬픈 곡조'가 긴 여운을 남긴다.
뒤돌아본 동강 백운산, 그 푸른 물결과 전설이 한참
동안 가슴을 울렸다.
-2025년 3월 29일 동강 백운산 산행 후 적다-
산행정보
*산행코스
문희마을 주차장 ~백운산 정상~ 칠족령~
칠족령 전망대~문희마을 주차장
*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약 6.9km, 5시간
● 동강의 비련
최 경 선
뗏꾼들아!
아우라지에 뗏목 띄어라
황새여울 급류 타고
떼돈 벌러 가자구나
어라연의 전산옥아!
술상 차려 놓아라
술판 벌여 놀자꾸나
목숨 걸고 벌어 온 돈
천리 물길 따위야 두렵지 않다
옹크린 '동강할미꽃',
봄날 눈안개 몰아친들
절벽 위 바위틈에
하늘을 향해 꼿꼿하다
정선아리랑의 여운은
동강따라 유유히 흐른다
"간다는 갈 왕(往) 자는 당신이 가지고 가소"
"오신다는 올 래(來) 자는 내게 두고 가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