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잔디 위의 인과응보

며느리가 캐디였다고요?

by 홍삼이


며칠 후 전직 임원 OB 모임 골프 라운딩이 있다.

해마다 6월 말이면, 현직 사장님이 퇴직한

임원들을 초대해 함께 라운딩을 즐긴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

웃음꽃을 피우는 자리다.

운동 후에는 뒤풀이도 있고, 회사에서 준비한

넉넉한 선물까지 한아름 안고 돌아오곤 한다.

코로나 이후 2년 만에 다시 모이는 자리라,

기대가 더욱 크다.

티 박스에세 바라본 골프장

며칠 전 조 편성이 된 단톡방을 들여다보다,

문득 골프와 관련된 웃지 못할 일이 떠올랐다.

지나간 기억이 스르르 피어올라, 몇 자 적어본다.


처음 입사했던 직장에 ㅇ선배가 있다.

그 선배 동기들은 회사 안에서도 소문난

절친들이었다. 서로의 가족들끼리도 정기적인

모임을 가질 정도로, 돈독한 사이였다.


얼마 전, 그중 한 동기의 아들이 결혼을 했는데, 며느리가 골프 캐디 출신이었다고 한다.

선배들의 아내들도 종종 함께 골프 라운딩을

즐겼는데, 그중 한 분이 골프를 마치고 돌아와

불만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앞으로 ㅇㅇ씨 부인이랑은 골프 같이 못 하겠어"


전언에 따르면, ㅇㅇ선배 부인은 매번 캐디에게

너무 심하게 대했다고 한다.

함께 있던 멤버들이 낯이 뜨거울 정도였다고 하니,

말 그대로 '진상 골퍼'였던 셈이다.

그랬던 분이 이제 캐디 출신을 며느리로 맞았으니,

주변에서 "이게 웬 업보냐"며 수군거렸다.


요즘 나는 현직에서 물러난 뒤, 1년에 서너 번

골프를 한다. 폼을 잊을 만하면 한 번 나가는 정도다.

스코어는 엉망이지만, 초록의 잔디를 바라보며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수다는 늘 즐겁다.


골프장의 한 부분

일상의 이야기들이 오가고, 웃음이 피어나는

그날을 떠올리면 벌써부터 마음이 들뜬다.

비록 선배 한 분의 이야기지만, 인생의 묘한

아이러니가 느껴져 이렇게 기록해 본다.


2023년 6월 10일 소나기 내리는 한가한 오후,

불현듯 떠오른 이야기 하나를 조심스레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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