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선택할지 고민이다.
-2023년 5월 12일 제천에 가다
최 경 선
오늘은 맞선 보는 날
오전엔 금수, 오후엔 가은
이른 아침, 설렘을 안고 길을 나선다
금수는 자태 고운 양반댁 규수 같다
바람 따라 사뿐사뿐 다가오고,
가은은 통통한 몸매로
시골 초가집처럼 정겹다
상천리 주막, 제천댁 매파가
선택을 강요한다
소개비로 비단 다섯필이
날아갈까 싶어,
바짝 붙어 막걸리를
따라주며 눈치를 살핀다
둘 다 마음에 들지만,
술 한 잔 알딸딸함이
물오른 제천댁에 마음을 기울이게 한다
막걸리 잔이 자꾸만 갈피를 흐리게 한다
● 분홍치마 입은 금수에 반하다.
선명한 분홍색 철쭉 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금수.
사뿐사뿐 걸어와 인사를 건넨다.
고운 자태에 휘둥그레하는 내 마음이 들킬까
고개를 살짝 돌렸다.
조그마만 정상석에 자기 이름을 적어 놓고는
부끄러운 듯 솔나무 옆에 다소곳이 앉았다.
30여분 남짓 이야기를 나눴다.
금수는 생긋 웃으며 집구경을 시켜 주겠다며,
산 아래 푸른 호수를 가리킨다.
청풍호란다.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절경이
멋지다며, 맑은 날 다시 오라 권한다.
충주호 뒤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는 월악산 영봉.
동그란 영봉보다 금수의 오동통한 손등이
더 곱디곱다. 복스럽고 하얗고 예쁜 손이다.
은근히 잡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금수란 이름은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 시절,
'비단에 수를 놓은 듯하다' 하여 붙였단다.
누워 있는 미녀의 형상이라 하여 '미녀봉'이라고도 불린다며 은근히 자기 자랑도 곁들인다.
정상에서 망덕봉까지는 2km 남짓.
금수는 치마 자락을 걷어쥐고 능숙히 비탈을
내려간다. 양반댁 규수답지 않은 발걸음에
감탄이 나온다. 가끔 경관 좋은 곳에 멈춰 서서
내 자존심을 세워주며 사진도 찍어준다.
벌써 금수의 집을 다 둘러보았다.
상천주차장 주막에서 나를 기다리는 제천댁 매파를
만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금수에게 오후 약속을 숨긴 채, 아쉬운 작별을 나눴다.
불그스레 물든 금수의 뺨엔 슬픔이 스며있다.
4시간 남짓, 9km의 맞선이 좋은 인연으로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바람이 엿보였다.
● 시골스러운 가은과 만나다
금수와의 만남을 감추고 가은 처자 마을에
들어섰다. 입구부터 가파른 오르막.
금수네 집에서 힘을 쏟은 탓인지 조금 걱정이 된다.
금수보다 낮은 산이라고 얕봤던 가은 처자.
그 집 가는 길은 암반을 타야 하는 험한 여정이다.
마고할미가 나물을 뜯다 잃어버린 반지를 찾고
몸만 피했다는 전설이 실감 난다.
정상석엔 '가은산'이라 또렷이 새겨져 있다.
금수네 집보다 수수하고 소박한 느낌.
그 모습이 오히려 정겹다.
어디선가 나타난 댕기머리에 가은 처자. 동그란
얼굴로 수줍은 듯 인사를 건넨다.
제천댁의 전갈을 받고 아침부터 기다렸지만
길이 엇갈렸다며 부끄러워한다.
상천리 주막에서 기다리는 제천댁과의 약속으로 시간이 많지 않다. 가은 처자가 내준 시원한 물과 음식으로 잠시 숨을 고른다.
시집가면 서울로 갈 수 있느냐는 내 물음에 고개를 조용히 끄덕인다.
금수와는 다른 순박함이 묻어난다.
이별할 즈음, 가은 처자의 눈가에 맺힌 이슬이
마음에 남는다. 나 또한 찡한 마음을 안고
돌아선다. 동네 사람들을 만나 지름길로 쉽게
하산할 수 있었다.
3시간 남짓 6km를 함께 한 가은 처자와의
맞선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멀리, 상천리 주막 앞에 매파인 제천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 매파인 제천댁을 만나다.
제천댁이 한걸음에 달려와 나를 주막으로 이끈다.
막걸리와 감자전이 준비되어 있다.
앉기도 전에 막걸리를 사발에 가득 따른다.
내가 들이키자 잽싸게 잔을 다시 채운다.
아무 말 없이 또 한 잔을 비웠다.
몸에 피로가 퍼지며 술기운이 알딸딸하게
퍼진다.
제천댁은 내가 누구를 마음에 두었는지 물으며
은근히 금수 처자를 띄운다.
부잣집이라 성사되면 소개비가 두둑한 모양이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헤어질 때 눈시울이
붉어졌던 가은 처자의 모습이 아른 거린다.
제천댁은 바짝 붙어 선택을 강요하지만,
술 한잔의 기운에 마음이 갈팡질팡 흔들린다.
어두워지는 제천의 산 그림자처럼 내 마음도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