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소보에 비친 또 하나의 가을
● 가을날 변산에 다녀왔습니다
버스가 남여치에 다다르자,
등산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린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이 예사롭지 않다.
28명 중 단 8명만 A코스를 선택했다.
코스가 길고 소요 시간도 빠듯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여치(藍輿峙)는 이완용이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낙조대에서 서해 낙조를 보고
쌍선봉에 오르려고 지붕이 없는 수레를 타고
넘었다는 것이 유래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1시간 정도 걸었을까.
노란 은행잎과 붉은 단풍으로 단장한 월명암이
따뜻하게 나를 맞는다. 마치 포근한 엄마 품 같아,
며칠 푹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스님과 여신도가 평상에 앉아 과일을 먹다가 불쑥 나타난 산객을 보고 움찔한다.
월명암은 임진왜란과 구한말, 6.25 전쟁 시 소실되는 수난을 당했음에도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였다.
지금의 내변산 전경도 이렇게 멋진데 변산 팔경의 하나인 월명무애, 서해낙조의 모습은 어떨까?
시차로 인하여 볼 수 없음이 매우 아쉽다.
길옆, 나무 간판에 새겨진 '걸림 없이 살 줄 알라'는 부처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이 간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고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
사슴처럼 두려워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무섭고 사나워라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이니라.
-법보장경-
직소폭포를 가던 중 우연히 한 산객을 만났다.
아담하고 단단한 체구로 나이는 50대 중후반으로 보였고 지루한 산행에 좋은 길동무가 되었다.
가지고 온 점심을 함께 나눴다.
직소보엔 가을이 두 번 물든다.
하나는 저수지 밖 풍경 속 가을, 또 하나는 호수에
비친 가을이다. 뭐라고 표현해야 적절한지 글 쓰는 지금도 고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은
'거울보다 더 투명한 호수에 가을이 빠졌다'였다.
오솔길을 걷다 보면 보(洑)에 비친 또 하나의 길로 헛걸음질 할까 두렵다.
직소폭포가 저 멀리 보인다.
가을 가뭄 탓인지 폭포수는 어린아이가 오줌을
지리듯 가늘었다. 멋진 풍광을 기대했던 바람이
비웃음으로 돌아왔다.
재백이고개와 관음봉 삼거리를 지나 정상까지의 등산길이 너무나 힘들다. 난간을 붙들고 휴식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천신만고 끝에 정상에 도착했다.
능가산 내소사란 일주문 현판이 커다랗게 걸려있다.
전나무 숲길과 중간중간 단풍이 매우 인상적이다.
많은 사람이 만추를 즐기려고 엄청나게 몰려들었다.
대형차량 수십 대와 승용차, 승합차가 주차장에 빼곡하다.
내소사 입구는 북적이는 도시의 번화가를 떠올리게
했다. 호객꾼들이 손님을 붙잡고 연신 권유한다.
손두부가 맛있어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산행 중 만난 야무진 친구와 손두부에 막걸리를
나누며 담소를 즐기고 변산을 정리했다.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진다.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검은 구름이 가을날의 끝을
알리듯 조용히 내려앉는다.
●산행정보
•산행코스:
남여치~쌍선봉삼거리~월명암~직소보~
직소폭포~재백이고개~관음봉삼거리~
관음봉, 정상~관음봉삼거리 ~내소사~
내소사 주차장
•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약 13km, 5 시간 30 분
- 2024년 11월 16일 변산 산행 후 .
● 슬픈 변산 유람기
최 경 선
매국노 태운 가마꾼
얼마나 힘들었을까
낙조마저 펑펑 울다
동해 일출마저 지각했다
서해낙조는 안개에
잠기고 걸림 없는 삶은
천근만근 무겁다
나그네 헛걸음질
가을 호수에 풍덩 빠지고
오줌 지리는 직소폭포
비아냥에 고개 숙인다
단풍비 흩날리자
술 한잔이 구수한 담소되고
능가산 가을바람이
구름 따라 흘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