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봉우리와 나의 길
● 제목 : 팔영산 노래
-2024년 5월 14일 최 경 선
아카시아 꽃, 하얀 달콤함이
장미의 도톰한 입술을 덮는다
여덟 봉우리 암릉 아래
다도해의 넘실대는 춤사위,
대청봉이 질투하듯 달려온다
고래등 같은 암릉,
땀방울이 반짝거리고
밥공기 엎어놓은 듯한 동그란 섬들
푸른 물결 위에서 가볍게 춤춘다
깃대봉에서 본 대마도
이종무 장군 철군한 바다에
노여운 파도가 출렁인다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자들에게 분노한 듯
바랑 멘 스님의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처량해 보인다
곡차 한 잔 권하고 싶지만
부처님 오시는 날이 내일인지라
속세 떠도는 나그네만
한가롭구나
●산 아래, 꽃들의 유혹
온갖 꽃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아카시아 꽃은 하얀 치아를 내보이며 웃고,
달콤한 향기를 쏟아낸다.
빨간 립스틱 짙게 바른 장미는 도톰한 입술을
내밀며 살랑거린다.
밤꽃의 짙은 향기는 잔치 속에 제 목소리를 높이며
봄의 성찬식을 방해한다.
뜨거운 햇볕이 이글거리며 이른 더위를
예고한다. 모내기를 마친 논은 파릇파릇한
모들이 찰랑거리는 물살에 몸을 흔든다.
들머리 입구에 서 있는 산행표지판이 힘든
여정을 예견하듯 어서 가란다.
멀리 팔영이 턱 하니 버티고 있다. 어서 오라며
손짓한다.
흰구름이 살포시 산 중턱에 내려앉는다.
●첫 암릉, 다리의 떨림
약간 더운 날씨다.
강산폭포의 시원한 물줄기, 다도해의 올망졸망한 섬들이 밥공기를 엎어 놓은 듯 두둥실 떠다니는
모습이 그나마 더위를 식혀준다.
별안간 나타난 암릉.
폭이 2~3m 밖에 안된 기다란 바위능선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이가 들수록 고소공포가 더 심해진다. 길게 펼쳐진 바윗길에서 벌벌 기는 나를 비웃듯,
암릉 끝에서 다도해를 바라보며 셀카를 찍는
한 등산객이 나를 바라본다.
초긴장 속에서 선녀봉(518m)에 올랐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암릉과 다도해의 조화로운 절경은 두려움 속에서도 환희의 기쁨으로 다가왔다.
●봉우리마다 새긴 이름들
중국에 까지도 위세를 떨친 팔영산.
'여덟 개의 봉우리에 비친 그림자'라는 의미답게,
지금껏 내가 가본 산 중에서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비경이다.
제1봉인 유영봉 (儒影峰, 491m),
선비의 그림자 담은 봉우리.
산 그림자조차 조용히 나를 품는다.
제2봉 성주봉(聖主峰, 538m),
팔영산의 주인이 앉아 있다는 봉우리.
잠시나마 성주의 위엄을 빌려 앉아본다.
제3봉 생황봉(笙簧峯,564m),
맑은 피리소리가 산에 울려 퍼지 듯,
푸른 바람이 불면 마음도 청아해진다.
제4봉 사자봉(獅子峯,578m),
하늘을 노려보는 사자의 형상.
그 위에 서니,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 된 듯하다.
제5봉 오로봉(五老峯, 579m),
다섯 노인이 신선처럼 노닐었다는 전설.
친구 다섯을 불러 한판 놀아보고 싶다.
제6봉 두류봉(頭流峯,596m),
하늘문 '통천문'을 곁에 둔 영험한 봉우리.
발 밑에서 대지의 기운이 솟아오른다.
제7봉 칠성봉(七星峯,598m),
북두칠성이 내려와 쉬어 갔다는 곳.
별 빛이 머문 그 자리에서 밤하늘을 상상한다.
제8봉 적취봉(積翠峯,591m),
초목의 푸르름이 겹겹이 쌓인 봉우리.
언제나 푸르게 그 빛을 간직하고 싶다.
이 나이에도 바위능선 앞에선 여전히 떨린다.
하지만 그 떨림 끝엔 언제나 벅찬 경이로움이
나를 기다린다.
그래서 나는 또 산을 찾는다.
● 깃대봉, 역사와 바다
높이 609m인 깃대봉에서 저 멀리 다도해의
푸르름 끝에 있는 마라도를 바라보았다.
그 옛날 이종무장군은 왜구들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왜구들의 소굴인 대마도를 징벌하였다.
진군의 함성이 멀리서 들려오는 듯하다.
그의 퇴각이 아쉬웠다.
아직도 독도를 자기 땅이라 우기는 자들에게
본 때를 보여주기 위해 마라도의 철군을
늦추라고 명령하고 싶다.
암릉에 서서 멀리 다도해를 바라보며 역사의
한 장면을 회상하여 보았다.
●능가사, 마지막 생각
'부처의 가르침이 내려오는 신성한 산사'라는
뜻을 담고 있는 능가사.
작은 산사가 내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라 그런지
나름, 무척 바쁘다.
대웅전 앞 여러 줄의 연등은 각종 색깔의 풍선을
달아 놓은 것 같이 울긋불긋하다.
오월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 산사의 움직임이 바쁘다. 연등을 점검하는 신도, 뭔가를 위해 바쁘게 걷는 스님.
나는 조그만 원탁에 앉아 여정을 정리했다.
탁발수행을 마치고 들어가는지 바랑을 멘
스님이 급하게 걸어간다.
곡차 한 잔을 권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나만이 여유로운 것인가.
팔영산의 여덟 봉우리와 다도해를 품은 산이지만,
내겐 그날의 떨림과 생각들이 품은산으로 남는다.
●산행정보
•산행코스
곡강~강산폭포~선녀봉~1봉~8봉~적취봉삼거리
~깃대봉~탑재~능가사~팔영산지원센터 주차장
•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약 9km, 5시간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