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장산의 노여움

전설과 더위가 뒤엉킨 하루의 기록

by 홍삼이

●방장산의 노여움

-2024년 6월 18일 방장산 산행 후


운전기사가 회사 문제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내내 투덜거렸다. 다행히 눈치 빠른

여성 산악 대장이 재치 있게 분위기를 수습해

회원들과의 마찰은 없었지만, 운전기사의

거친 말투는 끝내 마음에 걸렸다.


오늘 산행은 11.3km, 약 5시간 30분이

걸리는 일정이었다.

출발지는 전라남도 장성군의 장성갈재(276m).

해발 734m인 방장산은 높지는 않지만

시작 고도가 낮아, 만만치 않은 경사가

예상되었다.


기온이 27~31도, 바람은 거의 없었고,

습도는 40% 안팎, 구름 한 점 없이 쨍한 날씨에

초여름의 더위는 금세 땀을 끌어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며 체력 소모도 컸다.

구름 한 점 없는 방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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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을 품은 산, 방장산


방장산은 전북 고창군과 정읍시, 전라남도 장성군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예로부터 도적이 많아 '방등산'으로 불리다가,

훗날 '백성을 감싸는 산'이라는 의미의

방장산(方丈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고려사악지 《백제가요 방등산곡》에는

방장산 도적에 끌려간 여인이 남편을 기다리다

애통해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출발지인 갈재에는 또 하나의 슬픈 이야기가

전한다. 미모와 학식을 갖춘 효녀 '노아 낭자'는

병든 노모를 봉양하가 위해 기생이 되었고,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혼자 살다가

결국 삶을 마감하며 산새가 되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 넋을 기려 '갈대 노(蘆)'와 '고개 령(嶺)'자를

따서 '노령(蘆嶺)'이라 불렀으나,

훗날 한자어보다는 고유어 '갈재'로 바뀌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방장산 정상 및 '참니리' 꽃

이 갈재 고개는 과거 한양에서 삼남지방으로 가는

대표적인 길목이었다.


지나간 옛사람들의 숨결이 바람 따라 흔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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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산, 분노를 품다


기대했던 정상은 더위 때문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시원한 그늘을 찾아 걸음을 재촉했지만,


방장산의 노여움은 끝내 가시지 않았다.

바람 한 줄기조차 후덥지근한 날이었다.


방등산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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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이 본다면


장성갈재에 모인 30여 명의 등산객과 산악대장의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상상을 했다.


머리엔 울긋불긋 벙거지를 쓰고,

눈아래 시꺼먼 숯덩이를 붙이고,

등에는 큼직한 봇짐을 메고,

양손에는 날렵한 스틱까지 들었다.


혹시, 관군이 자신들을 토벌하러 오는 줄

착각하지는 않았을까?

산악대장이 산행코스를 설명하며 손짓하는

모습에 겁을 먹고, 혼비백산 달아났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웃음이 났다.


전설과 역사, 땀으로 범벅된 산길,

그리고 바위와 풀잎 사이로 피어 있던 '참나리'의

붉은 꽃.

그 모든 것이 내게는 깊은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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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정보

•산행코스:

장성갈재~쓰리봉~봉수대~정상~고창고개

~억새봉~벽오봉~문너머재~서어나무 쉼터

~공설운동장

•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 11.3km, 5시간 30분

벽오봉과 근처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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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장산의 노여움

최 경 선


머리엔 벙거지,

눈엔 검은 숯덩이,

등엔 괴나리봇짐,

양손엔 부지깽이 들었다


가죽신 신은 호위무사들

장수 손짓에 일사불란,

갈재 둔덕 도적 떼

허둥지둥 흩어진다


산새 된 노아, 엄마 찾고

여인은 낭군을 기다리네

유랑객만 산중에 소란하다


벽오봉 달군 무더위

'참나리'마저 입을 열고

방장'의 노여움,

산허리를 휘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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