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5일, 운장산, 구봉산 산행기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다.
수확을 마친 논밭은 덩그러니 가을을 떠나보내고
있었다. 산 중턱에는 잘 정돈된 봉분들이 봉긋이
이어진다.
국내 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지만, 우리는 조상을
참 정성스럽게 모시는 민족 같다.
대학동기 영춘이와 석래가 기섭이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단톡방에 올렸다.
아버님 제사와 선영 시사(時祀) 때문이란다.
산골 마을을 지나다 보니 감을 따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긴 장대로 가지에 달려있는 감을 비트는
허리 휜 노인이 애처롭다. 거북이 등껍질 같은
감나무에 기댄 노인은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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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인 피암목재에 도착했다.
여성 산악대장이 또렷한 음성으로 오늘의 신행을
안내한다. 산행시간은 7시간 30분.
선크림을 바르고, 선글라스를 쓰고, 모자와
장갑까지 챙기고 첫산, 운장산을 향해 걸음을 뗐다.
운장산은 전북 진안군 주천면, 정천면, 부귀면 경계에 위치한 해발 1,126m의 산. 중종 때 성리학자 송익필이 은거했던 그의 호 '운장'에서 이름을 땄다.
주봉은 운장대(중봉 1,126m), 서봉 칠성대 (1,110m), 동봉 삼장봉 (1,133m)으로 이어진다.
산길 곳곳엔 멧돼지가 땅을 파헤친 흔적이 역력했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칠성대에 올랐다.
해발 1,120m.
능선 위에서 바라본 단풍과 새털구름이 한 폭의
수묵화 같다.
칠성대에는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이 산 깊은 골짜기 절에 불도를 닦는 스님이
있었다. 어느 날 일곱 명의 청년이 절을 찾아왔다.
그들은 성군이 되어 인간 세상을 시험하러 내려온 북두칠성의 화신이었다.
한 선비에게 밥을 청했으나, 기다리라고 말하여
사라져 버린 그들, 선비들은 그제야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벼슬길을 접고 수도승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칠성대라 부른다 한다.
운장대와 삼장봉을 지나 기암절벽을 올라다 보니
절벽 위 아찔한 실루엣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말없이 산에 기대 선, 사람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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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장산을 내려와 구봉산으로 향했다.
정상은 천왕봉 (1,002m), 여덟 개의 봉우리는
연꽃처럼 피어있다 하여 '연꽃산'이라 불린다.
'대동여지도'에도 구봉(九峰)으로 표기된 산이다.
4봉과 5봉 사이의 구름다리는 스릴을 더한다.
깎아지른 암벽사이, 간신히 서 있는 나무들 위로 파스텔빛 단풍이 흩날린다.
잔도아래 수직 절벽은 다리를 후들거리게 만든다.
어느새 어둠이 내린다.
날머리, 어스름한 카페가 작은 전구를 깜박이며
우리를 맞는다.
멸치국수와 파전, 막걸리를 시켰다.
합석한 두 명의 회원과 나이를 묻고 답한다.
웃음꽃이 피어난다.
"60년생 쥐띠입니다."
"형님이시네요! 저는 62년생 범띠예요."
"64년생 용띠인 제가 막내네요."
허연 머리가 꼭 연장자 같다고 놀리는 농담에
초면의 어색함이 모두 풀렸다.
그 사이, 산악대장이 다급히 전화를 받는다.
한 회원이 길을 잃은 듯하다.
출발이 10여 분 늦춰졌지만, 다행히 무사히 돌아왔다.
오후 6시, 귀경이 시작된다.
진안의 작은 언덕 위로 붉은 노을이 밤을 데려온다.
버스에 올라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짧지만 깊은 하루가 그렇게 저물었다.
•산행코스:
피암목재 ~활목재 ~서봉(칠성대)
~중봉(운장대)~동봉(삼장봉)~곰직이산
~복두봉 ~구봉산정상(9봉, 천왕봉)
~8봉에서 1봉까지~양명교~구봉산주차장
•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약 14km, 7 시간 30 분
최 경 선
가을 따는 노인이
장대가 버거운지
비틀린 감나무에 기대어
하늘 향한 바라기도 힘겹다
산허리에 흩어진 환호성
장렬히 산화하고
절벽 위 우뚝 선 실루엣이
침묵 속에 젖는다
여로에 무뎌진 발놀림
배낭을 일으키고
잔도 아래 흘러내리는
파스텔빛 슬픔은
바람에 흩날리는 만장처럼...
덩그러니 선 외로움만
작은 언덕 위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