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랑이던 그날의 빗물처럼
지금으로부터 꼭 45년 전,
1979년 6월 5일과 6일은 내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대학 예비고사를 불과 다섯 달 앞둔 시기,
하루하루가 촌각을 다투는 시간이었다.
볕 좋은 5월 어느 일요일,
그날도 어김없이 학교 도서관에 앉아 공부에
몰두하고 있었다.
막역한 친구 종선이가 다가와 내 어깨를 툭치며
도서관 밖으로 불러냈다.
벤치에 앉자마자 뜬금없이 경기도 광주에
사시는 이모댁에 모내기를 하러 가자며
꼬드긴다. 하루도 아닌 1박 2일 이란다.
반 친구 몇 명에게도 확답을 받아놨다며,
꼭 가자며 요구한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나를 두고, 여학생들도
온다며 엷은 미소를 띠고는 휑하니 사라졌다.
약속한 날이 되었다.
우리는 방과 후 버스를 타고 곤지암으로 향했다.
종선이 이모댁은 곤지암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스무여 리 더 들어간 산골 마을이었다.
용철이가 운전하는 경운기를 타고 마을 어귀, 버스정류소로 향했다.
여학생들을 태우러 간 것이다.
해가 지기 전인데도 어둑어둑했다.
검은 먹구름이 곧 비를 쏟을 듯했다.
저 멀리 검은 무리의 실루엣이 보인다.
텅텅 거리는 경운기에 시선이 몰린다.
여학생들이 우르르 경운기로 뛰어올랐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움큼 가지고 온 비닐막을 머리 위에 펼쳤다.
소죽을 쑤는 부뚜막 앞에는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한기를 느끼며 들어오는 우리에게
아궁이 근처를 열어준다.
흰 연기로 뒤덮인 부엌은 아궁이 앞만 동그랗다.
아궁이 불빛에 여학생들 얼굴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청순하고 해맑은 웃음 사이로 통성명과 함께
그날의 인연은 조용히 피어났다.
이모의 부름에 저녁을 먹고, 커다란 안방에
전부 모였다. 기타 튕기는 소리와 유행가,
합창과 웃음소리. 빗줄기에 울려 퍼지던 청춘의 노래.
감정은 묘하게 얽히고,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어른들에 분주함이 새벽을 깨웠다.
부슬비가 내린다.
전등 불빛에 비친 빗방울이 가게 앞 인형처럼
두 팔을 흔들며 춤춘다.
눈을 반쯤 감고 있는 친구, 배를 깔고 엎드린 친구, 이불속에서 고개만 삐쭉 내민 친구...
아침을 먹자는 이모부 목소리에 움직임이 바쁘다. 옆방에서 깔깔대는 여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왠지 낯설다.
논으로 향했다.
찰랑거리는 물살 위로 빗방울이 숨죽여 운다.
남학생들은 허리를 숙여 모를 심고, 여학생들은
모춤을 건넸다.
내 파트너는 '자옥'이다. 밝은 웃음과 커다란 눈망울, 오뚝한 콧날이 인상 깊었다.
비가 그친 늦은 점심 무렵, 모내기를 마친 우리는 아무런 기약도 없이 헤어졌다.
며칠 후,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 가로등 아래 책가방을 든 여학생이 서 있다.
모내기 때 본 여학생이다. 가슴이 설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만남을 이어갔다.
야간 자율학습 땡땡이는 점점 늘었고,
미래가 불안했던 우리는 대학에 가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남긴 채 무작정 헤어졌다.
1980년 봄, 대학 입학 후 기숙사 생활을 했다.
선배들과 함께 민주화 시위에 자주 나갔고,
휴강이 잦았던 날에는 고향집에 머무는 일이
많아졌다.
4월 중순 어느 월요일 아침.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고속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낯익은 얼굴이 눈앞에 서 있다.
의외의 만남이었다.
우리는 같은 버스에 나란히 앉았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다.
다행히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 대학교는 갔니? "
" 아니. 떨어졌어, 구의동에 있는 회사에 다녀 "
" 힘들었겠네..."
" 너는 "
" 나도 명동에 있는 제약회사에 취직했어 "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녀에게 학교 기숙사 전화번호와 호실을 적어주었다. 회사 기숙사라며 거짓말을 했다.
" 시간 되면 전화해, 오후 6시 이후에~ "
기대와는 달리 전화가 없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기숙사 게시판에 뭔가 적혀있다.
'최경선 학생, 오늘 밤 8시 전화 대기.'
대방동에 계신 셋째 누님이라고 생각했다.
"ㅇ호실, 1학년 최경선, 전화 왔습니다."
뛰어 내려가 책상 위에 엎어져 있는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최경선입니다."
그녀였다.
명동에 있는 '삼원다방'에서 내일 오후 6시에
보자며, 전화를 끊는다.
명동행 시내버스를 탔다. 사람들로 붐볐다.
약속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시골의 다방과는 차원이 다르다.
입담 좋은 DJ에 구수한 목소리, 잔잔한 유행가
노랫소리... 언제 왔는지 그녀가 내 앞에 앉는다.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5월 중순 어느 일요일.
한강에 놀러 가자는 제안에 흑석동 버스를 탔다.
초행길이 아닌 듯싶다.
푸른 한강물에 조정 선수들이 열심히 훈련한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둑방에 앉은 우리 앞으로 우락부락한 남자들이 다가온다.
그녀는 갑자기 달려가, 낯선 남자의 팔짱을
살며시 꼈다. 내 안의 시간은 멈췄고, 잠시의
정적은 가슴속 깊은 곳에 말로 다할 수 없는
허무와 슬픔이 밀려왔다.
그녀의 뒷모습이 흐릿해지고, 둑방에 부는
바람만이 내 곁을 스쳐갔다.
시간은 모든 것을 잃게 했고, 잊어버렸다.
● 세미나에서의 짧은 만남
제대 후 대학교에 복학했다.
대기업에 취업도 하였고, 결혼도 하였다.
경기도 이천에 한 호텔에서 지점장, 거래처
대표들과 세미나가 있었다.
세미나를 주관하는 팀장으로 숙식비만
계산하면 행사가 끝이다.
깔끔한 유니폼을 입은 매니저 'J.O.Yoo'라는
명찰을 가슴에 단 중년의 여자가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20여 년 전 한강변에서 헤어졌던 자옥이었다.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흘렀는데, 젊었을 때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오랜만이네."
"....."
아는 체를 하자, 가벼운 목례만 있을 뿐 사무적인
말만 한다. 아무 관심이 없는 듯하다.
명함을 전했다. 연락도 없다.
그렇게 또, 세월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 여름날, 고교 친구인 '하성'이가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자옥이를 아느냐고 다구 친다.
옆에 있으니 통화해 보란다.
"경선아 오랜만이야!"
"나, '자옥'이야!"
10여 년 전 세미나 때 이천에서 봤던 그녀였다.
희한한 인연이다.
1~2시간 뒤, 우리는 합석하였다.
그녀의 남편은 군대시절 '하성'이 소대장이었단다.
군에 있을 때부터 하성이와 아는 사이란다.
가끔 만나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신단다.
지금은 손자가 유치원에 다닌다며 자랑이다.
잘 살고 있다니 고맙다.
"첫사랑은 그렇게 세월 저편으로 흘러갔지만,
45년 전 논물 위를 찰랑이던 그 빗방울처럼,
내 기억 속 그날의 그녀는 아직도 잔잔히
반짝이고 있다."
-2023년 어느 여름날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