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 시니어'의 화려한 외출

싱그러운 1박 2일, 단체 여행을 떠나다

by 홍삼이

■여행 첫날이 밝았다.


새벽부터 단톡방이 들썩인다.

평택과 일산에서 출발한 종연과 종수,

그리고 창엽이도 7시 50분경 판교역

도착 예정이란다. 석래만 조용하다.


8시 22분, 문경역 KTX를 타기 위해

머리가 벗겨지고, 희끗희끗한 백발을

날리며, 등에는 배낭을 짊어진 5명의

'건강한 시니어'들이 시끌벅적하게

판교역 플랫폼에 나타났다.


고만고만한 덩치의 중년들,

어린아이처럼 들뜬표정이

봄햇살만큼이나 따사롭다.

집안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한

영춘이를 제외한 대학동기 백수회인

창엽, 종수, 종연이랑 석래의

고향인 문경새재와 예천 주변에

주요 관광지를 찾아 1박 2일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뭉쳤다.


김삿갓 김병연의 한시 한 부분

■ 문경역이 우리를 반긴다.


KTX는 문경역에 정확하고 안전하게

우리를 내려놓았다. 연초록의 산림으로

둘러싸인 역사(驛舍)에 내린 우리는

싱그러운 봄빛과 맑은 공기에

환호성을 지른다.


예천행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역사 주변을 둘러보았다.

개구리울음소리가 들리고,

멀리 봉명산 문경 출렁다리와

망루가 눈앞에 나타났다.


잠시 후 도착한 버스는 무료란다.

'시단위 전국최초' '2025년 1월 1일부터 문경시내

버스 전면 무료화 시행' 이라는 포스터가 버스

안에 붙어있다.

문경역과 주변 풍경, 시내버스 포스터

석래가 사전에 예약한 차량을 렌트하기 위해

예천에 들렀다. 고향이라고 자기가 운전을 하며

안내를 맡겠단다. 든든하다.


■ 예천의 관광지, 문화를 읽다


렌트한 차로 처음 찾은 곳은 석송령(石松靈)이다.

천연기념물 제294호이며 예천 팔경의 하나다.

1,890평의 땅을 갖고 있어 '부자 나무'로 세금도

낸단다. 석평마을에 영험 있는 나무로 굵은 줄기와

옆으로 낮게 깔린 가지는 화분에 심어 정성을 다해 관리한 멋들어지게 분재한 소나무 같다.

한결같이 영감을 받고 간다며 기분 좋게 떠났다.

예천 팔경의 하나인 석송령

열차 안에서 샌드위치, 빵과 커피로 아침을 대충

때웠기에 배가 고팠다.

석래가 안내한 예천읍 맛고을길에 있는

'김서방 숯불갈비'라는 유명한 음식점을 찾아

점심을 하기로 하였다.


벽면에는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한 인사들과

식당주인이 함께 찍은 사진이 즐비하다.

점심은 예술이었다. 살살 녹는 소고기에 약간의

안동소주의 낮술은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밑반찬으로 나온 모든 것이 꿀맛이다.

운전을 책임지는 석래가 아쉬워한다.

김서방 숯불갈비 외부와 내부, 요리

조선시대 선조 때 문신인 '초간 권문해'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심신 수양을 위해 세운 정자(亭子)인

'초간정'을 방문했다. 암반 위에 세워진

팔작지붕(옆에서 볼 때 여덟 八자 모양을 한 지붕)

양식으로 얼마 전 완도를 여행했을 때 보았던,

보길도의 윤선도가 살던 세연정(洗然亭)에

비하면 매우 소박하다.


영화, 드라마 촬영지라는 간판이 서 있다.

정자 앞에 흐르는 계곡물과 멀리 산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초간정'의 마루를 통과할 때

시원함은, 자연을 감안해 집을 짓던 선조들의

지혜가 대단함을 알 수 있다.

초간정의 지붕 모습 및 앞뜰

한 곳이라도 자기 고향에 명승지를 더 보여주려는

석래가 다음 행선지로 회룡포를 향해 달린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에 용이 날아오르는 것처럼

물을 휘감아 돌아간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비룡산 장안사 주차장에 차를 파킹한 우리는

회룡대에 올랐다. 비룡산을 350도 되돌아서

흘러나가는 '육지 속의 섬마을'이 한 폭의 그림처럼

발아래에 펼쳐졌다.

10 가구 내외가 산다는 마을은 한적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하다.

섬마을을 연결한 다리는 가느다란 새끼줄처럼 다가왔다. 잠시 그 풍경 속에 스며든다.

회룡포 및 비룡산 장안사 전경

삼강주막은 낙동강 700리 중 마지막 남은

주막이자, 삼각나루의 중심이었다.

입구엔 엽전 꾸러미와 장승 조형물이 여행객을

맞는다. 평상에 걸터앉아 막걸리, 배추 전, 부추전을 시켰다. 양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 지글거리는 전.

연세 지긋한 두 분이 손님맞이로 분주하다.

석래에게 감주가 따로 준비된다.

우리는 삼강나루를 오가던 시인과 보부상들처럼,

잠시 시름을 잊고 흥겹게 웃었다.

삼강주막 입구 및 주막내 평상

오늘의 정식적인 여행일정은 끝났다.

숙소인 펜션 '가휴'로 이동하면 된다.

종연이가 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근처에 저녁을 할 만한 식당을 소개받았다.

'꽃봉오리'라는 오리가 주메뉴인 식당이었다.


하루 종일 운전을 한 석래도 그나마 소주 한 잔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식당 주인의 친절함, 깔끔한 음식이 여행을 즐겁게 하였다.


펜션 주인은 63세란다.

40대 말, 50대 초로 보일 정도로 건강하게 보였다.

부부가 너무나 친절해서 다시 오고 싶다.

숙소인 '가휴' 펜션의 전경


■ 첫날, 숙소에서의 뒤풀이


숙소에서 간단하게 맥주와 컵라면을 겸하며,

우리들에 얘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몇 명의 친구들과는 통화도 했다.


종수 아들은 군의관 전역 후 제주도에 있는

한 병원에 취직하였다.


" 아들놈 잘 키워 났더니 장인, 장모만 좋아졌네"


"용돈을 얼마씩 받아야지"


라는 우리들의 얘기에 허허 웃는 종수가 부러웠다.


종연이 큰아들은 지금 다니는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10월에 미국에 간단다. 더 좋은 직장을 위해서...

둘째 아들은 8월에 결혼 예정이다.


며느리 호칭을 두고 벌어진 갑론을박,

전국을 자전거 순례 중인 "창엽이 엉덩이가

왠지 빵빵하다 "는 얘기에 웃음을 터뜨린다.


회사 다닐 때 사놓은 홍천 땅을 팔려고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는다며, 올해 고추를 심었다는 석래.


그렇게 우리들의 첫날밤, 여행은 서서히 잠들었다.

숙소 주변 및 입구

■ 여행 둘째 날, 날이 밝았다.

-문경새재를 걸으며 옛날을 이야기하다


하나, 둘 깨어난 아침.

종연이와 석래는 이미 산책을 다녀왔다.

산속에 파묻힌 펜션, 전경이 좋고, 공기가 너무

맑아 머리가 상쾌하다. 8시에 펜션을 나섰다.


황탯국으로 속을 채운 우리는 문경새재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이 잠시 장난을 치는 바람에 충북

이화령 방향으로 빠졌다가 유턴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우회조차 여행의 일부로

즐거울 뿐이다.


문경새재 주차장에서 출발, 생수 한 병씩을 들고

걷기 시작한다.

문경새재는 '조령'이라고도 부르며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요충지다.

'새'는 '나는 새도 넘어가기 힘든 고개'

'억새풀이 많아서'라는 의미가 있다.


주흘관과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을 지나다 보니,

자녀들과 함께 왔던 옛 추억이 떠오른다.

세월은 흐르고, 아이들은 벌써 어른이 되었다.

2년 전 주흘산 산행 시 정상 가까이에 설치된

천여 개의 인공 계단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문경새재 옛길 보존 기념비 및 안내도

조령원터를 지나 문경새재 주막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한양을 향하던 상인과

선비들이 잠시 머물던 곳.

그들의 애환을 느끼며 잠시 우리도 숨을 고른다.

후덕한 주모가 반기는 모습과 옛사람들의

체취가 주변에 남아 있는 것 같다.


교귀정, 조곡관, 귀틀집, 책바위 그리고 낙동강

발원지를 지나 마지막 조령관에 도착한 것은

나와 종연이 뿐이다.

문경새재의 각종 모습을 찍은 사진


■ 여행의 끝.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선배


1박 2일, 우리는 걸었고, 웃었고, 기억을 더듬으며

다시 마음을 채웠다.

이젠 '나이 들었다' 말들을 하지만,

걸음걸이만큼은 여전히 청춘이다.


석래가 졸업한 문경종고 2년 선배(25기)를

버스정류소에서 우연히 만나 우리들에 여행은

더욱 풍성해졌고, 거들먹거리던 석래가 깎듯이

예우하는 모습이 너무나 우스웠다.


헤어지며 서로가 손을 잡으며,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우리들에 얼굴에는 아쉬움과 보이지

않는 슬픔이 있었다

겉으로는 함박웃음을 짓지만...


친구들아 건강하자! 고마웠다. 반가웠다.


-2025년 5월 11일 ~ 12일 여행을 마치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