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의 아픔

2024년 8월 24일, 모악산 산행

by 홍삼이

■ 여름 끝자락, 다시 산으로


매미 울음이 한풀 꺾이고, 처서도 지나갔다.

모기는 입이 삐뚤어질 때라지만, 밤엔 여전히

선풍기를 켜야 잠들 수 있었다.

이토록 더운 여름, 나에게 등산은 피서다.


도시의 열기는 숨을 막히게 한다.

에어컨과 차량, 아스팔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더위는 몸을 지치게 한다.

하지만 산은 다르다.

수목에서 내뿜는 피톤치트, 계곡의 골바람은

살아있는 생명력 그 자체다.


산행을 마친 뒤, 녹음 우거진 계곡에서 옷을

입은 채 즐기는 복탕(服湯)의 짜릿함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피로를 쏙 빼주는 보약과도 같다.


모악산 들머리 입구에 세워진 돌비석

■모악산으로 향하는 길


모악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 가는 듯 마는 듯한

출렁임에 잠시 눈을 붙였다.

창밖에는 벌써 익어가는 듯한 벼가 보인다.

여름도 끝자락이다.


10시 20분, 모악산 관광단지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늘 주어진 산행 시간은 4시간 반.


날씨는 흐리고 후덥지근했지만, 등산로 들머리

계곡엔 피서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했다.

계곡물에 온몸을 맡긴 채 준비한 음식들을

나누는 사람들. 그 활기찬 풍경이 산보다

먼저 나를 반긴다.


시원한 계곡의 폭포수

■ 전설과 신앙이 살아 숨 쉬는 산


모악산 (해발 793.5m)은 전북 김제시와

완주군 경계에 있다.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의 바위'

에서 유래한 이름.


무속신앙의 본거지로 다양한 설화가

전해지는 산이다. 예로부터 무제봉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며, 명당자리를 두고

주민과 관가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김일성의 32대 조상인 김태서의 묘지가

이 산에 있어서 그런지, 북한 간첩들이 자주

잡힌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진다.


모악산 중턱에서 바라본 전경

■ 사랑바위와 수왕사,

그리고 약주의 향기


얼마쯤 올랐을까,

선녀와 나무꾼의 사랑 이야기가 서린

선녀폭포와 사랑바위가 나를 맞는다.

시원한 계곡물로 땀을 씻고, 그 자리에

사랑꾼들의 열기를 담아본다.


수왕사는 약수로 유명하지만, 공사 중이라

어수선했다. 전설 속 선녀가 마셨다는 약수는

보이지 않았고, 벽암 스님이 민속주 명인 1호로

인정받았다는 이야기도 의아했다.

스님들이 즐겨 마셨다는 전통주라니, 그 맛이

궁금해지는 건 나뿐일까?


스님들이 '술은 곡차'라 하며 마신다는 얘기가

수왕사에서 시작되지 않았는지 의심해 본다


선녀폭포,사랑바위,수왕사 안내문

■정상, 심원암, 금산사의 기억


정상에 있는 엄마와 아기를 닮은 바위,

그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심원암의 삼층석탑은 소원을 이루게 해 준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오늘은 탑돌이를 하는 이

하나 없고, 탑 주변은 쓸쓸했다.

너무 더워서 정성도 쉬워가는가 보다.


하산길의 끝자락,

1,400년 역사의 금산사 담장을 따라 걷는다.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에 숨이 턱턱 막힌다.


고추잠자리 한 마리, 힘겹게 날갯짓을 한다.

천왕문을 지키는 수호신인 사천왕도 꾸벅이며

졸 정도로 한적하다.

'모악산 금산사' 일주문을 지나자, 인공폭포의

물줄기가 지친 발걸음에 시원함을 선사한다.


금산사 담장길 및 날머리에 있는 인공폭포

■ 산행을 마치며


날머리 근처 슈퍼 사장님의 친절한 인사와

시원한 음료 한 모금.

그 속에서 나는 오늘의 산과 바람, 그리고

전설과 신앙이 얽힌 옛이야기들을 되새긴다.


모악은 단순한 산행이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걷는 오래된 여행이었다.


모악산 금산사 일주문


● 모악의 아픔

최 경 선


술 향기 코끝에 스치니

땀범벅 피부,

벌겋게 달아오른다


선녀가 마셨다는 약수

맑은 물은 어디로 갔나


사랑은 바위가 되고

전설은 침묵에 잠긴다


아낙네 탑돌이

삼복더위보다 뜨겁다


폭염 속,

엄마와 아기 바위는

말없이 정상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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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정보


•걸은 길, 시간대별 정보

10 : 20 모악산 관광단지 주차장

11 : 15 수왕사

11 : 31 무제봉

11 : 55 모악산 정상

12 : 40 심원암

13 : 05 금산

13 : 35 금산사 주차장


•산행거리, 소요시간

약 8.7km, 3시간 15분


•기온 : 29도~32도, 풍속: 초속 1~2m,

습도 : 70~80%, 강수확률: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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