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의 숲에서 고향으로 이어진 여행

2024년 10월 1일, 발왕산을 다녀오다

by 홍삼이

● 비 오는 새벽, 산행을 떠나다

새벽 5시 30분, 가랑비를 맞으며 집을 나섰다.

국군의 날이 휴일로 지정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산행을 예약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비는 오전에 0.3mm,

오후엔 1mm 정도로 그칠 전망이다.

기온은 16~18도, 바람은 초속 4m의

서풍이다. 비와 바람만 가라앉는다면 산행엔

무리가 없겠다.

다만 미끄러운 길만 조심하면 될 듯싶다.


● 발왕산으로 향하는 길


횡성휴게소에서 20분간 쉬었다.

버스는 들머리 입구에 우리들을 내려놓았다.

산악대장과 선두에서 걸었다.

키가 크고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고향이 부산이며, 동래고 출신이란다.

널따란 배추밭에는 고갱이만 수확하고 겉잎은 널브러져 있다.


"요즘 배추값이 비싼데 저 우거지가 아깝네"


누군가가 말했다.

정말 그랬다. 도시로 가져가면 돈이 될 텐데.

올여름은 유난히 무더워 채소 작황도 좋지

않았다.


발왕산 정상 주변의 풍경


● 운무 속의 정상, 그리고 주목 숲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돌과 풀, 나뭇가지를 잡으며 가파른 오르막을

올랐다. 힘겹게 정상에 올랐으나, 바람이

거세고 짙은 운무로 시야가 20~30미터 남짓.

추운 날씨에 사진 몇 장만 남기고, 곧장 하산에

나섰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여행객과 등산객이

뒤섞여 천년 주목 숲길은 다소 붐볐다.

가족, 친구, 연인들이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정겹다.


발왕산 정상 및 운무 낀 산길


● 주목의 속삭임을 듣다


발왕산은 주목나무 군락지로 유명하다.

'어머니 나무를 뜻하는 마유목이 조심히 내려가라 손짓하고, '겸손의 나무'는 고개를 숙이라 한다.

'일주목'과 '참선주목' 앞에선 걸음을 멈추게 된다.

왕발, 삼두근, 8 자, 하이 파이브, 고뇌의 주목,

어머니 왕주목, 그리고 1,800년 수령의 아버지 왕주목까지...


이름만큼이나 특별한 형상들이 발길을

붙잡는다. 주목나무에 심취하다 엄홍길 트래킹

길을 놓쳤다. 한참을 헤매다 다행히 산악대장을 만났다. 대장도 최근에 새로 조성된 테크길에 당황했다며 웃는다.


각종 주목나무의 모습


● 귀경길, 기억의 문이 열리다


귀경길, 버스에서 잠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뜨니 창밖엔 노랗게

물든 들판이 펼쳐진다.

여주와 이천 사이를 달리고 있다.


벼익은 들녘의 모습


이천은 나의 고향,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갑자기 옛 추억이 스멀스멀 다가온다.


● 수수잎과 거북이 놀이


추석이면 수수잎으로 거북이 형상을 만들어,

'거북이 놀이'를 했다. 몰이꾼과 바람잡이가

이끄는 대로 집집이 들어가 놀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았다.


메뚜기를 잡아 풀줄기에 엮어, 휘파람을

불며 논길 따라 걷던 일.

콩서리로 입 주변이 까매지도록 콩을

까먹던 일.


들길에서 앞서가던 친구가 엮어 놓은 풀매듭에

넘어지며, 약 올라했던 일.


경기도 이천의 민속놀이, '거북이 놀이'

만국기가 휘날리는 운동장에서 청•백군으로

나뉘어 이어달리기, 기마전, 박 터뜨리기 등을

하며 온 동네가 잔치 분위기였던 일.


코스모스 꽃잎을 공중에 던져 헬리콥터처럼 돌며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마냥 기뻐하던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니 눈가엔 촉촉한 눈물이 고인다.


가을 운동회의 한 장면

내가 살던 집은 다섯 살 무렵까지 초가집이었다.

가을이면 볏짚으로 지붕을 새로 엮고,

구들장과 굴뚝을 손봤다.

수수깡을 엮어 벽에 붙이고 볏짚을 섞어 만든

진흙을 그 위에 붙이는 작업도 하였다.

창살문에는 새로운 창호지를 발랐다.


옛날 초가집 사진


김장을 하는 날은 동네 잔칫날이었다.

배추김치, 동치미, 파김치, 백김치, 깍두기등

종류도 많았다.

김치를 담은 항아리를 땅에 묻고, 볏짚을 엮어 김치광을 지었다.


동탯국, 돼지수육과 겉절이 김치를 곁들여

걸쭉한 막걸리가 빠지지 않았다.

가끔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건넨 막걸리가

휘청대는 좋지 않은 모습도 연출되었다.


땔감이 처마밑에 차곡차곡 쌓였다.

배고프고 어렵던 시절이 왜 이리 그리운지...


김장하는 모습과 김치광

● 황금 송아지의 산, 효양산(孝養山)


효양산이 차를 밀어내며 저 멀리 사라진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소풍을 자주 가던 곳.

황금 송아지가 묻혀 있는 전설이 있는 산이다.

중국 황제가 이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내

황금 송아지를 찾게 했다.

경기도 용인쯤에서 사신이 효양산 가는 것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단다.


"오천교, 구만리 들판을 지나야 효양산이 있다"


한결같은 사람들의 대답에 어안이 벙벙.

오천 개의 다리와 구만리나 되는 들판이라니...

지명을 오인한 사신은 조선이 조그마한 나라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큰 대국이라며 지레 겁을 먹고...


그래서 지금도 황금송아지가 효양산 어느 곳에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효양산 전경과 황금 송아지상


● 다시 품에 안긴 고향


저 멀리 설봉산이 두 팔 벌려 달려온다.

고향의 추억을 한 아름 안고서.


발왕산의 운무와 주목의 숲을 지나, 고향의

황금들판으로 이어진 오늘의 여행스토리가

가을 들판만큼 풍성한 하루였다.


오늘도 감사와 행복을 가득 안은 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음이 그저 고맙다.


●산행정보


•걸은 길 :

09:56 황토빌펜션

11:14 발왕산 정상

11:52 천연주목숲길

12:02 엄홍길 입구(내려가는 길)

13:15 독일가문비나무 치유숲

14:05 타워콘도 주차장

•거리 및 걸은 시간 : 약 13.5 km, 4시간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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