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퇴사는 처음이라서

by 여니

내 나이 스물다섯, 그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는 무의 상태이다.

다른 말로는 백수


대학 졸업 전에 바로 취직하여 근무했던 전 직장에서 1년 6개월가량 일을 하고 지난 4월 완전한 백수가 되었다.


왜 퇴사를 하였느냐고?

미래를 보았을 때 미래의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렇다고 당장 이곳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있어서 퇴사를 한 것은 아니고..

입에 늘 달고 살았던 말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 거야'였다. 그 기준에 현재 일이 맞지 않았고

그저 하루빨리 무언가를 새롭게 도전하고 실패해 볼 수 있는, 내 스스로 그러한 과정을 허용할 수 있겠다 싶을 때 다른 것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평소에도 불안감과 긴장도가 높은 나는 주변 환경이 변하는 것에 있어서 굉장히 예민한 편이다.

그렇기에 한번 적응한 주변 환경이 변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늘 해오던 것, 나에게 익숙한 것들만 선호하며 살아왔다. 그런 내가 싫었고 정체된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퇴사를 확고하게 결심하기에는 요가가 한 몫했다.

늘 혼자 해오던 요가, 내가 지치고 힘들 때 나의 안식처가 되어주던 요가, 내 스스로에게 한계가 없음을 알게 해 준 요가를 정말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내가 유일하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요가였고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다는 나의 가치관에 요가가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작정 300만 원이 넘는 요가 지도자 과정을 등록하고 퇴사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퇴사 당시에 일에 있어서 무기력함과 우울함을 매일 느꼈고 퇴사를 위한 다른 구차한 변명보단 나의 상황을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고.


팀장님, 부장님, 관장님 그리고 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가치관에 맞게 나에게 많은 조언들을 해주었다.

몇몇 분들은 이러한 나의 상황이 단순히 지나가는 슬럼프 일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올바르게 지금의 무기력함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또 누군가는 퇴사 후 요가를 배우는 것을 알게 되자 회사와 병행해라, 다들 본캐는 불행해도 부캐로 인생 먹고사는 것이다, 지금 퇴사를 하고 공백기를 가지면 경력 단절로 다음 취업이 힘들 것이다, 그 길이 쉬울 것 같냐 등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길을 무시하듯 말하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퇴사를 위해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말을 해줘서 고맙다고 하였다.


그런데 단순히 무기력함, 하기 싫음 만으로 나도 쉽게 퇴사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위에 말했듯이 나는 주변 환경이 변하는 것을 굉장히 불안해하기 때문에. 회사라는 환경에 벗어나고 싶었던 것도 어느 정도 맞긴 하지만 정확한 나의 목표는 내가 해오던 것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안정적으로 잘 다니고 있는데 왜 새로운 것을 하고 싶냐는 물음에 단순히 일이 재미없어서, 무기력해서, 하기 싫어서, 좋아하는 요가를 깊게 배워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것을 안다.


나는 그동안 용기 내지 못했던 새로운 도전을 통해 나의 길을 확고하게 하고 싶었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그것들이 나와 더 맞을 수 있는지, 아니면 내가 무기력함을 느끼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 이 일이 결국엔 나의 길이 맞았던 것인지 이것을 명확하게 알고 싶었을 뿐.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말하는 이 과정이 정체된 나를 발전시켜 줄 것 같았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아이들 방과 후 지도 담임으로 근무했던 나이기에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느꼈던 감정이 부정적인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 때문에 행복했고 웃었고 기뻤고 화가 나기도 했고 슬퍼서 눈물도 났고 이러한 여러 감정을 아이들과 교류하며 1년 6개월 동안 내 스스로도 성장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다.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 내가 포기해야 한 것이 있다면 많진 않아도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월급, 회사 일, 회사 사람들과의 관계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일 큰 것은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결정이 쉽지 않았다.

1년 6개월 동안 아이들에게 한 순간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내가 일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이유였지만 이것만으로는 일을 지속하기엔 나의 미래 고민이 더 깊었다.


퇴사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말하던 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이들과 유대관계가 매우 깊었기 때문에 퇴사 얘기를 듣고 만우절 거짓말 이라며 깔깔 웃던 아이들을 보자 울컥 눈물이 쏟아져버렸고 그제야 이 상황이 진짜임을 안 아이들이 당황했다. 몇몇 아이들은 나와 같이 울었다.


'선생님 왜 퇴사해요?'라고 묻던 아이들에게 덤덤하게 '음, 그냥 선생님 힘들어서.'라고 답했다.

그 대답이 여러 아이에게 깊이 남았던 거 같다.

마지막 출근 날 마지막 종례를 하고 다 같이 엉엉 울며 껴안으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아이들에게 많은 연락이 왔다.


'저희가 힘들 때 선생님이 옆에 있어줬는데 저희는 그러지 못해서 죄송해요. 선생님이 예전에 흘러가는 말로 힘들다고 했을 때 선생님 이야기 더 들어줄 걸, 그러지 못한 게 후회되고 이렇게 힘드신 것도 모르고 맨날 속썪이고 말 안 들어서 죄송해요. 선생님 앞으로 힘드신 일 있으면 언제든지 고민 털어놔 주세요. 저희가 다 들어줄게요!'라는 연락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 생각하며 혼자 많이 울었다. 초반에는 이렇게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안 보고 어떻게 살지 싶어서 퇴사를 결심한 게 후회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결정적으로 퇴사를 한 본질을 잊지 말고자 독하게 다짐했다.

몸은 멀어져도 마음만은 늘 아이들과 함께이고 가는 길을 응원하고 지지해 줄 것이니까 지금의 헤어짐이 끝이 아니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퇴사 이야기를 이렇게 구구절절 풀 게 있나 싶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첫 사회생활이었고 그 속에서 성장했고 내 미래를 처음으로 고민했고 그 고민을 상상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실현으로 옮겼고.

생각해 보면 다방면으로 처음 경험하는 것이 전부였던 회사 생활이었다.

그래서 회사 생활이 마냥 나쁘게만 기억되진 않는다.


나에게 다가올 새로운 도전들과 미래가 설렘으로 가득 찼지만 퇴사를 하고 2개월이 지난 지금의 나는 기대와 설렘보단 두려움과 불안정함으로 가득하다. 그런 나의 퇴사 이후 삶을 글로 기록하고자 한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물론 좋고 나쁨의 기준은 너무나도 주관적이지만) 내가 순간순간 느끼는 모든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 찰나를 글로 기록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나를 더 알아가고 싶다. 현재의 내가 느끼는 것들에 충실하고 싶다.


기억은 기록을 이길 수 없다고 믿는다.

먼 훗날 내가 쓴 글에 내가 위로받고 마음을 치유하고 온전해질 수 있길 바라며.

또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나의 글에 위로받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