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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장마

by 찬란한 하루

가을 장마라 그러더라.

어쩐지 맑은 하늘을 찾아볼 수 없는 요즘이었어.

시원한 바람은 좋아서 조금은 창문을 열어놓고 연신 뒹굴거렸어.

그러다가 점심 즈음에 엄마를 데리고 병원을 다녀왔어.

원래 안 좋던 무릎이 더 안 좋은것 같다고 병원을 가고 싶다고 했었거든.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관절염 3기라고 하시더라.

많이 아팠을거라고 약을 처방을 해주시는데도

한쪽 무릎이라도 괜찮아서 다행이야라고 애써 밝게 말하는 엄마 목소리에서

조금의 불안함이 느껴진 건 내 기분 탓일까.

그래, 기분 탓이길 바라

엄마가 조금이라도 불안한게 아니었기를.


내내 날씨가 흐리고, 조금씩의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치기를 반복하고

그러던 하루였지만, 나는 나름 나쁘지 않았어

엄마는 뭐가 고마운지 나에게 자꾸 수고했다고 말했어.

엄마의 보호자가 되는 일, 나는 나쁘지 않았어


책을 읽던 진료 대기 시간도 좋았고,

맛있었던 한식 뷔페를 엄마랑 간 것도 좋았어.

음식들이 진짜 다 맛있었거든.

오늘 저녁은 무엇을 해야하나, 내일 아침은 뭘할까 혜인아?라고

고민하며 나에게 늘 묻던 엄마가,

잠시라도 그런 걱정없이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모습을 보는게 좋았어.


사랑하는 이의 아무런 근심도 없는 표정을 본 적 있어?

나는 그 표정을 가만히 훔쳐봤어.

새삼, 기쁘더라

나는 엄마가 울 것 같이 얼굴이 일그러질 때,

내 마음도 같이 일그러졌었거든.

일그러진 마음이 펴지기 까지 엄마도 나도 참 오래 걸렸었지.


그런 엄마가 가만히, 그냥 음식 자체를 맛있게 즐기는 모습을 볼 때

기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엄마에게 무얼 더 해줄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려고

이미 흘러가버린 시간을 안타까워하고 후회하기엔,

우리에겐 남은 시간들이 있거든.


나는 알아,

언젠가 엄마와 헤어져야 하고

그 순간에는, 내가 제일 울게 될 것이라는 것


가을 장마가 끝나고 나면,

겨울이 성큼 찾아오겠지?

좋아하는 가을 셔츠를 오래 입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 가을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


지나간 여름을 뒤돌아보지 않았듯,

후회없이 사랑하고 즐기는 계절로 기억되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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