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위층 그러니까 냉동고에 음식쓰레기를 담은 봉투가 여러 개가 얼어서 얼음을 꺼내기 위해 냉동고를 열 때마다 뭔가 딱히 좋은 그림이 아니다. 난 오늘 저 봉투들을 해결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딱히 집 상태는 나쁘지 않다 어젯밤에 조금 추워서 보일러를 틀고 자서 한낮의 태양의 열기가 더해 조금 후끈후끈할 뿐 빈속의 편안함을 즐기다가 차가운 커피도 한잔하고 책을 읽으며 휴일을 만끽한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니 아까 그 음쓸도 해결하고 산책도 할 겸 음들을 챙겨 집을 나선다.
엘리베이터를 타니 9층에서 낯익은 사람들이 탄다 어린아이 한 명과 나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아주머니 그리고 남편, 남편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이 여자는 안색이 조금 안 좋다 어디가 조금 아파 보이는데 아들 녀석은 아주 총명하고 착하게 생겼다 물론 이 안색이 나쁜 여자도 매우 선량하게 생겼다 아들과 여자가 무슨 대화를 하는데 뒤에 있던 남편이 해맑게 같은 말을 읊조린다. 이 남자도 역시 해맑다. 나는 이런 해맑고 선량한 사람들을 보면 불안해진다. 이 사회가 그들을 순순히 대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아파트 단지에 있는 음식쓰레기 처리장치로 가서 음쓸들을 처리한 후 가벼운 마음으로 단지를 벗어나본다. 딱히 갈 곳은 없었지만 일단 책을 한 권 들고 나왔다 가방도 없이, 위화의 형제 중국작가들은 시대가 만든 것인지 항상 진지하다 얼마 전 읽은 오스카와 오의 짧고 놀라운 삶도 트루히요라는 독재자의 광기가 저주를 품고 그들을 괴롭히지만 거기의 등장인물들은 조금은 유머를 쥐어 짜내 버틴다고나 하는 느낌이었다면, 이 책도 역시 중국의 독재자의 광기가 서슬 퍼렇게 진행되던 시절인데 대하는 자세는 진지하다. 물론 특유의 유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난 그렇게 책을 한 권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본다. 우리 동네는 사람 보기가 힘들다. 관공서가 있어서 그런지 그 주변은 썰렁하다. 심지어 편의점도 문을 닫았네. 물론 나는 이러한 썰렁함은 그다지 싫지는 않다. 나는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아까 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가족을 만났다 우연히 횡단보도에서 난 그들의 뒤에 서게 되었는데. 그들은 외식을 나온 모양이다. 난 이쯤에서는 조금 흐뭇한 감정도 든다. 마치 내가 배부르게 먹은듯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그들의 뒤를 계속 같이 가기에는 뭔가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나는 어차피 딱히 정해진곳이 없으니 방향을 틀어본다.
식사를 할까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을까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이리저리 굴려본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 나오는데 다시 그 가족을 만났다 그 방향은 다시 나와 그들이 사는 단지로 가는 길이다. 왜 저들이 식당에 안 들어가고 그냥 가는 거 같지 그런 생각이 든다. 아빠가 아들의 손을 잡고 여자가 뒤를 따른다. 뭔가 서글프고 슬픈 냄새가 난다. 그냥 한 바퀴 돌다가 가는 느낌 왜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그냥 나왔다 가는 건가. 난 사거리에서 그들을 두고 다시 길을 틀었다. 아 저 치킨집은 부부가 정말 다정하고 착하신데, 아 저 치킨집 젊은 주인은 정말 못돼먹었는데, 떡집의 쇼윈도 뒤로 5살쯤 된 아기들이 의자에 누워 작은 이불을 덮고 태블릿을 보고 있다. 저기도 떡을 몇 번 사기는 했는데 장사가 신통치 않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난 어느 커피숖을 가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난 술을 마시면서 책이 읽고 싶어 졌고, 머리를 쥐어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작년겨울 어느 닭꼬치 집이 생각났다 아주 선량한 웃음을 가진 여자 사장님이 하시는 그 꼬치집 난 커피숖에서 나와서 황량한 관공서길을 걸어 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갔다. 그 여사장님과 남편 되시는 분이 같이 계셨는데 남자 사장님도 인상이 좋다. 난 닭꼬치에 소주를 시키고 김치우동도 한 그릇 시키고 책을 펴고 읽으며 소주를 마시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두 책에서 느낀 인간들의 광기는 내가 태어난 시기와 살아온 시기에는 잠시 주춤했을을 이제는 알 것도 같다 광기는 언제나 내재해 있으며, 발현될 수 있음을 오늘 그 가족을 보며 그 닭꼬치 집을 가며, 길을 배회하며 아 오늘은 분명 조금 쓸만한 글을 쓸 수 있겠어 생각했는데 역시 이제는 조금은 힘들어진 거 같다 술을 예전처럼 마실 수 없고 그 가녀린 감정들을 끄집어낼 수 없는 거겠지. 그녀에게서 병색이 느껴졌었는데 머리의 찰랑찰랑한 윤기를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그리고 그 가족은 아주 화목하고 평화롭다 그게 좋다. 술을 마시고 글을 써 버릇 했더니 소주 한병으로는 너무 정신이 더욱 맑아져서 총기가 가득해진 느낌이라 글을 쓸수가 없다
그래도 뭔가를 썼다는게 중요한거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