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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제 갈 곳이 없다1

숲속의 맨발보행

by 톰슨가젤

어젯밤에 아 맞다 어제는 미친척하고 편의점에서 하이볼 만드는 위스키를 들었다 놨다 하다가 다시 냉장고 칸으로 가서 토닉워터를 꺼내어 들고 또 만지작만지작하다가는 산토리위스키인지 뭔지를 사들고 오고 만 것이다. 나는 나오면서 오랜만에 혼자만의 여흥을 즐기려면 안주도 조금 품격에 맞게 오징어포라든가 육포라든가 치즈라든가 뭔가 사 올걸 하는 생각을 하며, 한편으로는 조금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냉장고 위칸의 다이소에서 구입한 사각트레이에 얼린 얼음을 꺼내기 위해 사각트레이를 두 손으로 좌우로 비틀어 얼음을 꺼내어 아 이런 우리 집에는 위스키를 담는 언더락 잔은 없지.. 이런 모양 빠지게 할 수 없이 주스잔에 얼음 두 개를 넣고 책상으로와 토닉워터를 조금 붓고 위스키를 개봉해 코로 킁킁 거리며 맡아보다가 일정량을 따라준다. 일단 전문가스럽게 스트레이트로 한잔 해볼걸 그랬나란 생각을 잠시 했지만 말도 안 되게 웃긴 거 같아 그만두고 잔을 들어 코로 먼저 들이치는 그 위스키의 향 아 문득 든 생각이 아주 오래전 30년 산 무슨 위스키를 마셔본 적이 있는데 그 대낮에 평상에서 말이다. 그 맛이 왜 아직 기억이 나는 거지 그런 건 이제 기억 안나도 되는데 하며 조금은 만족스럽지 않은 느낌으로 들이켜본다. 생각해 보니 이미 냉면집에서 혼자 냉면과 수육 몇 점에 소주 한 병을 하고 호사를 누렸으니 맛이 있을 리가 있나.


밤새 또 이상한 꿈을 꾸다가 일어나니 어제의 그 자기만족을 위한 호사스러움이 오히려 독이 되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냥 막걸리나 마실걸 아휴.." 4분의 1쯤 마신 위스키병을 보니 그냥 조금은 한심했다. 속은 쓰리고 또 어디 가서 국물을 들이켜야 조금은 살 수 있을 것 같아 동네에 멸치 칼국수 집을 찾았다. 이 집은 김치가 일품이야 정말 일품이지 이런 김치는 그냥 하얀 밥에 폭 얹어가지고 먹어도 하루의 피로쯤이야 일거에 날릴 수 있을 텐데.. 하며 국수가 나오자 나는 김치를 작은 항아리에서 옮겨 담고는 국수한입을 호로록 입에 넣고 김치를 아삭아삭 씹어본다. 그러기를 10여분 남은 국물을 아낌없이 마셔준후 국물에 동동 떠다니는 새우건더기도 입에 넣어준다.


식당을 나오니 나는 또 갈 곳이 없어졌다. " 아 어디 가지? " 근처의 대공원을 가기로 하고 버스를 탔다. 버스에 내려 대공원 중간 입구로 들어가 본다 엄청난 크기의 나무들이 좌우로 가득하고 사람들은 자전거도 타고 걷기도 하고 그나마 평일이라 사람은 조금 적은 느낌이다. 나는 조금 걷다가는 삼림욕장이라고 쓴 쪽으로 들어서서 올라가다 저번에 앉았던 흔들의자를 발견한다. 옳거니 여기서 책을 읽어야겠다 생각하고는 앉아서 엉덩이를 흔들어 본다.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중국작가의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한다. 1권은 다 읽었는데 이 책에는 작은 영웅이 나온다 각기 다른 성품의 두 영웅이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흔들흔들 거리며 책을 읽다 보니 위쪽에서 참새 지저귀는 소리 같은 소리를 내며, 여자들 3명이 내려온다. 앞으로 지나가는 그녀들을 보니 이런 발이 또 죄다 맨발이네 그녀들은 맨발의 치유 같은 것을 하고 있나 보다. 나는 나도 그래볼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러기엔 아직 난 애송이잖아.라는 생각을 하고는 책을 보는데 남자의 음성이 들린다

" 아니 이런 여사님들 여기 유리조각이 있잖아요 에구에구 발 다치시면 어쩌려고요"

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작은 유리조각을 들고 일어나더니 앞의 3명의 여자에게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한다.

" 아이고, 어머 어머머,, 큰일 날뻔했네.." 노란 등산모자를 쓴 여자가 말을 하니 나머지 두 여자는

" 어머 웬일이야 완전 큰일 날뻔했어 이 분이 우리 구세주시네.!"라며 호들갑을 떤다.

"어머어머 어머어머 호호호호 하하하" 놀라움과 웃음이 뒤 섞여 작은 숲 속을 들썩인다.

"아 저기 진짜 맨발 조심하셔야 해요. 제 아내도 여기서 맨발로 걷다가 발을 다쳐서 제가 더욱 유심히

보게 되더라고요" 라며 남자가 말을 한다.

" 아이고 이런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해요 호호호, 커피라도 한잔 사드려야겠다 이리로 가요"

노란 모자의 여자가 남자의 팔꿈치를 덥석 잡으며, 앞쪽으로 데리고 간다. 나머지 두 명의 여자도 계속 호호호 거리며 뒤를 따라나선다.

"아이고 사모님들 제가 뭐 커피 얻어 마시자고 그런 건 아니고요, 바닥에 유리가 보이길래 주운 거죠 커피는

사주신 걸로 하고 다음에 마실게요 지금 저도 운동 중이라서요"라고 남자가 차분히 말한다.

"어머 에이 안돼요 무슨 은혜를 입었으면 작게라도 갚아야죠 호호호"라며 노란 모자의 여자가 말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매점 쪽으로 4명이서 남자를 가운데 두고 걸어간다.


난 이 광경을 한 세 번쯤은 본 거 같다. 저 남자 유리조각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남자 세 번쯤 보니 그 남자가 무얼 하려는지 알 것도 같다. 아 내가 너무 같은 곳에 자주 오나란 생각을 할 무렵 노란 등산 모자의 여자가 뒤를 돌아보고는 내 앞의 등산복 차림의 남자에게 동그라미 표시를 손으로 해 보인다. 그러니 그 남자도 오른손을 들어 동그라미 표시를 한다.

"아이 사모님들 커피는 다음에 마셔도 된다니까요 하하하" 유리조각의 남자는 오른손에 저번에도 들고 있던 유리조각을 들고 쾌활하게 웃으며 걸어간다.

"아 네 번째는 볼 수 없겠는걸" 하고 나는 나지막이 혼잣말을 하며 소설책을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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