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이 매우 약한 한 여자와의 만남
밤새 조금은 외롭다 싶은 마음에 굴복하고는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다행히 소설 백년의 고독을 읽으며 마음은 조금 안정을 찾고 잠들었지만 꿈을 여러 번 꾸고 뒤척이고, 우울한 마음을 지닌 채 눈을 뜨니 12시다. 오늘도 살아 내야 하는 거겠지 냉장고에는 나에게 영양을 공급해 줄 무언가를 기대할 수 없는 거 같다 한때의 의욕들로 조금 사놓은 야채들이 숨죽이고 죽어가고 있을 뿐, 한쪽에서는 그나마 단단한 계란들이 껍질의 보호를 받으며 나름 신선하게 나에게 웃고 있지만, 나에겐 지금 무언가를 할 의욕은 없다.
대충 샤워를 하고 꿀물을 한잔 타서 마셔보고, 수분이 조금 들어가니 살 것도 같다. 얼마 전 동네 산책길에 작은 시장 내에 새로 생긴 백반집을 눈여겨보아 두었는데 거기 가서 조금은 식사를 하고 다시 힘을 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을 나선다. 정말 한적하고 고요한 시장 내에 백반집 나는 들어가서 곤드레 백반을 주문하고 앉는다. 아주머니는 작은 냄비에 김치콩나물국을 내와 작은 버너에 올려놓고 불을 켜고는 끓여준다. 아 이건 정말 호사롭군 내 얼굴만 봐도 술마신걸 알아낸 걸까. 아직 국물을 떠먹지도 않았는데 해장되는 기분이야 살아나는구나 나는 다시 살아나 이런 생각을 할 무렵 정갈하게 차려진 백반이 나온다
"김에 간장을 찍어서 밥에 싸 드시면 맛있습니다"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총총히 작은 주방으로 사라진다. 나는 김치콩나물국을 숟가락으로 떠먹다 손으로 그릇을 집어 후루룩 마셔버린다. 아 살 것 같다 정갈한 반찬과 식사를 하고는 식당을 나온다.
난 이제 또 갈 곳이 없다. 차가 고장 난 후로 기동성이 떨어진다. 집 근처의 도서관은 수리에 들어갔으니 멀리 도서관을 가기도 조금은 그렇다 한 적한 동네를 몇 바퀴 돌다가는 더위에 지쳐서 작은 커피전문점에 들어간다. 차갑고 시원한 냉기에 기분이 좋아진다 키오스크 앞에 분홍색 모자를 쓰고 분홍색 라운드 티를 입은 여자 한 명이 화면 가까이에 얼굴을 갖다 대고 열심히 고르고 있다. 그러더니 결제하는 카드 입구에 카드를 맞추어 넣지 못하고 이리저리 대본다. 아 시력이 많이 안 좋구나 그녀는 두꺼운 검은색 뿔테 안경을 착용했지만 안경도수가 안 맞거나 시력이 아주 안 좋거나 그런 거 같다 갑자기 한강의 소설 희랍어 시간이 생각났다. 묘하게 기분이 이상해진다. 나는 가까이가 조심스럽게 카드에 손을 뻗어 카드단말기 입구에 넣어준다. 그녀는 고맙단 말은 하지 않지만 살며시 웃는다.
나도 주문을 하고 포인트 적립을 하라는 화면을 보고는, 핸드폰 번호를 눌러봤지만 그런 회원은 없다고 나온다 그냥 결제를 하고는 번호표를 받고는 뒤를 돌아보니 분홍색 모자의 여자가 카운터 바로 앞 테이블에 앉아 있다 그 옆에 1인 테이블이 비어 있어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자리에 앉아 가방을 놓고 기다려본다. 잠시 후 벨이 울리고 그녀가 일어나 커피를 받아온다. 조금은 불안해 보이게 오더니 테이블에 앉자마자 커피를 조금 쏟는다 바닥에 얼음 몇 개와 커피가 흐른다. 그녀는 하얀색 면 손수건을 꺼내 접힌 채로 테이블을 닦는다. 나는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냅킨함에서 냅킨을 두툼하게 뽑아다가 그녀에게 건넨다 그녀는 역시 말이 없이 웃으며 받는다. 내 번호가 기계음으로 호명되고 난 커피를 받아다가 테이블에 앉고서는 백 년의 고독을 펴본다. 형광펜도 꺼내어 중요한 자리에 하이라이트 표시를 할 준비를 한다. 주변의 사람들의 소음이 그나마 약간의 어색함과 부끄러움을 덮어주는 느낌이다. 그녀는 일어나더니 화장실 쪽으로 간다 한참 후 나오더니 냅킨을 휴지통 쪽으로 가서 버리려고 여기저기 더듬더니 땅에 떨어 뜨린다. 휴지통 입구를 찾지 못한 모양일까 그녀는 모른척하고 다시 자리로 와서 앉는다.
나는 바닥에서 조용하게 기다리는 냅킨을 주어서 버려줄까 말까 고민한다 그건 너무 오지랖이란 것으로 넘어가는 거겠지 그래 그럴 거야 아르바이트생이 조금 후에 치울 거야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혹시 그녀가 저기에 무엇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망상주의자 같으니라고 나는 사고의 고속도로에서 탈선하는 자아를 되돌리려 애쓴다 돌아와 다시 제대로 주행하란 말이야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빨아서 목구멍으로 넘겨본다. 차가운 것이 목 안으로 들어가니 망상은 조금 진정된다. 그녀는 엑스트라 아메리카노를 다 마시고는 반납하는 곳에 들고 간다. 그곳에는 커피를 받기 위해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고 커피가 나와있다 그녀는 그녀의 다 마신 커피를 그 새커피 옆에 놓는다 그 손님은 약간은 당황하지만, 아르바이트생이 이내 와 그 빈 컵을 수거해 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분홍색모자의 여자는 문을 열고 쓰레기봉투에 담긴 약간의 장거리를 들고 가 버렸다.
아르바이트생은 기다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창고에서 꺼내 들더니 그 냅킨을 쓸어 담아 들어간다. 그 냅킨 안에 무언가 쓰여 있을 것 같은 생각은 떠나지 않는다. 나는 책 백 년의 고독 중 레베카가 자동피아노를 수리해 주는 남자에게 빠져있는 장면과 아마란따가 질투하는 장면을 읽고 밑줄을 긋고 있다. 그 냅킨 속에 문자가 새겨져 있을 거란 생각이 강하게 들지만 그건 또 웃기는 망상일 뿐이지 않는가. 그 두 가지 결과는 묘하게 붙어 있다 종이의 앞 뒷면처럼 말이다. 난 결국 정신을 차리고 커피를 다 마시고는 내 고독한 내 육체를 끌어내어 집으로 끌고 간다.
카페는 다시 두 고독을 잃고 언제 그랬냐는듯한 신나는 노래가 나오고 있다. 아까의 그 분홍색 모자 여자가 다시 들어온다. 그녀는 아르바이트생에게 가서 작은 쪽지를 건넨다
"냅킨을 가져갔나요?"라고 쓰여 있다.
"아니요, 안 가지고 가셨어요 여기 다시 돌려드릴게요" 알바생은 종이에 써서 보여준다..
"그러면 다음에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 분홍색 모자의 여자도 종이에 글을 써서 보여준다.
"네 언제든지요 " 알바생은 다시 글을 써서 보여준다
분홍색의 여자는 냅킨을 조심스레 펴본다 눈썹을 그리는 화장품으로 쓴 글자들이 아직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감사해요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