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이미 녹초다..
방송대 수업을 듣고 집에 왔다 집에 오는 길에 비가 왔고, 그동안도 몸은 항상 차가웠다 음 생각해 보니 , 이른 새벽에 김치찌개를 끓여 식사를 하고는 안 했으니 몸은 열을 내기에는 역부족인가 보다.
비를 맞으며 , (우산이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끓여둔 김치찌개를 데워서 막걸리를 꺼내든다. 막걸리는 비를 맞으며 집 앞 편의점에 공수했다. 집에 만들어진 요리가 있다는 건 이미 반쯤은 행복을 달성한 셈 아닌가. 셀프 행복 그래서 요리를 하고 바로 먹으면 안 된다. 조금은 시간차를 두고 , 마치 누가 해준 것인 양 먹을 때 그 느낌은 인공적인 사랑을 받는 느낌을 낼 수 있는 것이다.
혼자 흥얼거려도 나쁠 것은 없다 " 아이 얘 좀봐... 우산 안 가지고 갔어? 비 다 맞았잖아"
누나든 엄마든 그건 각자의 설정대로 하자. 농담이다 이쯤 되면 조금 기괴하게 흐르니까 말이다
아까 그 방송대 건물에 도착해서 강의실로 갔더니 역시나 학구열에 불타는 아주머니들이 복도를 점거하고 있었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 난 저번에 뒤에 앉았다 필기를 제대로 못 하면 굉장히 불리하다는 경험을 하고 앞에서 3번째 줄에 앉았다. 누군가가 두리번거리더니 검은색 핸드폰을 내 옆 자리에 놓고는 사라진다. 음 여기 앉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겠지.. 강의가 시작할 무렵 그녀는 나타나서 앉는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이미 과자와 사탕으로 가득 찬 봉투가 놓여 있다 그 봉투를 놓은 사람들은 이 학과의 핵심 세력이다. 그녀들은 이미 무슨 모임을 가지고 서로서로 아는 모양이다 나는 알리가 없지만 , 수업이 시작하고 그녀는 그 봉투의 과자와 사탕들을 하나씩 꺼내어 쉬지 않고 먹어댄다..아주 깡마른 여자인데 왜 이리 당분이 든걸 많이 먹지.. 그런 의문이 든다. 느낌에는 저혈당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사탕을 으깨는 어금니의 공격적인 소리가 들린다. 다행히 여기저기 초등학생 소풍처럼 떠드는 소리가 그 어금니의 슬픔을 조금은 상쇄한다. 그녀가 너무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찾는 듯한 불안함을 보이길래 난 가방에 있는 작은 과자봉지 하나를 조용히 책상 옆으로 밀어주었다. 그녀는 살짝 웃음 짓더니 본채 만채 한다. 그 과자 봉지는 그녀와 나의 책상 경계에 걸쳐 오도 가도 못하고 서로의 감정을 괴롭히고 있다.
잠시 쉬는 시간이다. 난 그 과자를 어떻게 할까 너무도 고민이 든다 비뚤어진 각도를 정사각형으로 만들어 내 자리 좌측 위쪽에 두었다가 , 다시 그녀의 오른쪽 위쪽으로 밀어 두었다. 그녀가 왔다. 6시간 수업동안 몇 번 나갔다 올 때마다 그녀는 항상 가방을 들고 갔는데 , 그녀에게서 담배 냄새가 난다. 뭐 기호니까 나도 한때는 헤비 스모커였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녀는 아픈 게 분명하다.. 그녀는 내가 밀어 놓은 과자는 먹지 않는다 수업이 끝났다.. 그녀는 갑자기 이것저것 물으며 나를 쳐다본다. 난 그녀의 눈은 보지 못했다
난 사람의 눈은 잘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눈을 보면 너무 많은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슬픔 기대 번민 교만 그것들이 나를 상념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녀는 몇 가지 묻더니 아니 내가 먼저 자리를 떴다.
화장실에는 교수가 소변을 보고 있었다 목례를 하고 , 나는 볼일을 보는데 그 교수는 손을 씻으려는 행위를 잠시 고민하려는 찰나 학과장의 전화를 받으며, 공손한 모드로 화장실에서 나갔다. 나는 화장실에 나와서 건물 밖으로 나오니 비가 부슬부슬 온다. 빨리 지하철역으로 가야겠다 생각하며 걷는데 그녀와 그 옆에 나이 드신 어르신 두 명이 같이 걷고 있다. 다행이다.. 그녀 곁에는 누군가 있다
이렇게 글을 쓰면 당신은 그녀에게 호감이 있었나요? 하겠지만 그렇다면 호감에 대해서 다양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고통의 공유도 호감이 될 수 있다. 그녀에게는 아픈 냄새가 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낡아 가는 냄새랄까 물론 그 냄새가 나에게도 확연히 나기에 나는 동질감을 느낀 것이다. 그렇다고 동질감은 사랑이나 그런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난 여자를 잘 모른다.. 조금은 알 듯하면서도 말이다 과자를 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너무 배고파하는 것처럼 옆에서 미친 듯이 사탕을 으깨먹고 있으니 말이다. 항상 술을 마시니 글의 맥락이 없다 주정하는 사람들은 맥락이 없지 않나.. 좋았던 건 낯선 비와 낯설은 타인의 슬픔정도라 해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