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있었는지도 기억도 안 나지만 몇 달 전에는 그 차를 고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시동을 거니 시동이 걸리고 역시나 부르르릉 우우웅 하며, 거친 숨을 토해낸다. 노란 경고등이 들어왔지만 이건 아주 오래전부터 새겨진 문신 같은 거니 상관은 없다. 차량에 남은 물품들을 이것저것 정리해 집에 가져다 놓고 차를 몰고 근처 폐차장으로 간다. 남동공단 정말 오랜만이다. 그 변함없는 공기 대기업이 조금은 모던을 벗어나 더 진보해갈 즈음 남동공단은 여전히 옛 모습을 잃지 않고 그대로이다. 폐차장에 도착해 입구 사무실 앞에 차를 대고 들어가 본다. 사무실은 바로 여직원들이 여러 명 앉아서 접수를 받는 구조이다. 난 바로 앞의 두 명의 여자를 보고 순간 나름의 판단을 하고 오른쪽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차를 폐차하려고요"
나는 미리 준비해 둔 신분증 사본과 통장 사본을 건넨다.
"신분증 사본하고 통장 사본을 준비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보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여직원은 동글동글한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제가 복사해드릴까 했는데 미리 준비하셨군요"
그녀가 마우스에 손을 대고, 화면을 보며 이리저리 무언가를 체크한다.
"자동차세는 고지서가 나온 게 없어서 그냥 왔습니다. 혹시 나온 게 있을까요?"
그녀는 화면을 조금 더 응시하더니 전화기를 들고 어딘가로 전화한다
"구청에 전화를 해봤는데 식사시간인가 봐요 전화를 안 받네요 혹시 고지서 나온 게 있으면 문자로 알려드릴게요"
그리고는 몇 번 더 화면을 응시하더니
" 폐차비용은 지금 바로 입금해 드렸습니다"라고 말한다.
나의 핸드폰은 부르르 떨며 돈이 들어온 입금 내용을 알린다.
이렇게 빨리 이별이 완결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순식간에 병들고 아픈 장기를 도려낸 느낌이다. 진작 보내줄걸 그런 생각을 하며 버스를 타기 위해 근처 전철역으로 간다. 가다 보니 버스정류장이 있어 살펴보니 집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조금은 스산하고 습한 날씨에 나는 몸이 조금 움츠려든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떤 남자가 절뚝이 더니 도로 옆 숲으로 질러간다 인도로 가면 기억자로 가야 할 길을 빗변으로 질러가는 거다. 난 순간 피타고라스 공식을 생각한다. 그리고는 그 길을 처음 간 사람을 생각한다. 그는 아주 먼 훗날 그가 지름길을 만든 장본임을 기억하지 못할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 숲의 고요함에 대해 그리고 조밀하게 심어진 포플러들에 대해도 생각한다. 너무 촘촘한 데다가 그 지름길 덕분에 사람들의 발소리가 끊임없이 나무들의 평온을 방해한다. 포플러들의 벗겨진 모습은 마치 백반증을 앓는 환자 같다. 한 여자가 오더니 버스를 기다린다. 그녀의 단정함이 나의 부실한 옷차림을 꾸짖는다.
폐차장 접수원은 어떻게 그렇게 친절할 수가 있는 거지... 우연히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관측한 기분이다.
난 그 기분 좋음으로 이제 갈 곳이 없는 마음을 상쇄시켜 본다. 물론 그녀가 나에게 탁송이세요? 물어볼 때의 그 눈빛은 조금 흔들렸다. 버스가 왔다 난 버스를 탔다. 버스는 집 쪽으로 간다. 난 오늘 이 시간에 이 길을 지나치길 계획되어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난 어디로 가도록 계획되어 있을까?
또 밤이고 난 술을 한잔 하며 그녀를 생각해 본다. 난 그녀처럼 세상에 친절할 자신이 없다. 나의 과잉친절들은 위선이었음을 난 알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난 빗변을 질러가 본 적이 있는가? 그건 또 의문이다. 아니 난 항상 기억자 길 대로만 걸었다. 빗변은 아무나 질러갈 수 없다 더욱이 처음이라면 말이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드는 건 그 쾌감에 대해 나는 모른다. 동경할 뿐이다. 빗변을 질러가는 모습을 본 포플러는? 나는 백반증을 앓는 포플러 일까?
역시 이런 장난은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하지만 난 그 접수원의 옆 자리의 여자가 빗변을 질러감을 직관으로 느끼고 반대쪽의 여자를 택한 것이다. 아무튼 난 그렇게 세상에 친절할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