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술이 거나해져서 잡글을 막 써대면서 자아도취에 조금 취해 있다가, 또 빙하기가 도래한 것처럼 글 쓰는 행위자체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노력하지 않으면서 무언가 나아지려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혐오감이 든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며칠씩 한 6일 되었나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보면 , 조금은 심심하기도 하고 물론 책을 읽거나 티브이를 조금 보거나 바둑도 다시 두니까 바둑을 두거나 하면 시간은 얼추 채울 수 있지만, 인간은 커뮤니케이션을 조금 해야 그래도 존재감의 확인 같은 그런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하루를 또 좀처럼 좀먹고 물론 부지런한 귀뚜라미의 음악소리와 함께 말이다 고마운 사람이 조금 있어도 주머니 사정 때문이 아니라 찾아뵙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 그건 아마도 자본주의란 게임에서 이미 오래전에 탈락한 부류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뭐 성격 좋은 사람처럼 하하 "그냥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하면. 으레 속으로는 이 녀석이 무슨 부탁을 하러 왔을까 하고 생각하면서도 아주 조금은 그래도 기뻐할 것이다 나이가 들면 누군가 찾아준다는 거에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인간도리를 조금 해보려는 그런 건 공상으로 끝나고 마는 일이다 조금 젊은 시절에는 진지하게 돈을 조금 벌어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공상도 했지만 , 그냥 난 조금 못난 인간으로 아무도 관심 없는 인간으로 남겨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나의 색이고 나의 운명이 아닌가.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아 이 어묵볶음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맛있다"라고 나는 혼잣말을 한다. 명절바로전날인가 마트에 들러 장을 보다가 어묵을 샀다. 어묵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어육함량이 높다는 광고를 보고 하나 집어서 어묵볶음을 만들 요량이었다. 어릴 때 너무 라면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밀가루가 너무 몸에 안 받는다 어묵도 어떤 건 먹고 나면 소화가 안 된다 성분을 보면 밀가루로 만든 어묵이다 모양과 색만 어묵이지 그냥 밀가루다
명절이 다 지날 무렵 냉장고에 방치된 얇은 어묵이 눈에 들어온다 땅거미가 지고 저녁 무렵에 이 어묵볶음을 해서 반찬을 해야겠다 싶어 냉장고를 뒤져보니 피망과 꽈리고추가 있다 이런, 피망과 꽈리고추는 친척 아닌가 아니 자매인가 이런 이건 동시에 자매에게 구애받는 일이 아닌가 이건 실제 연애는 물론이고 요리에서도 금기사항이야 이건 금단의 열매라고... 아 피망을 포기해.. 아니 꽈리고추를 포기해! 난 남자니까 ㅋㅋ 무슨 소리지 난 알 수 없는 잡념 속에 휘둘려 휘청댄다.. 정신을 차려야 해 알아 안다고 두 개 다 넣는 건 욕심이란 걸 과욕이지 그런 과욕을 정말 혐오하니까 몇 초쯤 고민하다가 그냥 둘 다 넣는다 이유는 냉장고에서 저 둘을 그리 오래 보관해 주지 않는다 쭈끌쭈글해져서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보내느니 나의 예술성이 조금 상처받더라도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결정된 이상 팬을 달구고 원래는 양파가 있어야 하지만 그게 없어 저 이지경이 된 거긴 하다. 아무튼 달궈진 팬에 적당히 썰은 피망과 꽈리고추를 볶다가 뜨거운 물을 잠깐 부은 어묵을 넣어주고 볶는다 양조간장 적당히, 설탕 한 스푼 고춧가루 많이 멸치육수 두 스푼 됐어 ~ 센 불에서 조금 볶다가 다시 물을 조금 넣고 뚜껑을 덮어 살짝 익혀준다
조금은 놀랬다, 어묵의 포장을 뜯었을 때 오래전 그 냄새가 났다. 그 오래전 시장통에서 팔던 어묵에서 나던 그 향기 어육이란 게 생선의 살이겠지 누군가의 살 그게 없으면 이상하게도 인간은 힘이 나지 않는다. 대기업들이 효율성을 추구하다가 소비자의 외면을 받기 시작하더니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거 같다 예전에는 물건을 잘 만들어 팔려는 게 기본 원칙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용도과 가격에 맞게 성분을 달리해서 만든다. 그래서 어묵이라고 쓰여있어도 어묵이 아닌 것들이 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왜냐하면 난 항상 우연성에 기대어 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써대다가 또 적당한 결론에 다다랐다 난 인간함량 몇 프로 일까? ㅎㅎ 이런 말을 하고 나니 괜스레 밀가루어묵에게 미안해지네 밀가루던 어묵이던 뭐 다 같이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뇌의 어느 부분부터 번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