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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되니 싫어졌다

일하기 싫은 이유

by 푸른푸룬

일을 하다 보면, 너무 하기 싫을 때가 종종 온다. 아니, 자주 오기도 한다. 오늘도 업무에 쫓겨 사무실 모니터를 눈이 충혈되나 싶게 쳐다보다가, 귀에 땀이 찰락 말락 전화를 걸고 끊고를 반복했다. 그런데 왜인지 이런 오늘의 내가 갑작스레 낯설게 느껴진다. 이럴 때면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하는 생각과 함께 허무함이 몰려온다. 소위 ‘현타’가 온다. 이렇게 되면 짧은 순간에 별의별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간다. 지금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무엇을 위해 하고 있나, 굳이 해야 하나,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등, 주로 왜(Why)에 대한 질문이다.


why-1432955_1920.png 나는 왜(why) 이러고 있을까


왜(Why)에 대한 생각은 예전에 많이 한 적이 있다. 취준생 시절, 미래에 대한 혼란과 격동의 시절. 수십 수백 장의 자소서를 써보고, 장인정신으로 글자 하나하나를 다듬고, 다듬어보며 미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던 시절. 자소서엔 왜 나를 뽑아야 하는지에 대한 어필은 필수였다. 공대생이었던 나 그리고 같은 공대 친구들은 대부분 취업이 목적이긴 했지만, 특정 회사나 업종에서 반드시 일해야 한다는 친구는 없었다. 오히려, 당연하게도 연봉과 복지가 회사 선택의 중요한 척도였다. 물론, 선택한다고 선택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서일까 왜(Why)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은 부족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이 일을 하고 싶다고, 이 일이 적성에 맞다고 쓴 자기소개서로 아등바등 취업한 이 회사이다. 그런데 취업 전에 생각했던 일과 내가 생각했던 일 사이에는 괴리가 있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실무는 전혀 다르다고 하도 들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느껴보니 전공의 ‘무(無) 쓸모’에 많이 허무했다. 배웠던 전공지식은 가뭄에 콩 나듯 쓰긴 했지만, 대부분은 필요 없는 지식이었다. 그런 지식보다는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논리적 대처능력 또는 문제해결력이 훨씬 더 필요했다. 거기에 다른 부서와 협력하는 방법, 사람들과 잘 지내는 방법,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들도 더 필요했다.



tie-690084_1920.jpg 취업에 성공했을 때, 소리를 지를 만큼 기뻤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과 다르긴 했지만, 재미는 있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있었고, 문제 해결에 필요한 원인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다른 부서와 도움을 주고받는 것도 할만했다. 하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어느 정도 배운 뒤에는 그저 그런 반복적인 일이 되어버렸고, 전체적으로 비슷한 일로 느껴지다 보니 흥미가 떨어졌다. 이제는 애초에 흥미가 있었는지 기억도 희미하다.


이제는 취준생 때 내가 좋아한다고, 좋아할 것이라고 믿었던 일들이 지금은 아닌 것이 되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을 한다고 하더라도 일이 되면 싫어진다던데, 글로만 읽었을 때보다 몸으로 직접 겪어보니 가슴 깊이 와닿는 문구이다. 그렇지만 왜 그럴까, 왜 일이 되니 싫어졌을까? 일이 좋을 순 없는 걸까?


일이 싫은 이유 중 하나는 반복의 지루함 때문이다. 일이 되면 일반적으로 평일엔 ‘매일’ 그 일을 해야 한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매일매일 그 일을 한다면 과연 좋을까? 생각보다 금세 질려버릴 것이다. 어쩌면 거의 고문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반대로 우리가 보통 좋아서 한다고 하는 것들은 ‘가끔’ 한다. 그래서 질리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다. 잊어버릴 만할 때쯤 다시 해서 새롭게, 신나게 할 수가 있다.


출근은 이제 지루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다른 하나는 ‘성과’이다. 일했으면 결과가 나와야 하고, 또 좋게 나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맘 편히 즐길 수가 없다. 회사에서 행하는 일련의 행위들은 결국 성과를 위해 하는 행동들이다. 기업의 존재 이유와 마찬가지로 일하는 행위는 ‘이윤’이 나야 한다. 그래서 성과에 항상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반면에 우리가 즐긴다고 하는 것들은 결과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취미로 구운 빵이 다 타버렸다고 해서 마음은 속상하겠지만,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제과점에서 일하던 중 빵을 다 태웠다면? 바로 ‘죄송합니다’부터 나와야 할 것이다.


job-2714177_1920.jpg 어느 순간, 일과 성과에 묶여버린 나를 보게 된다


그럼 즐겁게 일 할 수는 없을까? 위의 것들을 반대로 해보면 어떨까. 질리지 않는 수준의 계속 변동되는 새로운 일, 그리고 성과가 없어도 괜찮은, 실패해도 좋고 성공하면 더 좋은 그런 일을 한다면 비로소 즐겁지 않을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고민이 없었을 것이다. 직업이 되면 하기 싫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이를 받아들이는 게 마음이 편하겠다. 일을 통해서 즐거움을 찾기보다는 퇴근 후 취미생활 등 일 외적으로 즐거움을 찾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OO 씨, 어제 부탁한 거 다 처리됐나요?”


짧은 ‘현타’를 끝내고 말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과장님께서 업무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계신다.


“네, 거의 다 되었습니다. 완료되면 말씀드릴게요.”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데에 집중하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업무에 집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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