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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눈치 게임

'덜' 일하기 위한 몸부림

by 푸른푸룬


“자, 오늘도 시작해볼까!”


아침 8시, 이른 아침 부장님의 회의 시작 선포와 함께 미팅이 시작된다. 아침 미팅에선 보통 전날 있었던 일들을 다 같이 정리하고, 오늘 진행할 업무들을 살펴본다. 그런 모든 일에는 담당자가 있는 법. 오늘 할 새로운 일이 있으면 부서 내에서 다시 담당을 정해야 한다. 어떤 기준에 의해 담당자가 정해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같은 부서 내에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기준을 세우기가 모호하다. 그러다 보니 보통 관련된 일을 해왔던 사람 또는 경험이 있는 사람이, 그도 아니면 돌아가면서 하거나 업무가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이 일을 맡게 된다. 가끔은 이런 업무 분담 시스템이 군대에서 미대 나온 사람이 도색작업을 하듯이 주먹구구식 같기도 하지만, 다른 명확한 대안은 없다.


오늘도 미팅 중 새로운 업무에 대해 담당자를 정할 때가 왔다.


“이거, 누가……. 해볼까……? 내용 관련해서 잘 아는 사람 있나?”


부장님도 우리가 지금 하는 일에 추가로 일을 더 얹기는 싫으시겠지만, 어찌 됐든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만 한다.


“......”


아무런 대답이 없이 흐르는 정적의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


hourglass-620397_1920.jpg 시간이 가는데, 안 간다.


멈춘 시간은 다시 갈 기미가 없다. 내 몸 또한 멈춰서 굳어버린 것만 같다. 눈동자만 살짝 움직여본다. 주변 다른 사람들이 보인다. 다른 먼 곳을 응시하는 사람, 초점이 없이 멍하게 있는 사람, 아침이라 피곤한지 눈이 반쯤 감긴 사람, 입술을 살짝 물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듯 입을 굳게 다문 사람 등 가지각색이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다. 공통점은 모두 일을 더 맡기 싫어한다는 것. 누가 원래 하던 일보다 일을 더 시킨다는데 선뜻 나설까? 당연히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

mace-3318348_1920.jpg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 말 없이 한 60초는 지난 느낌이다. 이렇게 조용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답답함에 그냥 내가 하겠다고 말할까 싶다가도, 쌓여있는 일과 할 일 들을 생각하니 선뜻 입이 떨어지진 않는다. 주변을 다시 본다. 서로서로 눈빛을 주고받고 있다. 그런 침묵과 눈치 싸움 상황에 서로가 웃기는지 다들 옅은 미소와 함께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그때 마침, 실수로 부장님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어, 그래 김 대리. 자네 전공이 이쪽이지 않나?”


망했다. 내 전공이 관련되어 보이긴 하지만 이 일과는 다르다. 사실 전공이 업무와 크게 연관되지 않는다는 걸 모두가 잘 알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일을 더 늘리면 안 된다는 것. 하지만 이미 나에게 일이 들어온 것 같다.


주변 동료들이 이제 나를 보고 있다. 안쓰럽다는 눈빛을 보내온다. 심호흡을 한번 한 뒤에, 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 전공이랑 조금 다른 분야이긴 한데…,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래, 옆에서 도와줄게, 같이 잘해보자고”


employee-6038877_1280.png 하아, 집에 가고 싶다.


신입 때의 빨리 일을 배워서 멋지게 해내겠다는 포부는 온데간데없이, 쌓여가는 일에 한숨만 늘어가는 오늘이다. 그때는 일을 단지 하는 데에 신경 썼다면, 지금은 어떻게 일을 줄여나가면서 중요한 일만을 효율적으로 할지에 신경 쓰고 있다. 그래야 오늘같이 점점 늘어가는 산더미 같은 일의 늪에서 살아 나올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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