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고 싶지 않다
“선배님, 혹시 회사를 그만두면 4대 보험은 어떻게 되나요?”
들어온 지 이제 일 년이 막 지난 후배 녀석 한 놈이 아침부터 갑자기 이상한 질문을 해댄다. 너무 갑작스러워 당황스럽다.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아닌 것 같다. 표정을 애써 숨기며 침착하게 대답해본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주변엔 우리 둘밖에 없다.
“글쎄……. 나도 퇴사 경험자이긴 한데……, 전 직장에서 퇴사했을 때 건강보험은 부모님에게 다시 가더라고. 나머진 잘 모르겠네.”
말을 하면서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질문의 의도는 퇴사하겠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그래서 되물었다.
“근데……, 퇴사하려고?”
“네!”
혹시나 하고 물어본 질문이 사실이 되어버리자 더욱 당황스럽다. 도리어 아무렇지도 않게 들려오는 또렷한 대답에 무슨 일인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이 녀석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으리라. 그런 모습을 보니 과거의 내가 순간 오버랩된다. 그리곤, 과거의 ‘나’의 발언들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저……. 그만두겠습니다!’
망설임과 걱정을 가득 담은 과거 나의 퇴사 멘트. 수백 번의 고뇌와 걱정 끝에 내린 과거의 ‘나’의 퇴사였다. 당시에 저 말을 꺼내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이 친구도 겉모습과는 달리, ‘그 말’을 꺼내기까지 쉽지 않았을 테다.
"……"
다시 이 친구를 보니 과거의 내가 떠올라 안쓰럽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을지, 수많은 걱정과 고민을 했을지, 완전히는 알 수 없지만, 그 마음만은 경험자로서 이해할 수가 있다. 일단 그 얘기를 꺼내는 순간 돌이킬 수 없으므로 이미 단단히 결심하고 내뱉었겠지만 한번 다시 물어본다.
“정말이야……? 그래, 말릴 생각은 없다. 안 맞으면 빨리 다른 길 찾아봐야지! 그동안 고생 많았겠어.”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말린다고 바꿀 결정이었으면 말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오히려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그동안 고통과 걱정에 잠도 편히 못 잤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이 친구 표정이 어두웠다.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말수도 줄었었다. 왜 이제야 생각이 나는 것일까. 그때는 왜 눈치도 못 채고 아무 말 못 해주었을까.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음에 늦은 후회를 해본다.
한편으로는 내가 내 길을 잘 걸어가고 있나 싶은 생각에 정신이 든다. 회사에 그대로 있는 것이 맞나, 나도 이 친구처럼 회사를 박차고 나가 나의 일과 꿈을 찾아 나가는 게 맞는 길이 아닐까. 이 문제 정답은 없겠지만 한편으론 부러운 마음에 속이 뒤숭숭해진다.
일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오면서까지도 온종일 그 친구 생각이 든다. 내가 퇴사를 말한 적은 있어도 들어 본 적은 없었는데, 반대로 듣는 처지가 되어보니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미안함이 계속 든다. 사실 괘씸한 마음이 들 줄 알았다. 다 가르쳐두었더니 나가다니! 그런데 반대가 되어보니 전혀 아니다. 더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훨씬 컸다. 내가 좀 더 잘해주었더라면, 좀 더 도움을 주었더라면 잘 지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과거에 내가 퇴사할 때의 미안하다고, 고생 많았다고 위로해주셨던 대리님들의 마음을, 이제는 내가 대리가 되어 직접 느껴본다. 그 말들은 모두 진심이었고, 형식적인 건넴의 말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왔던 진심 어린 위로였다. 선배님들의 경험을 몸소 체험하며 나도 점점 ‘저항의 대상’으로 여겨왔던 ‘기성세대’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건가 싶다.